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업과 진로 문제에 관하여[서병기 연예톡톡]
[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기자]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가 지난 12월 6일 센터내 3층 블랙박스 공연장에서 '2023년 청소년음악포럼-청소년 음악의 주인공이 되다'를 개최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청소년 음악 사업을 통한 진로 방향 모색'으로, 음악 진로·교육을 주제로 청소년이 원하는 음악적 교육과 경험을 제공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심해빈 센터장이 진행을 맡은 이날 포럼은 권오경 백제예술대 실용음악과 교수가 '음악 산업의 외부환경변화에 따른 청소년 음악 교육 방향의 설정'을,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가 '음악산업과 진로문제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제했다.
발제문 발표 후에는 청소년이 음악을 통해 진로를 설정할 수 있는 방향과, 현재 음악산업의 형태와 청소년 음악 진로 설계 방법, 음악 산업 및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청소년 음악교육 방향의 설정 등에 관해 발제자와 김광현 재즈피플 편집장, 박준흠 사운드네트워크 대표, 남예지 재즈보컬리스트 등이 토론을 이어갔다. 토론에 이어 박태용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총괄이 청소년 음악진로, 교육에 맞는 센터 운용에 대한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서병기 기자의 '음악산업과 진로 문제에 관하여'의 발제문이다.
청소년은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경계인이다. 육체적으로, 감성적으로 매우 활발해지면서도 넘치는 감정을 제어하기 힘든 불안정한 시기이기도 하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로도 불린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음악은 어른때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감성이 넘치기 때문에 음악적 창의성도 넘친다. 다만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과거 싱어송라이터 김동률과 인터뷰하며 초창기 전람회 시절 부른 ‘취중진담’이나 카니발 때 부른 ‘그땐 그랬지’와 ‘거위의 꿈’ 같은 노래를 많이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가 “그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감성발라드 김동률의 그런 노래들은 주로 20대에 만들었고, 그중 몇 곡은 이미 고교 시절에 만들어둔 곡이라고 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런 노래의 작곡이 가능했다. 10~20대가 가장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세대다. 자신에 대해 고민을 가장 많이 할 나이다. 그때 나온 감성이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 안타까운 것은 순수음악은 원숙해지면 계속 발전이 가능하지만, 대중음악 창작은 나이에 반비례하는 것 같다. 적어도 정비례는 아닌 것 같다.”
□청소년기 음악은 각별하다=이처럼 청소년기는 음악적으로도 왕성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청소년들은 공부와 입시에 대한 부담이 많아 음악만을 순수하게 사랑하기 힘들다. 오히려 힘든 상황에서 음악에 기대게 되기도 한다.
청소년기 음악은 욕구를 해소하고 불안한 삶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많은 청소년이 그렇게 해서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음악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K팝이 글로벌화되면서 음악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직장과 직업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면밀한 고려와 체크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많은 멘토들이 ‘잘 하는 것은 직업으로 하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하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청소년이 음악을 통해 진로를 설정할 수 있는 방향=청소년기에 음악을 접하게 되면서 음악을 진로와 연결시키는 교육과 사업을 하는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음악을 접하는 채널을 가이드해주고 음악 창작공간 제공 등 청소년이 음악을 통해 다양한 꿈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청소년음악센터를 좀 더 많은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이 음악으로 진로를 설계하겠다는 계획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음악관련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프리랜서로 음악을 통해 창작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자는 주로 음악기획제작사에서 A&R 파트나 음악홍보마케팅을 담당하거나,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단이나 음악창작소 등에서 음악관련 일을 할 수도 있다. 음악치료사나 음악 스태프 교육자라는 직업도 있다.
후자는 음악 아티스트가 되려는 사람과 섞여있다. 고등학교부터 서울예술고, 한림예술고와 전국에 있는 예술고 등으로 진학하고, 대학도 실용음악과로 진학해 음악을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곡가, 작사가, 세션, 보컬리스트, 보컬트레이너 등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음악다큐나 음악드라마, 음악영화를 만드는 음악PD도 매력적인 직업이다. 한국에서는 음악영화가 별로 제작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일반PD가 음악영화나 음악시리즈물을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플래쉬’, ‘라라랜드’, ‘싱스트리트’, ‘스쿨 오브 락’, 일본 음악드라마 ‘콰르텟’ 등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감독이 만든 경우가 많다.
보컬리스트의 경우는 소속사 없이 독립가수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싱어게인’,‘오빠시대’ 등 음악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지명도를 얻기도 한다.
