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걸린 1심 277차례 재판…‘법 기술자’ 지연전략에 끌려다닌 법원

이정규 기자 2024. 1. 26. 18:2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재판은 재판 진행부터 선고까지 모든 장면이 이례적이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지 1810일(약 4년11개월)만에야 나온 1심 선고는 판결문을 읽어내리는데만 4시간 넘게 소요됐다.

선고 4시간을 넘긴 오후 6시20분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심 선고 시간만 4시간 넘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1월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기에 앞서 자신이 근무했던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러 도착하고 있다. 뒤쪽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재판은 재판 진행부터 선고까지 모든 장면이 이례적이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지 1810일(약 4년11개월)만에야 나온 1심 선고는 판결문을 읽어내리는데만 4시간 넘게 소요됐다. 재판부는 선고 도중 휴정을 하는 등 법정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양 전 대법관 1심 선고는 이날 오후 2시께 서울중앙지법 358호 법정에서 형사합의35-1부(재판장 이종민) 심리로 진행됐다. 법정으로 들어선 재판장은 약 40㎝ 두께의 서류를 법대 위에 올려뒀고 방청석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100석에 달하는 방청석은 변호인단과 취재진, 방청객으로 가득찼다. 방청석엔 재판 개입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다가 ‘직무상 권한이 없으니 이를 남용할 수도 없다’는 논리로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도 자리해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판결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장시간 선고’를 예고했다. 재판장인 이종민 부장판사는 “공소장이 300여페이지에 달한다. 따라서 판결 이유 설명만 상당히 많은 시간이 예상된다”며 “공고사실 요지설명이 간략하게 이뤄질텐데 이런 방식으로 선고를 진행해도 오늘 일과 중에 마쳐질 지 미지수다. 요지를 설명하는 도중 휴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양해 바란다”고 말했다.

“공모를 인정하기 어렵다” “양승태가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직권남용을 인정하기 어렵다” “증명이 없다”

재판장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판결 요지를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대부분의 내용은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마스크를 쓴 채 피고인석에 앉은 양 전 대법원장은 두 눈을 감고 있어가 허공을 응시했다. 2시간 가까이 판결문을 읽어내리던 재판부는 오후 4시10분께 잠시 휴정시간을 가졌다. 휴정 시간 도안 양 전 대법원장은 법정 안에서 변호인과 대화하며 눈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선고 4시간을 넘긴 오후 6시20분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 등 법원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를 위해 각종 재판에 부당 개입,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인사상 불이익 준 혐의 등 총 47개 범죄사실로 2019년 2월11일 구속 기소됐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의 죄명이 적용됐다.

검찰 기소 이후엔 1심 선고까지 공판기일만 277차례 열려 재판지연의 대표적 사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서와 증거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증거 부동의) 134명(중복 포함)의 증인을 불러 신문해야 했고, 재판부 변경에 양 전 대법원장 쪽이 ‘원칙적인 공판갱신 절차’를 주장해 재판은 더욱 길어졌다. 2021년 2월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되자 양 전 대법원장 쪽은 증인 녹취파일을 하나하나 재생해 공판갱신 절차를 밟았고 여기에만 7개월이 소요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 기술자의 재판 지연 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수십만 쪽에 이르는 검찰 수사 기록 역시 재판 지연의 원인이었다.

법정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