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된 대법원장'…논란 7년 만에 재판개입 무죄로

류인선 기자 2024. 1. 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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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90번 재판…증인도 판사인 이색 풍경도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4.01.26.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법원이 전직 사법부 수장에 대해 26일 헌정사 첫 선고를 내렸다. '사법농단' 혐의를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의혹 7년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2017년 1월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대법원장 권력 분산에 관한 공동 학술대회를 열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판사들은 연구회 중복 가입을 해소하라'는 취지로 공지했다.

인권법연구회 견제라는 비판이 나왔다. 인권법연구회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는 평가가 있다.

당시 행정처에 근무 발령을 받은 이탄희 전 판사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불복했더니 발령이 취소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진상조사가 진행됐고, 그해 4월 언론을 통해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됐다. 젊은 판사들이 재조사를 요구하며 단체 행동을 시작했다. 대법원은 재조사에 소극적이었다.

양 전 원장의 임기는 같은 해 9월 종료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춘천지법원장이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지명했다. 김명수 코트는 추가 조사위원회에 이어 특별조사단을 꾸려 의혹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상고법원 도입을 고리로 한 재판 거래 의혹이 터져 나왔다. 특정 성향 판사 관리를 넘어 사법부 신뢰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검찰에 고발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에는 신봉수 전 특수1부장, 한동훈 전 3차장, 윤석열 지검장 지휘부가 꾸려졌다. 사건의 성격을 고려할 때 '검찰의 칼' 특수부 검사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박병대 전 대법관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4.01.26. photocdj@newsis.com

수사팀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법원 조사 결과를 검찰이 확보하는 방식을 두고 두 기관은 이견을 보였다. 검찰은 2018년 7월 임의제출 방식으로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했다. 퇴직한 양 전 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사용한 PC가 '디가우징'된 것으로 파악됐다. 고 전 대법관도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한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먼저 겨눴다. 2018년 7월 법원은 양 전 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했다. 대신 임 전 차장에 대한 수사를 허가했다. 임 전 차장은 압수수색 4개월 후 구속기소됐다.

양 전 원장은 2018년 6월 경기 성남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2019년 1월 양 전 원장을 소환했다. 그는 검찰 출석 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법원장 출신이 검찰에 출석한 것은 양 전 원장이 처음이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을 세 차례 조사한 뒤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며 수사는 종착지를 향했다. 2월11일 검찰은 양 전 원장을 구속기소하고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구속 심사를 받았지만 구치소 행은 피했다.

양 전 원장은 2월19일 보석 심문을 위해 처음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증인석에 착석했다가 피고인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령의 나이로 착각했다는 해석과 과거 피고인석 위치와 헷갈렸다는 해석이 엇갈렸다.

이 재판은 총 290번 열렸다. 약 4년 7개월이 걸린 초장기 재판이었다.

재판이 길어지다 보니 재판부도 바뀌었다. 기존에 진행한 증인신문 결과를 새 재판부가 확인하는 절차(녹음파일 재생)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양 전 원장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폐암 수술도 받았다. 코로나19 기간도 겹쳤다. 여러 요소가 장기간 재판을 만들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고영한 전 대법관. 2021.09.17. xconfind@newsis.com

출석한 증인만 100여명이 넘고, 그 중에 60여명이 전·현직 판사였다고 한다. 사건의 핵심이 행정처다 보니 엘리트 판사들이 주로 소환장을 받았다. 주요 재판이 많은 서울 내 법원에 근무한 판사들도 증언을 피하지 못했다. 주요 로펌 변호사들도 있었다.

그 사이 임성근,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유해용, 이태종 전 판사는 모두 무죄를 확정받았다. 심상철, 방창현 전 판사도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민걸, 이규진 전 판사는 1심에서 재판 개입 일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일부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2심은 재판 개입은 무죄로 판사 블랙리스트는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현재 대법원 판단을 대기하고 있다.

재판 개입 혐의의 핵심은 '직권의 존부'였다. 쉽게 말해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있느냐는 것이다.

앞서 이민걸, 이규진 전 판사의 1심을 제외한 다른 재판부들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기 때문에 이를 남용해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법원도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취지의 판례를 따랐다. 일부 혐의는 ▲직권이 존재하지만 남용이 없었다 ▲권리행사 방해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사법농단 혐의에 대한 마지막 1심 선고는 오는 2월5일 임 전 차장의 선고 공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y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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