SNS도 음악과 진로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좋은 채널이다. 1760만 유튜브 구독자를 거느린 싱어송라이터 제이플라(36)는 주로 영미팝송을 커버하다가, 최근 데뷔 10년만에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첫 콘서트까지 열었다. 해외에서도 숀 멘데스(25), 트로이 시반(28), 찰리 푸스(31), 포스트 말론(28), 후지이 카제(26), 이마세(23), 아야세(29)와 이쿠라(23)로 구성된 2인 혼성밴드 요아소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의 나이가 젊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유는 유튜브 등 SNS 때문이다.
트로이 시반은 10대에 유튜버에 커버송을 올리고 나면 중고생때 제작자가 음반을 제작하자고 해, 10대에 이미 글로벌 스타가 됐다. 찰리 푸스도 틱톡이 만든 스타다. 찰리 푸스는 틱톡에 자신의 음악 만드는 과정을 팬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찰리 푸스가 음반 제작에 팬들을 참여시킨다는 의미다. 노르웨이의 DJ 겸 음악 프로듀서인 카이고(32)도 유튜브에 자신의 작곡 방법을 공개해 전세계 젊은 음악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포스트 말론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사운드클라우드’(사클)에 음악을 올리고 셀럽들이 좋다고 홍보하면서 유명해진 케이스다. J팝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근 내한공연을 하고 돌아간 후지이 카제의 아티스트로서의 시작은 초등학생이었던 2010년, 유튜브에 피아노 커버 영상을 올린 것이었다. 글로벌 시대인 지금, 한국 가수들의 음악 소통 채널도 영미팝스타들과 다르지 않다.
□음악하려면 사회성도 길러야=마마무를 프로듀싱하고 ‘불치병’, ‘기억상실’, ‘죄와 벌’, ‘데칼코마니’, ‘고고베베’, ‘멍청이’ 등 수많은 노래를 작곡했던 김도훈 RBW 대표프로듀서에게 ‘현재 대한민국 음악산업의 형태와 관련해 청소년 음악 진로 설계 방법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물어봤다. 답변은 저의 예상을 빗나갔다.
“작곡 등 음악을 업으로 하려는 사람은 실력은 기본이다. 음악을 잘 하는 사람중에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를 보게 된다. MZ세대중에는 협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뮤지션이 되건, 음악 스태프가 되건 사회성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이왕이면 사회성도 좀 있고, 착한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
음악은 갈수록 혼자 듣는 메카니즘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지만 작곡은 협업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방탄소년단이 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하는 노래들은 작곡가의 경우 보통 3~9명 정도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성이 없으면 일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이브의 A&R에는 수많은 음악 창작자들이 근무하고 있고, SM엔터테인먼트 A&R본부에도 30명이 넘는 음악전문가들이 협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소년에게 음악진로를 가르친다?=기성세대의 음악은 듣는 음악이었다. 지금은 보는 음악과 듣는 음악이 혼재돼 있다. 갈수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유튜브에서는 뮤직비디오가 필요하다. 가사, 퍼포먼스, 게임과 결합하면서 더욱 풍성한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쇼츠만 보고, ‘후렴구’ ‘사비’ 정도만 듣게된다.
기성세대는 음악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얻고, 감성적으로 위로도 받지만, 지금 청소년들은 쇼츠나 게임 등의 형태를 통해 재미로 음악을 접하는 것 같다. 이는 다분히 기성세대 중심의 시각이다. 이를 김형석 프로듀서는 음악을 접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음악으로 진로를 모색하는 길도 그만큼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 접근과 채널의 확장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서로 영역을 확장한다. 이미 음악이 버추얼 리얼리티(VR), 메타버스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고 ‘AI 음악’도 기하급수적으로 제작되면서 창착의 벽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기성세대 중에는 FM라디오를 통해, 또는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듣고 이성에게 편지를 쓰고, 펜팔을 하기도 했다. 지금 세대는 이런 걸 하지 않는다. 이들은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카톡의 세대다. 그렇다면 이런 정서가 사라진 것일까? 요즘 세대는 훨씬 더 다양한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통해 음악과 음악정보를 함께 얻고 빨리빨리 소비하고 수시로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간다. 기성세대에게 음악이 눈물, 위로, 감성, 추억과 연관됐다면 MZ세대에게 음악은 그야말로 소비의 대상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음악 차트를 보면 90년대 발라드들이 제법 올라온다. 그들도 그런 정서를 필요로 해 다양한 소스를 통해 찾아 듣고 있다. MZ 세대들이 다양한 음악을 찾아 듣고 있다. 국내 가요 뿐만 아니라 '사인 오브 더 타임'를 크게 히트시키고 있는 해리 스타일스, 도자캣과 같은 최신 영미팝, 힙합까지 듣는다. 이는 적어도 K팝의 쏠림현상, 피로도를 막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소비의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공급의 다양성을 요구한다.(도움말 김형석 프로듀서)
□음악 진로보다 음악 제작&소비 환경에 대한 이해를=K팝은 전세계 음악 시장의 3% 정도를 가지고 있다. 이를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 방시혁 하이브(HYBE) 의장과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 등은 불철주야 뛰고 있다.
