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청부민원' 의혹 한 달...류희림, ‘긴급심의’로 '정치심의' 밀어 붙이나?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소위 ‘청부민원’, ‘셀프심의’, ‘이해충돌’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12월 크리스마스 당일 뉴스타파 보도로 시작된 의혹과 논란은 아직 진행중이다.
한 달간 많은 일이 있었다. 방심위 노동조합은 물론 시민·언론단체들이 들불처럼 들고 있어나 ‘진상조사’와 ‘류희림 사퇴’를 요구했다. 총원의 절반이 넘는 방심위 직원들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류희림 청부민원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내는 일도 벌어졌다. 방심위 앞에서는 방심위 노조,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류희림 위원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쯤되면 책임을 인정할 법도 한데, 오히려 ‘제보자 색출’을 운운하며 성을 내고 있다. 류 위원장의 ‘제보자 색출’ 고발장을 받아 든 경찰은 무시무시한 반부패수사대를 동원해 방심위를 압수수색했다. 적반하장, 본말전도가 일상이 됐다.
뉴스타파 첫 보도 한 달...류희림 '청부 민원' 4대 의혹
뉴스타파 보도로 지금까지 드러난 ‘청부 민원’ 의혹은 정리하면 이렇다.
① 대통령실-방통위-국민의힘 ‘3각 공모’ 의혹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과 여당 국회의원이 입을 맞춘 듯, 2022년 대선 3일 전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 방송사들에 대한 징계를 공표한 직후 단 한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민원이 방심위에 봇물 터지듯 들어왔고,
② 가족과 지인 동원한 ‘청부 민원’ 의혹
그렇게 들어온 민원들이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류 위원장의 전 직장 관계자들과 류 위원장이 활동한 각종 단체 소속 인사들인 점. 나아가 류희림을 제외하고는 이들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고,
③ 류희림 주변인들의 ‘조직적 민원’ 의혹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낸 민원 내용이 오탈자까지 똑같고 심지어 민원을 낸 패턴도 일정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④ 류희림의 ‘셀프심의’, ‘이해충돌’, ‘거짓말’ 논란
민원이 쏟아져 들어온 뒤, 방심위 내부에서 류희림 위원장에게 ‘이해충돌’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심의·징계를 회피할 것을 요구(권고)했지만, 류 위원장이 이런 의견을 모두 묵살하고 심의·징계 과정을 주도한 점, 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해충돌 문제가 있음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만 가지고도, 류희림 위원장은 사실상 탄핵된 것이나 다름없다. 거의 100%에 달하는 방심위 직원들이 ‘류 위원장의 직무수행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뉴스타파는 합의제 위원회로 구성·운영되고 있는 방심위가 사실상 류희림 위원장 개인의 민원처리기관으로 변질된 정황을 추가로 확인했다. 류희림 위원장이 ‘허위 민원’을 빌미로 ‘긴급 심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방심위가 아무런 역할을 못한 사실이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9~11월 방심위 회의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JTBC 2월 21일과 28일 보도에 쏟아진 '엉뚱한 민원'들
알려진대로, 방심위 ‘청부 민원’ 의혹의 시작점은 20대 대선 3일 전인 2022년 3월 6일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다. 지난해 9월, 이 보도를 인용 보도했던 KBS, MBC 등 여러 방송사에 대해 류희림의 가족과 지인들이 100여 건이 넘는 ‘복붙 민원’을 내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민원이 들어온 시점은 이동관 당시 방통위원장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뉴스타파 인용 방송사 징계’를 운운한 직후였다.
