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는 누가 봐?” “(당연히) 여자가”…‘여초’ 직업의 불편한 진실 [Books]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1. 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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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 / 이슬기·서현주 지음, 동아시아 펴냄, 1만7000원
간호사·승무원·방송작가 등
여초직장 경험 32명 인터뷰
“돌봄이 왜 여성의 의무죠
진짜 내 꿈을 찾고 싶어요”
이 책의 저자는 여성들이 여초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를 살피며, 드라마 속 여성 등장인물들의 진로에 주목한다. 사진은 드라마 ‘더글로리’의 한 장면.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해자의 딸의 담임교사가 되길 선택한다. [사진 출처=넷플릭스]
“힘들면 쉬어가면서 하되, 절대로 교사를 놓지 말아라.”

결혼한 여성 교사들이 흔히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조언을 하는 걸까. 답은 뻔하다. 결혼 생활을 하기에도, 자녀를 임신하고 출산해 키우기에도 여러 모로 다른 직업보다 교사가 낫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사는 사기업을 다니는 것보다 보수가 적을 순 있지만, 육아 휴직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근무 시간도 일정한 편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자녀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방학에 쉴 수 있고 퇴직 후에는 공무원 연금도 받을 수 있다. 이런 장점은 자아 실현이나 적성, 흥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가정을 ‘돌보기’ 좋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여성의 욕망은 좌절된다.

신간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교사·간호사·항공 승무원·방송작가 등 여성들이 많이 선택하는, 이른바 ‘여초(여성 수가 남성 수를 초과)’ 직업의 진실을 실제 사례와 경험담, 인터뷰를 통해 밝힌 책이다. 기자 출신의 이슬기 칼럼니스트와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13년 간 일하다 그만 둔 성교육 활동가 서현주 작가가 여성으로서 직접 겪은 일들을 회고하듯 썼고, 이들이 인터뷰한 여성 30여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들은 진로 선택부터 퇴직까지 여성의 전 생애에 걸쳐 돌봄 의무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거미줄처럼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돌봄 의무가 너무 당연하게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폭력적인 전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서 작가도 “교대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직업적 안정성과 연금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시대가 바뀌었고 여성의 사회 진출 기회도 이전보다 늘었지만 보이지 않는 억압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육아다. 남녀가 ‘공동 육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자리를 잡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전업 주부의 경우를 차치하더라도, 육아 부담은 대부분 여성에게 쏠려 있는 경우가 많다. 워킹맘보다 육아를 더 많이 하는 워킹대디는 여러 사람에게 두루 회자될 정도로 흔치가 않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국가·지방공무원의 육아휴직자 중 여성은 75.7%, 남성은 24.3%였다. 공무원이 이런 수준이라면 일반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여기서도 돌봄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상반기 실시한 지역별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5~54세 기혼 여성 중 비취업 여성 283만7000명 가운데 종전에 일을 하다 그만 둔 경력 단절 여성은 134만9000명으로 절반에 육박했다. 경력 단절의 가장 큰 원인은 육아(42%)로 꼽혔고 결혼, 임신·출산, 자녀 교육, 가족 돌봄 등이 뒤를 이었다.

책은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여초 직업의 열악한 현실과 경직된 시스템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남성 PD와 여성 방송작가의 관계는 가부장적인 수직적 요소가 다분하다. PD가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대본 작성 외에도 출연자 섭외를 비롯한 각종 잡일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방송작가의 몫이 된다. ‘왕작가’로 불리며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는 극히 드물다. 승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간호사들은 열악한 병원 근무환경 속에서 집단 괴롭힘을 가하는 ‘태움’으로 고통받고 퇴사하기도 한다. 교사의 위상도 교육의 소비자 중심 주의 탓에 이전 같지 않다.

저자들은 현실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여성들도 소개한다. 일례로 정미(가명) 씨는 중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했고, 미나리(활동명) 씨는 승무원을 그만두고 유튜버 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방송작가였던 승희(가명) 씨는 뷰티 회사 마케터가 됐다. 또 주영 씨는 초등학교 교사를 관둔 뒤 상담센터 대표가 됐고, 은지 씨는 대학병원 간호사를 때려치고 간호 교육 콘텐츠 회사 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적이다. 당신도 모든 짐을 내려놓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누구든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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