지난 11월 1일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방 의장은 최근 주요시장에서 K팝 관련 지표의 하락이 보인다며 K팝의 위기가 왔음을 거론했다. 위기론의 근간은 강력한 팬덤의 소비라고 했다.
“강렬하게 소비하는 일종의 ‘슈퍼팬’은 라틴과 아프로(서아프리카 음악 장르) 비트에 더 많지만, K팝 팬들은 어떤 팬덤보다 더 강렬한 몰입과 소비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확장성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이어 방 의장은 “모든 아티스트가 그런 팬덤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 간간이 가벼운 마음으로 소비하는 팬들도 있어야 한다”면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슈퍼팬과 라이트 팬의 구조라면, K팝은 굉장히 집약적인 구조다. 라이트 팬덤이 별로 없다. 주변부의 라이트 팬덤도 많이 붙을 수 있는 구조로 더 가야 한다. 니치(틈새)에서 시작해 흥했던 장르들이 일정 팬덤을 못 넘고 넘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진영 CCO도 “K팝을 점점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며 방 의장 진단에 공감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코어팬덤, 헤비팬덤을 겨냥해 음악을 제작하고 마케팅한 측면이 크다.
이런 K팝 환경을 보고 있으면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진로를 설정할 수 있는 방향과 현재 음악산업의 형태와 청소년 음악 진로 설계 방법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음악을 듣고 접해보라는 것이다. 가요뿐 아니라 영미팝, 라틴팝, J팝 등 다양한 국가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음악의 획일화와 쏠림은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다. 배철수 음악 DJ도 국내 음악이 발전했던 시기는 외국의 음악을 포함해 다양한 음악 장르를 받아들이고 소비했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했다. 음악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홍콩 영화가 정체성을 찾기 힘들어지면서 한가지 장르로 계속 가다 사양길을 걸었던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팝뮤직은 먼 나라 음악이 아니라 우리 바로 옆집의 음악이라는 사실이다. 마마무의 화사가 두아 리파의 리메이크 댄스곡 ‘피지컬’의 콜라보에 참가했는데, 두아리파 측에서 먼저 콜라보를 제의했다. 존 레전드가 ‘놀면 뭐하니’에 라이브 영상을 통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브링 미 러브’를 부른 것도, 존레전드 회사에서 MBC 예능국으로 요청한 결과다.
중남미 음악도 마찬가지다. 라틴음악 시장은 영미팝음악 시장 못지 않게 중요하다. 2022년 기준 라틴 아메리카 음반 및 음원 시장 시장 규모는 13억달러(약 1조7000억원)로 추산된다. 전년 대비 26.4% 성장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음반 및 음원 시장 규모가 9% 증가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라틴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이브가 최근 라틴시장 본격 진출 위해 멕시코 소재 법인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를 설립한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도 라틴 음악의 인기가 높다. 역대 빌보드 핫 100 차트 톱10에 오른 비영어 노래는 총 35개이며 이중 스페인어곡이 19개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루이스 폰시의 ‘데스파시토’나 배드 버니의 ‘아이 라이크 잇’ 등 라틴 시장에서 열풍을 불러 일으킨 곡이 빌보드 핫 100 최상단에 등극하기도 했다. 스페인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미국에서도 약 20%의 인구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한국가수도 캐롤지, 베키지, 배드 버니, 루이스 폰시와 콜라보를 하고, 커버도 해야 한다.
블랙핑크의 제니는 할시와 카디비와 수시로 통화하는 친구 사이다. 음악도 네트워킹은 매우 중요하다.
희망적인 것은 청소년들이 K팝을 능동적으로, 다양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음악DJ와 PD들이 틀어주는 음악만 듣다가 지금은 자신들이 듣고싶은 음악을 직접 찾아듣고 소통하는 ‘플레이리스트’의 시대다. 여기서는 세련된 음악과, 후진 음악의 구분이 있는 게 아니라 취향존중(취존), 개인취향(개취)이 인정될 뿐이다.