그런데 초기에 들어온 민원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내용은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문제가 있으니 심의·징계해 달라'고 되어 있는데, 심의·징계를 요구하는 방송사는 인용보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JTBC 보도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뉴스타파의 대선 3일 전(2022년 3월 6일) 보도는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부산저축은행을 수사할 당시, 윤석열 주임검사가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을 봐줬다”는 내용의 김만배 육성을 공개한 것이었다. JTBC는 뉴스타파 보도 전인 2022년 2월 21일과 28일 검찰 수사기록 등을 근거로 비슷한 내용의 ‘윤석열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이렇게 엉뚱한 ‘오류 민원’, ‘허위 민원’은 지난해 9월 4일부터 총 57건(34명)이나 방심위에 들어왔다. 첫 ‘허위 민원’(2023년 9월 4일 오후 5시 55분)을 낸 사람은 류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던 언론단체 ‘미디어연대’ 박 모 씨였다.
취재진은 ‘허위 민원’을 낸 34명이 누구인지 일일이 확인했다. ▲미디어연대 박모씨 ▲류희림 위원장 동생, 아들, 조카, 동서 ▲류희림 위원장이 경주엑스포 대표였을 때 경주엑스포와 MOU를 맺은 예술단 대표과 그의 가족 ▲경주엑스포 직원들과 그의 가족 ▲류희림 위원장의 KBS동기 ▲류희림 위원장이 나온 경북대 언론인회(경언회) 회원 ▲류희림 위원장 동생이 운영하는 대구 A수련원 강사 등이었다. 류희림 위원장을 빼면, 직업이나 사는 곳 등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류희림의 한마디에 ‘허위 민원’이 ‘긴급 심의’로 이어졌다
원래 방심위는 뉴스타파 인용보도만 ‘긴급 심의’에 올렸다. 지난해 9월 5일 열린 제31차 방심위 방송소위 회의에서였다. 이날 회의에는 여권 추천 허연회, 황성욱 위원과 야권 추천 김유진 위원이 참석했다. 여권 위원들은 “어제 국회에서 엄청 난리가 나고 언론에서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타파 건을 긴급 심의하자”고 밀어붙였다.
‘긴급 심의’ 안건이 처리된 건 9월 12일 제32차 방심위 방송소위 회의에서였다. 2022년 3월 7~8일 사이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한 4개 방송 프로가 대상이었다.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YTN 뉴스가 있는 저녁, JTBC 뉴스룸이었다. 뉴스타파보다 먼저 ‘윤석열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JTBC 보도(2월 21일, 2월 28일)는 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12일 회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류희림 위원장이 직접 “JTBC 2월 21일·28일 보도에 (대해) 민원이 제기된 게 없냐”고 물은 뒤 “다음 주 안건에 올리자”고 한 것이다. 류 위원장의 이런 ‘사실상의 지시’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고, 결국 ‘긴급 심의’ 안건으로 채택됐다. ‘허위 민원’이 ‘긴급 심의’에 오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래는 지난해 9월 12일 제32차 방심위 방송소위 회의 회의록 중 일부다.
○류희림 위원장: 한 가지 제가 담당 팀장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허연회 위원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 건은 JTBC가 단독 보도로 시작해서 2월 21일, 같은 내용을 2월 28일 보도했는데 이 관련해서 민원은 제기된 게 없습니까?
○방심위 종편보도채널팀장:다수 민원이 들어와 있습니다.
○류희림 위원장:그런데 이거는 언제 합니까? 오늘은 여기 보니까 오늘은 3월 7일 뉴스룸에 대한 거고 2월 21일하고 28일 민원은 심의를 언제 합니까?
○방심위 방송심의국장: 저희가 민원은 기존에는 민원 접수 순서대로 안건 상정을 했었고요. 지난 31차 소위에서는 작년 3월 6일 뉴스타파 김만배 인터뷰 관련 인용 보도한 내용 중 민원이 접수된 건에 대해서 긴급 심의하기로 결정하신 바 있습니다.
○류희림 위원장:그러면 지금 올라온 거 당연히 되어 있죠, 2월 21일, 28일?
○방심위 방송심의국장:2월분에 대해서는 일단 지난주에는 긴급 심의 대상으로는 결정을 안 하신 게 됩니다.
