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1심만 5년···형사소송 대원칙 다 끄집어내 무죄 받은 사법부 최고법관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의 26일 1심 무죄 판결은 사법농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6년11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경향신문은 2017년 3월6일자 1면에 <‘판사들 사법개혁 움직임 저지하라’ 대법, 지시 거부한 판사 인사조치>라는 제목으로 대법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저지 지시와 이탄희 판사(현 국회의원)의 사표 제출 소식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그해 4월7일에는 대법원이 인사 불이익을 주려고 특정 판사들의 성향·동향을 파악했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보도했다. 공고한 사법행정권의 성역에 균열을 나는 순간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 지시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자체 조사를 했지만 두루뭉술한 결론으로 사건을 덮으려 했다. 전국 법원의 판사들이 줄줄이 법관회의를 열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은 2018년 1월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취임 후 이뤄진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보고서 중 ‘별지’가 충격을 줬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 사건을 놓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의견을 주고받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이 때부터 재판 거래 의혹으로 커졌다. 시민사회는 사상 초유의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법관 탄핵을 주장했다.
사법부를 겨냥한 검찰 수사는 자칫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어 쉽지 않은 문제였다. 김 전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뒤에야 검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9년 1월24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2018년 10월27일 서울중앙지법의 영장 발부로 구속됐다. 두 사람은 각각 2019년 2월11일, 2018년 11월14일 재판에 넘겨졌다.
사법농단 사건 재판은 법원이 법원 내부에서 발생한 일을 스스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가피했다. ‘팔 안으로 굽기’식 재판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재판과 법리에 해박한 양 전 대법원장 등 피고인들은 재판 단계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들을 끄집어냈다. 규정은 있지만 일반적인 재판에서 좀체 작동하지 않는 원칙들을 제시하며 재판 진행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은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재판부도 중간에 변경됐다. 이후 재판 갱신 절차에만 수개월이 소요됐다. 재판 초반 수사팀 검사들이 대거 법정에 나와 피고인들과 각을 세웠던 검찰은 재판 후반에 들어서는 출석 검사의 수도 줄고 태도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언론의 관심도 점차 시들해졌다. 2022~2023년에는 이 사건 재판정이 텅 빌 정도였다.
이날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법농단 사건으로 검찰이 기소한 피고인 총 14명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현재까지 2명(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 불과하다. 유죄 사건은 현재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다음달 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 선고를 한다.
임성근 전 판사의 경우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재직 중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법원이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해 법조계에서조차 견강부회식 법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회는 임 전 판사의 법관직 파면을 요구하는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를 각하했다. 직·간접적으로 사법농단에 관여한 법관 대부분은 법복을 벗었다. 이들은 현재 유수의 대형 로펌들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006160600015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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