이런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이 인문학적인 베이스까지 가지고 있다면 음악 진로를 설계할 때 훨씬 유리해진다.
동방신기를 보면 “잘한다. 멋있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BTS에 오면 “러브 유어셀프”(너 자신을 사랑해라)라는 아젠다가 더해진다. 이게 지구상의 시공을 초월해 한번에 터진 것이다. 이제 가수를 데리고 미국을 한 바퀴 도는 시대가 아니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방시혁 의장이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은 청소년들이 음악으로 진로를 설정하고, 나아가 음악기업을 경영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미학과에서 자기와의 대화로 문제의 본질을 찾는 과정, 무엇이 본질이고, 어떻게 접근하고 인식할지를 익혔다. 현대기업은 빠르고 과밀한 경쟁에서 결국 적응해나가야 하는데, 단기적 시각으로 움직이면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변하지 않는 본질에 집중해야 변하는 것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런 걸 사고하는 법을 이때 배웠다.”
하지만 굳이 미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된다. 음악으로 인문학적 소통을 하고 의미있는 아젠다를 만드는 문화를 만들면 된다. 이 작업을 능숙하게 한다면 이미 음악 전문가다.
□외로움이라는 팬덤 시장(도움말 : 김형석 프로듀서)=기성세대가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는 감성세대였다면 MZ세대는 음악 커뮤니티를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디지털세대다. 이 환경으로 팬이 되고, 굿즈를 만들고, 전시회를 열고, 정치활동, 환경보호까지 한다. 필요한 아젠다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그 앞으로 모여와 똘똘 뭉치게 된다. 이것으로 돈도 버는 시대다.
디지털 세계는 외로운 사람들을 결속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외로움’이 가장 큰 돈을 벌게 해주는 매개체다. K팝의 글로벌 코어팬중에는 약자, 페미니스트 등이 많은데, 이들에게 한국 아이돌들이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심지어 K팝은 이제 K가 빠진 음악그룹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하이브는 게펜 레코드와 함께 ‘K팝 방법론의 세계화’를 기치로, 무려 12주에 걸쳐 걸그룹 오디션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를 펼친 결과 미국, 필리핀, 스위스, 한국 국적의 6인조 걸그룹 ‘KATSEYE(캣츠아이)’를 확정하고 데뷔를 앞두고 있다. JYP엔터는 박진영 프로듀서가 이미 일본인 9인으로 구성된 걸그룹 ‘니쥬’를 2020년 12월에 데뷔시켜 일본에서는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활동할 예정이다. JYP는 ‘니주’ 남자 버전도 곧 선보인다.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는 ‘큐비드’라는 노래로 자발적인 글로벌 팬들을 확보한 바 있다. ‘큐피드’는 K팝 스타일이 아니라 세 명의 젊은 스웨덴 작곡가가 만든 곡이다. 김형석 프로듀서에 따르면,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는 흡사 미국싱어송라이터 마일리 사이러스(31)와 필리핀계 미국인으로 틱톡커 및 가수이며, 9000만명대의 팔로워를 거느린 벨라 포치(26)의 큐티 버전 같다고 한다.
처음 발매된 후 그해 4월 틱톡에서 스페드 업 버전이 인기를 얻기 시작해 2022년 2월 핫 100 최고순위 17위에 올랐고 25주 차트인이라는 K팝 걸그룹 최장 진입기록을 세웠다. 영미팝신에서 통하니까 워너뮤직 본사에서 적극 지원했다.
여기서 답이 나온다. 청소년기에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떻게 진로를 짜야하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음악을 선택해서 듣는 것도 기성세대보다 MZ세대가 훨씬 더 똑똑하다.
청소년들이 실용음악과에 진학하면 음악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다. 디테일한 교육방식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실용음악과 학생들을 보면, 크리에이터의 연결점, IP 확보, 엔터테인먼트의 다양성 등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대한 이해는 부족해보인다.
연애편지를 쓰는 감성으로 노래를 만들던 기성세대와 달리 챗GPT에게 물어봐 수백곡의 음악을 만드는 시대다. 콘텐츠 어벤저스를 개인이 만들 수 있다. 음악을 AI가 만들고 뮤직비디오나 숏폼을 ‘뽀샵’ 하듯이 만들어버리는 빅뱅이 일어났다. 이런 시대에 기성세대가 청소년의 음악 진로 설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놀이터(플랫폼)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무엇을 하고 노는지는 청소년들이 더 잘 안다. 인스타그램도 처음에는 스틸과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사진첩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MZ들은 더 멋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며 플렉스(자랑질)하고, 인플루언서가 되고, E커머스까지 이뤄졌다. 이 자체가 가치가 되고 돈이 된다. 이중에는 예상하지 못한 확장도 있다.
