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집회에서 끌려나가는 기자들 "모욕감 느껴"

김예리 기자 2024. 1. 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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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영상활동가 쫓아내…비마이너·레디앙·경향 기자까지
"모욕감 느껴, 명백한 언론탄압…반인권행위 기록 못해 더 문제"
진압 지휘한 교통공사 안전센터장 '취재 방해한 적 없다' 주장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을 물리적으로 진압한 서울교통공사가 현장을 취재하는 언론인까지 강제로 퇴거시켰다. 폭력 진압이 언론 탄압에 이르렀다는 언론계 안팎의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4일 오후 1시께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환승 통로에서 전장연이 주최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 철회 및 복직 투쟁' 기자회견 시작을 앞두고 직원들을 동원해 레디앙 기자와 장호경 다큐멘터리 감독 등 언론인을 현장에서 끌어냈다. 공사 측은 이들을 포함한 언론인과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기자회견 시작 전 모두 퇴거 조치했다.

▲여미애 레디앙 기자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서 전장연이 주최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 철회 및 복직 투쟁' 기자회견에 앞서 공사에 의해 강제 퇴거를 당하는 모습. 사진=여미애 기자 제공
▲지난 24일 오후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서 전장연이 주최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 철회 및 복직 투쟁' 기자회견에 앞서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공사에 의해 강제 퇴거를 당했다. 사진=여미애 기자 제공

여미애 레디앙 기자는 당시 상황을 두고 “최영도 센터장(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이 내 앞으로 와 반말로 '기자야? 명함 내놔 봐'라고 말하더라. 명함을 건넸더니 최 센터장이 명함을 바닥에 던지며 '이게 무슨 기자야? 끌어내'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 5명이 머리와 목덜미를 잡고 저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여 기자는 이후 경찰이 재차 명함을 요구해 '이미 보여줬다'고 말했더니 “(서울교통공사) 홍보실과 논의됐느냐, 홍보실과 얘기하라”는 말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서울교통공사가 기자들임을 알고도 퇴거 조치를 벌였다는 점에서 큰 사건이라고 생각하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장호경 다큐멘터리 감독도 이날 현장에서 끌려나왔다고 했다. 장 감독은 “조끼를 입거나, 구호를 외치거나 시위대 안에 있다거나 피켓을 들지도 않고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을 뿐인데 강제 퇴거조치하고, 항의하면 '너 시위대잖아, 당신 불법시위대잖아'라고 답한다”며 “서울교통공사측은 어떤 명분도 제시하지 않고 '너희도 불법시위대'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했다.

지난 22일 전장연 기자회견을 취재한 기자들도 공사 측에 의해 강제 퇴거 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전장연이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3주기를 맞아 서울지하철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이를 취재하던 비마이너 및 경향신문 기자 등이 기자 신분임을 수차례 밝히며 명함을 건넸음에도 현장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24일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3주기를 맞아 전장연이 서울지하철 혜화역 승강장에서 진행한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하민지 비마이너 기자를 끌어내는 장면 캡쳐. 사진=하민지 기자 제공

하민지 비마이너 기자는 “최 센터장이 쫓아내려 해 기자라고 말하니 명함을 요구해 줬다. 그랬더니 '여기 전장연 계간지(기관지)예요. 자, 퇴거시켜!'라고 말했고, '무슨 말씀이시냐'고 항의하는 사이 직원 6명이 와 양팔을 붙잡고 몸을 밀어내 대합실까지 쫓아냈다”고 했다. 그는 “대합실에서는 비명소리만 들리고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 취재가 어려웠다”고 했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복건우 오마이뉴스 기자도 “기자라고 밝혀도 최 센터장이 '상관없어, 퇴거시켜'라고 말하면 직원들이 끌어내더라”라며 “현장마다 공사 측이 언론인에 한 번씩 퇴거명령하고 기자인지를 확인하는 일들이 일상화했다”고 했다.

활동가 끌어내다가 이제는 영상활동가에 기자까지

서울교통공사가 현장 취재진을 쫓아내는 사례는 지난달 중순부터 전해지기 시작했다. 독립 영상활동가들을 시작으로 비마이너와 온라인 매체, 신문사 기자에 이르기까지 쫓아내는 대상이 확대됐다. 장 감독은 “현장을 다큐로 기록하는 감독이 저 포함해 3명 정도인데 12월부턴 첫 순서로 끌려나간다”며 “촬영자는 예외로 했던 기조가 있었는데 이제는 법의 눈치도 경찰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눈에 거슬리면 강제퇴거' 식이 됐다”고 했다.

장 감독은 “(공사 측은) 큰 카메라를 든 사람이나 보조(오디오맨 등)를 데리고 오거나 정장 차림인 기자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을 보면 몸으로 딱 막아선다”며 “최근엔 직원들에 의해 뒤로 밀리는 바람에 팔꿈치를 다쳐 물리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기자들은 공사 측 조치가 용납할 수 없는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하 기자는 “공사에서 전장연 시위와 관련한 주장을 보도자료로 뿌리는데, 사실관계를 짜깁기할 때가 있다. 이를 검증하려면 현장 취재가 매우 중요한데 여기에 지장이 생긴다”며 “끌려나가는 경험 자체가 사람을 위축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장 감독은 “더 큰 문제는 영상이나 사진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공사와 경찰의) 반인권 행위가 벌어지고 이것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비장애인이 가장 먼저 끌려나가고 장애인 당사자들만 고립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어떻게 보면 공사의 퇴거 조치는 그걸 의도하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 기자는 “(최근) '천공 보도'를 한 언론사의 대통령실 출입 퇴출 소식이 알려졌고, 국회의원(강성희 진보당 의원)도 (대통령 참석 행사장에서) 끌려나오지 않았나”라며 “현장에서 언론을 쫓아내고 입을 틀어막는 조치가 전 분야에서 동시다발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서 전장연이 주최한

“공사 퇴거 조치도 취재 대상…명백한 언론 탄압”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통화에서 “기자회견과 시위는 그 내용과 무관하게 취재 대상인 공적인 행동이다. 서울교통공사의 역할은 안전하게 시위할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며, 설령 불법적인 일에 조치한다 해도 그 행위 역시 취재 대상”이라며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공사측 대응은) 전장연의 기자회견와 시위를 진압해왔다는 점에서 소수자 혐오가 깔린 문제인 데다, 작거나 독립적인 매체부터 탄압했다는 점에서 차별과 편견을 드러낸다. (공사가) KBS와 MBC 카메라에 그렇게 조치했을까”라며 “더구나 공적 장소에서 일어났고 현재는 누구나 모든 걸 영상으로 찍는 시대에 공사의 이런 행위는 시민 누구에게나 이같이 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최 센터장 “시위대 일원이라 생각” 공사 “취재 막지 않을 것”

최영도 센터장은 26일 “비마이너와 레디앙 기자는 불법시위대와 섞여 있어 일원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경향신문 기자는 쫓아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실은 홍보실이 단일 언론 창구라 연락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언론 취재를 금지하거나 방해하는 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특정 언론사를 '전장연 기관지'로 칭하며 끌어낸 이유를 묻자 “전장연 기관지가 나쁜 의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공장소에서 공사가 주최하지 않은 기자회견 취재를 막는 이유에 대해 공사 언론팀장은 “시설장 허가를 득하지 않은 시위라는 점과 관계 있다”며 “사전에 홍보실에 연락 주면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팀장은 “기자들의 취재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것이다. 미디어를 가려가며 퇴거(요구)하진 않는다”며 “(최 센터장이) 앞으로 레디앙과 비마이너 기자 취재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경우는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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