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위험 상품 점검 회의’ 정례화 한다더니…금융당국, 1년 넘게 손 놨다

황경주 2024. 1. 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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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 '홍콩 ELS' 손실액이 2, 296억 원(지난 19일 기준)까지 불어났습니다. 손실률 52.7%. 손실이 확정된 사람들은 원금의 절반도 못 건졌습니다. 이들은 은행이 고객을 상대로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금융 당국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발언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은행 직원조차 무슨 상품인지 잘 모른다"(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은행이 무지성 면피를 하려 한다"(이복현 금감원장)며 은행의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실태를 비판했습니다.

만약 은행이 불완전판매를 했다면, 이를 관리·감독해야할 금융 당국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2019년 'DLF 사태' 때 "감독 강화" 약속했지만…

'홍콩 ELS' 사태는 2019년 'DLF 불완전판매' 사태와 비슷합니다.

DLF는 외국 채권 금리가 바뀌는 데 따라 원금 손실 우려가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당시에도 투자자들의 대규모 원금 손실과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를 관리해야 할 금융 당국의 부실한 감독에 대한 비판도 컸습니다.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은 "DLF 사태에 대한 금융 당국의 감독상 미흡점에 대해 겸허히 수용한다"며, "앞으로 '고위험 상품 투자자 리스크 점검회의'(이하 점검회의)를 정례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은행 등이 일부 고위험 상품만 쏠림 판매하고 있지는 않은지,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투자자 손실 가능성은 어떤지 점검회의를 정기적으로 열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 '고위험 상품 투자자 리스크 점검회의', 4년간 겨우 3번 열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KBS가 국회 정무위원회 김종민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금융위원회는 '고위험 상품 투자자 리스크 점검회의(이하 점검회의)'2022년 11월 4일, 2023년 8월 27일9월 17일 3차례 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이름의 회의는 아니라도, '고위험 상품' 시장 전반과 소비자 리스크를 점검한 회의가 더 있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2020년 7월 2일 '금융 소비자 피해 집중분야 전면점검 합동회의', 2022년 3월 17일 '거시경제 금융회의'. 2번이 전부였습니다.

점검회의를 정례화하기는커녕, 2020년 8월~2022년 2월까지 1년 7개월 동안 '고위험 상품' 모니터링 회의가 전혀 없었던 셈입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열린 ‘고위험상품 투자자리스크 점검회의’


그러는 동안 홍콩 H지수는 최고 12,200대에서 8,000 초반대까지 급락했는데, 이에 아랑곳없이 판매사들은 '홍콩 ELS'를 열심히 팔았습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홍콩 ELS'는 15조 6천억 원어치 판매됐는데, 90%는 5대 시중은행(국민, 신한, 농협, 하나, 우리)에서 팔려나갔습니다.


■ 3번의 회의 내용 보니…소비자보다 판매사 리스크 우선

뒤늦게라도 열린 3번의 점검회의에서 금융당국은 어떤 논의를 했을까.

'투자자' 리스크를 점검한다는 회의명이 무색하게 '판매사'의 대응 여력을 주로 논의했습니다.

22년 11월 회의 내용을 보면, "H지수가 더 떨어지면, 투자자 요청에 의한 중도상환 요구 확대('ELS 런')이 우려된다"며 투자자가 손실 규모를 줄이는 행위를 '리스크 요인'으로 인식하고 대응했습니다.

2022년 11월 4일 열린 ‘고위험상품 투자자리스크 점검회의’의 내용 일부.


지난해 8월 회의에서는 H지수가 20%, 30%씩 추가 하락한다고 가정해보고, 이에 맞춰 증권사의 유동성이 충분한지가 주로 논의됐습니다.

"모든 증권사의 외화 유동성 규모를 감안하면, H지수 30% 하락까지는 대비할 수 있다"는 게 그날 회의의 결과였습니다.

'홍콩 ELS' 대규모 손실 우려가 알려지기 시작한 뒤인 지난해 9월이 돼서야, 개인 투자자의 연령별 판매 규모와 손실발생 시나리오가 논의됐습니다.

"투자 규모가 매우 크고, 은행권 고령층 고객에 집중되어 대규모 민원 발생 가능성이 잠재"한다면서도, "대다수 투자자(92%)가 과거 ELS 투자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1년 판매 당시 금융소비자보호법,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규제 등이 시행된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홍콩 ELS 가입자들이 지난 19일 서울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하는 모습.


■ 금융위 "점검회의 정례화 못했지만, 필요할 때마다 논의…시점·횟수는 공개 불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금융위는 "점검회의를 특정 기간마다 정례화하지는 않았지만, 필요성을 판단했을 때마다 회의를 해왔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언제, 몇 번이나 했느냐'는 질문에는 "비공개 회의 시점과 횟수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희의 내용이 일반 소비자의 손실 가능성보다 판매자의 유동성 리스크 관리에 치중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측면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의 위험성 상황에 대한 점검도 같이했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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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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