청소년들이 음악으로 진로를 설계할 때 고려할만한 게 하나 더 있다. 우리는 BTS가 되거나(스타 또는 아티스트), BTS를 탄생시키기 위한 전략을 짜는(스타메이킹), 이 두가지 업무를 생각하게 된다. 구체적인 성공사례가 있어 향후에도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음악 아티스트를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 보다 작곡을 수출하는 게 가능성이 더 높다. 김형석 프로듀서는 이 점을 특히 강조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대박 성공사례가 없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가창보다는 작곡이다. 가창에는 매력과 인문학적 메시지(세계관)까지 적절하게 더해져야 하지만 작곡은 노래만 좋으면 된다. 한국 청소년이 작곡한 음악을 찰리 푸스나 해리 스타일스, 도자캣에게 주는 날이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큐비드’를 작곡한 스웨덴팀처럼 스웨덴은 해외주재원이 주재하는 나라를 상대로 음악 세일즈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곡을 수출할 인프라가 허약하다. 외국 콘텐츠 전문가들은 한국은 콘텐츠는 좋은데, 인프라는 취약하다고 한다. 그러니 정부에서도 어쩔 수 없이 되는 곳에만 주로 밀어주게 된다. 언더독이 오버독으로 올라오는데 결정적인 지원과 후원이 만들어지려면 콘텐츠와 채널을 좀 더 연구해야 한다. 머지않아 청소년들이 대거 활동할 한국 음악시장에서도 이는 큰 숙제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다 접해라=그렇다고 청소년에게 음악과 진로에 대해 추상적인 말만 할 수는 없다. 구체적인 정답이나 대안 제시는 어려워도 참고해야할 사항은 있다. 여가학자인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은 청소년기에는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다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대중음악은 TV, FM라디오, CM송, 드라마 ost, 유튜브,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듣는 것만으로 흥미를 유발하며 특별히 배울 필요는 없다. 반면,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면 관련 지식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클래식 음악은 부모의 학력과 소득수준과도 관련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로 부르디에가 말한 취향의 구분짓기가 작동한다. 최석호 소장은 두 음악을 다 듣는 사람이 행복도가 높다고 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클래식 음악만 좋아하는 사람은 일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대중음악만 좋아하는 사람은 여가(레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도 있다.
최 소장은 청소년기에는 두 음악의 양 극단으로 가지 말고 고루 접해보는 게 특히 좋다고 한다. 한국에는 중고교 시절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전인적 성장을 하는 데도 음악은 필요한데, 공교육에서는 거의 제외돼 있다시피 하다. 그래서 청소년의 음악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와 방향 제시를 도와주는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가치를 창출하는 음악인이 됐으면=요즘 콘텐츠 세상은 글로벌과 디지털을 두 수레바퀴로 맹렬히 굴러가고 있다. K팝 또한 그 한가운데에 있다. 오강선 박사가 쓴 ‘디지털 혁명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디지털 산업은 한마디로 연결산업이다. 음악사용자(팬덤)들 사이를 연결시키고, 사용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가 생기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게 디지털산업의 메카니즘이다. 빌리 아일리시(22)가 어린 나이에도 전세계 MZ세대 고민과 우울을 대변하는 것은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켄드릭 라마도 흑인의 억압된 삶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2018년 퓰리쳐상을 수상하며 ‘힙합계의 마틴 루터 킹’이 됐다. 산업화 시대에는 ‘이익’을 창출하는 아티스트가 떴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가치’를 창출하는 아티스트에게 전세계 대중들의 눈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전세계 K팝 팬들 90%가 아이돌 기획사에 기후 행동 원한다”는 말이 위력을 갖는다. 숲조성, 탄소중립 이슈 등 아티스트의 가치를 만드는 데에는 팬덤이 앞장선다 새로운 P2C(Play2Create)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새로운 창작자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변화에 따라 K팝 프로듀싱도 매니저 프로듀싱에서 전문작곡가, 아티스트 프로듀싱을 거쳐 팬전문가 프로듀싱으로 변화되고 있다. 댓글을 읽는 프로듀서라는 뜻이다. 노래를 만들면서 팬덤의 말에 반응하고 반영도 하는 시대다.(김진우 RBW 공동대표, 콘진원 2022스타트업콘) 청소년기 음악으로 진로를 모색할 때는 음악을 통한 ‘가치’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해봄직하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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