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행정권 남용’ 양승태, 1심서 47개 혐의 모두 무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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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이같이 선고했다.
헌정 사상 전직 대법원장이 기소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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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 혐의 모두 “범죄증명 안 된다”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 2019년 2월 검찰이 기소한 지 4년 11개월 만에 1심 선고가 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해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제기된 혐의 47개, 박 전 대법관 33개, 고 전 대법관 18개가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2017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상고법원 설립 등 대법원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특정 사건의 판결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와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일명 ‘재판 거래’를 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재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이다.
또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 방침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법관들, 이른바 ‘튀는 판결’을 선고하는 법관을 통제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혐의,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대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헌재 파견 법관을 통해 내부 정보를 수집하고 대법원과 중복으로 진행하는 사건에 대해선 조기 선고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는 혐의 등도 받았다.
◇ 직권남용 했는지가 쟁점...“임종헌 일부 직권남용, 양승태와의 공모 X”
이 사건의 쟁점은 양 전 대법원장이 본인에게 부여된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법원 관계자들에게 시켰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검찰이 적시한 범죄 혐의별로 ▲일반적인 대법원장의 직무권한 범위에 해당하는지 ▲허용되는 범위의 직권을 행사한 것인지 ▲직권을 남용한 것인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의 공모관계가 인정되는지 등에 대한 판단을 일일이 열거했다. 선고에만 무려 4시간30분이 걸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재판부는 대부분의 혐의 사실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이 일반적인 직무권한에 해당하는 업무를 했으며 직권남용을 하지 않았다고 봤다.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려고 했다는 혐의 등 일부에는 임종헌 전 차장의 직권남용이 인정됐지만 양 전 대법원장과의 공모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률신문에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 초안을 대신 작성한 사건에 대해서도 직권남용이 인정됐지만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고 전 대법관의 직권행사 공모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범죄를 증명 못했다”고 했다.
‘일본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경우 검찰은 양 전 대법원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가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 등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지연되도록 청와대에 협조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판결과 관련해 외교부와의 관계에 미칠 여파 등을 고려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임종헌 전 차장이 사법부의 대외관계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외교부를 절차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했을 뿐 재판에 개입한 문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주심 대법관에게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해 판결을 번복하고 재판절차를 지연하게 한 혐의에 대해선 일반적 직무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로 봤으나,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전원합의체 주심 대법관과 논의하는 것으로 보일 뿐, 직권 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판 개입 사건으로 검찰이 지목됐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처분’과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이 일반적인 직무권한 내의 일을 했으며 직권 남용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입장과 배치되는 이른바 ‘튀는 판결’을 하는 판사를 ‘물의야기 법관’으로 관리하면서 부당한 인사 발령을 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관계 법률·내규에 따라 인사 업무를 위해 공무원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의야기 법관과 관련한 보고서가 변칙적인 징계·문책 수단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물의야기 법관에 포함된 8명을 전보 조치한 것에 대해선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며, 근무 희망지 등을 고려해야 하긴 하지만 절대적 기준은 아니어서 재량권 일탈,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을 위축·와해시키기 위한 대응방안 마련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선 “인사모가 전문분야 연구회의 제도적 취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인사모가 활동 반경을 넓히자 이를 막기 위한 대응방안 마련 보고서 작성지시는 직권남용을 인정했지만 임 전 처장과의 공모는 없었다고 봤다.
◇ 양승태 “당연한 귀결”... 임종헌 전 차장 1심만 남아
이 사건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을 법정에 세운 것과 검찰 기소로부터 1심 선고까지 무려 4년 11개월이 걸린 최장기 재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은 277번 진행된 공판 내내 본인들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해박한 법 지식을 토대로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해 나갔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은 선고를 마치고 나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며 “명쾌하게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검찰이 재판에 넘긴 전·현직 법관은 총 14명이다. 현재까지 6명에게 대법원 무죄 판결이 확정됐으며, 4명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중 2명만이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 등 3명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면서 하급심 판단이 남은 사건은 오는 2월 5일 선고 예정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이 유일하다.
검찰은 작년 9월 결심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게는 각각 징역 5년,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선고가 나온 후 검찰은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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