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농단’ 양승태 47개 혐의 모두 무죄 내린 ‘제 식구 재판’

한겨레 2024. 1. 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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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혐의는 2013~2016년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박근혜 청와대' 요청에 따라 지연시키는 등 정권과 거래하며 여러 재판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사실의 증명 여부를 판단하는 게 법관의 고유 권한이긴 하나, 여러 정황을 하나같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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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에 서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려 5년이나 진행된 재판 끝에 나온 결과다. 앞서 같은 사건으로 기소됐던 전현직 법관들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의혹의 중심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마저 처벌을 피했다. 사법농단은 법원 수뇌부가 정치권력과 유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들을 사찰한 헌법 유린 사건이다. 그러나 아무도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제 식구 감싸기’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혐의는 2013~2016년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박근혜 청와대’ 요청에 따라 지연시키는 등 정권과 거래하며 여러 재판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범기업 쪽 변호사를 만나 이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계획을 전달하고, 주심을 맡은 대법관에게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 문제가 될 것”이라 말하는 등 직접적 개입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원 수뇌부 지시로 재판 전개 방향과 파장을 점검하는 보고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행위들에 재판 개입 의도가 있었는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 2013~2017년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 ‘정운호 게이트’를 비롯한 판사 비위를 은폐·축소한 혐의 등 47개 혐의가 전부 증명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사실의 증명 여부를 판단하는 게 법관의 고유 권한이긴 하나, 여러 정황을 하나같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또 ‘사법행정권자는 재판에 관해선 애초 감독 권한이 없기에 재판 개입을 했더라도 직권남용죄의 전제인 직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반복됐다. 그렇다면 재판 개입이 드러나도 형사 처벌은 안 되고 국회의 탄핵을 통해서만 단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2021년 임성근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이미 퇴직 신분이란 이유로 각하됐다. 결국 어떤 방식의 단죄도 이뤄지기 힘든 것이다.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한 중차대한 행위가 이렇게 유야무야 처리되는 것은 사법체계의 커다란 허점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의 존재 이유를 흔든 사건임에도 스스로 엄단 의지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사법부 신뢰 회복도 요원해졌다. 재판 개입을 비롯한 법원 수뇌부의 부당 행위를 엄정히 처벌할 수 있도록 입법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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