‘공모 없다’ ‘남용할 권한 없다’…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전부 무죄

이지혜 기자 2024. 1.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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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에 서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에 서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검찰이 기소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사법농단 행위가 있었지만, 이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범죄 행위이고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애초 재판에 개입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권한을 남용할 수도 없다는 기존 ‘사법농단 무죄’ 논리도 반복됐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재판장 이종민)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농단’이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사법부 행정 업무를 맡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던 이탄희 당시 판사가 개혁 성향을 띠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저지하라는 업무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게 사태의 시작이었다.

세차례 법원 내부 진상조사 뒤 2018년 6월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수사팀장(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구속되며 법대 밑 피고인석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헌정사상 초유의 수사였지만, 1심 법원은 47개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다. △‘박근혜 청와대’ 요청에 따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등 재판에 개입했다는 ‘재판 거래’ 혐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준 혐의 △조직 보호를 위해 판사 비위를 은폐·축소한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 3억5천만원을 법원장 격려금으로 사용한 혐의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대체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위법·부당한 일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골자인데, 재판부는 “지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 등의 일부 행위가 위법할지언정, 여기에 양 전 대법원장이 가담했다고 볼 수 없어 무죄라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구회 내부 모임인 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모임) 와해를 위한 대응방안 검토를 지시한 행위 등에 대해서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판단하면서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법원의 기존 법리를 고수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는 애초에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서 권한을 남용할 수도 없으며, 각 재판부는 독립된 재판권에 따라 판결문을 작성했다는 취지다. 이는 임성근·신광렬·조의연·성창호·유해용·이태종 등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의 재판에서도 반복된 법리로, 모두 무죄를 확정한 바 있다.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청와대’에 여러 재판 관련 정보를 제공한 행위 역시 무죄로 봤다. 청와대의 관심 재판에 대해 특정 방향성을 담아 작성된 보고서는 “사법행정 관점에서 전개 가능한 방향과 타당성을 다각도로 예측한 것일 뿐,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는 아니다”라는 판단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배소 재상고심 전원합의체 회부 일정을 외교부에 유출한 행위도 “양 전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서 내심에서 자연스레 가지게 된 추상적 의견에 불과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특정 판사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준 행위는 ‘인사 재량’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8명의 판사를 체크해 희망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불이익한 인사에 대한 정책결정을 내린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전보 인사의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선고 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어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판결의 최정점으로 사법 역사에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1심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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