○류희림 위원장: 그러면 이거는 언제 결정하면 됩니까?
○방심위 방송심의국장: 오늘이라도 결정하시면....
○류희림 위원장: 그러면 이거는 오늘 2월 21일 건, 그리고 JTBC가 지난번 사과 방송한 것도 2월 21일하고 28일 건입니다. 자신들이 3월 7일 날 보도한 데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이 안건을 다음주 안건에 올릴 수 있도록 제가 말씀을 드리는데 다른 위원들 동의하시면.... (“예.” 하는 위원 있음) 다음 주에 2월 21일하고 28일 같은 내용이니까 안건 상정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제32차 방심위 방송소위(2023년 9월 12일) 회의록 중 일부
결국 JTBC는 ‘허위 민원’을 근거로 진행된 '긴급 심의'를 통해 1000만 원의 과징금을 받게 됐다. 뉴스타파를 인용한 2022년 3월 7일 보도로 받은 과징금 2000만 원과는 별개였다.
JTBC에 대한 ‘허위 민원’을 낸 사람 중에는 류희림 위원장의 아들도 포함돼 있다. 아들이 JTBC의 2월 21일과 28일 보도를 상대로 낸 민원 역시 뉴스타파(3월 6일)인용보도라며 낸 ‘오류 민원’이었다. 류 위원장은 지난 19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청부민원'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에게 왜 민원을 제기했냐고 물어보니 ‘이게 뉴스가 되고 해서 (심의 민원을) 냈다’고 하는데, 그것도 내가 잘못한 것이냐.”
오탈자까지 똑같은 ‘복붙 민원’이 만들어진 희한한 일에 대해서는 “난 모른다”고 했다.
류희림, '가짜뉴스센터'를 '신속심의센터'로 변경...자의적·정치적 심의 우려
방심위의 역할과 기능, 방심위 규정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 해도, ‘허위 민원’을 심의의 근거로 해서 방송사에 과징금이나 벌점을 물리는 행위는 분명 비상식적이다. 하지만 류 위원장은 ‘긴급 심의’를 결정하면서 해당 민원이 허위인지 아닌지, 심의에 올릴만한 대상이 되는 민원인지 아닌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뭔가에 쫓기듯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누구의 지시나 부탁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류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취재하는 도중 취재진은 방심위의 한 관계자로부터 “허위 민원을 이유로 심의를 진행해도 되는지에 대해 방심위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류 위원장이 방심위 직원들의 이런 걱정을 알고도 일을 밀어 붙인 것인지 궁금하다.
류 위원장이 뉴스타파 인용 방송사는 물론, 인용 보도와 관련없는 JTBC 보도를 처리한 무기인 ‘긴급 심의’에 대해서는 방심위 내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다. 윤석열 정부 들어, 특히 류 위원장이 방심위에 등판한 뒤로 흔히 ‘새치기 심의’라고 불리는 ‘긴급 심의’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류희림 등판 이전 6기 위원회에서는 단 한번 뿐이던 ‘긴급 심의’가 류희림 등판 이후 총 20개 방송사와 방송 프로그램을 상대로 진행됐다.
지난해 9월 류희림 위원장이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 만들었던 ‘가짜뉴스센터’는 지난해 말 아예 ‘신속심의센터’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과거 ‘가짜뉴스센터’ 시절에는 접수된 민원을 사무처 직원들이 안건으로 만들었는데, ‘신속심의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위원들이 직접 안건으로 결정하게 했다. 방심위 구성이 여야 6:1 구도인 점을 생각하면, 이제 류 위원장은 민원만 들어온다면, 원하는 대상을 상대로 원하는 시점에 심의해 징계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정치심의'가 가능해졌다.
2021년 7월 위촉돼 지난 5기 방심위부터 활동한 야권 추천 윤성옥 방심위원(경기대 교수)은 “심의 순서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정치적이고 의도적인 심의의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박종화 bell@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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