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듯 ‘틱톡’ 속 소녀…태어나자마자 팔려간 쌍둥이였다

정인선 기자 2024. 1. 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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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다큐멘터리 ‘조지아의 도난당한 아이들’
병원이 산모·입양 가족 속이고 ‘불법 입양’
TV 오디션·틱톡 보고 확신…20여년 만에 재회
아노 크비샤(왼쪽)와 에이미 크비샤 자매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친모 아자와 재회하고 있다. 비비시(BBC) 유튜브 영상 갈무리

지난 2014년 튀르키예와 국경을 맞댄 국가인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사는 열두살 소녀 에이미 크비샤는 ‘최애’ 티브이 프로그램 ‘조지아 갓 탤런트’를 보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녀를 발견했다. 아노 사르타니아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노란 원피스를 입고 신나게 자이브를 췄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에이미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네 딸이 ‘조지아 갓 탤런트’에 나왔는데, 왜 다른 이름을 하고 춤을 추고 있냐”고 물었다.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은 에이미에게 “그저 우연의 일치”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넘어갔다.

아노 사타니아가 2014년 ‘조지아 갓 탤런트’에 출연한 모습. 비비시 유튜브 영상 갈무리

7년이 흐른 뒤인 2021년, 19살이 된 에이미는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채 눈썹 위에 피어싱을 새로 한 모습을 틱톡에 올렸다. 트빌리시에서 320㎞ 떨어진 도시에 살고 있던 아노 사타니아는 친구로부터 이 영상과 함께 “너 언제 염색했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틱톡 영상 속 자신과 똑 닮은 에이미의 모습을 본 아노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니, 정말 멋진걸? 어서 얘를 찾아야 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노가 ‘영상 속 소녀를 찾고 있다’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자, 친구를 통해 이 글을 전해 받은 에이미는 한눈에 아노를 알아봤다. 에이미가 먼저 ‘그때 그 조지아 갓 탤런트에 나온 소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널 얼마나 오랫동안 찾아 헤맸는데!“ 아노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에이미와 아노에겐 공통점이 한둘이 아녔다. 두 사람 모두 음악과 춤을 좋아했고, ‘쇼트커트’(숏컷)으로 자른 머리 모양도 비슷했다. 심지어 유전병인 골이형성증까지 똑같이 앓고 있었다. 둘은 우연의 일치로 외모가 닮은 ‘도플갱어’가 아니라, 20년 전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 자매였다.

에이미 크비샤(오른쪽)와 아노 사타니아가 생모와 재회를 위해 독일 라이프치히를 찾은 모습. 에이미 크비샤 인스타그램 갈무리

영국 비비시(BBC)가 26일(한국시각) 공개한 다큐멘터리 ‘조지아의 도난당한 아이들’(Gorgia’s Stolen Children)에는 에이미와 아노가 처음으로 만나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부터, 독일 라이프치히로 생모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 세세히 담겼다. 에이미는 비비시에 “아노를 처음 보자마자 쌍둥이라는 걸 알았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아노는 “원래 포옹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에이미를 꼭 껴안았다”고 했다. 이들이 20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은 태어나자마자 ‘불법 입양’ 됐기 때문이다.

에이미와 아노는 각자의 가족들에게 진실을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에이미의 엄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내게 한 친구가 지역 병원에 (가족이 기르길 원치 않는) 아기가 하나 있다고 말해 줬다. 의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그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길렀다”고 털어놨다. 아노의 엄마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비비시 보도를 보면, 에이미와 아노의 가족들은 모두 불법 입양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 쌍둥이 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도 (돈을 주고 아동을 입양하는 것이) 불법임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두 가족 모두 입양을 위해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에이미 크비샤(왼쪽)와 아노 사타니아가 생모와 재회를 위해 독일 라이프치히를 찾은 모습. 비비시 유튜브 갈무리

아노는 “돈 때문에 우리를 버렸을지 모르는 사람을 뭐하러 찾아야 하느냐”며 망설였지만, 에이미는 그렇지 않았다. 에이미가 출생 직후 불법 입양된 걸로 의심되는 자녀들을 가족과 다시 만나도록 돕는 페이스북 그룹에 ‘생모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며칠 뒤 독일에 사는 한 젊은 여성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는 “에이미와 아노가 태어난 바로 그 병원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2002년 쌍둥이 자매를 낳았는데, 출생 직후 자매가 사망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세 사람은 자매가 맞았다. 극적으로 쌍둥이 자매와 다시 만난 생모는 비비시에 “출산 후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깨어나 보니 병원 직원들이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병원이 생모와 입양 가족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과거 조지아의 ‘영유아·아동 거래’는 광범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비시는 “지난 2022년 조지아 정부가 그동안 벌어진 아동 인신매매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40명이 넘는 이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너무 오래돼 자료가 유실됐다’는 결론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이어 “앞서 2003년 국제 아동 인신매매 관련 조사 끝에 여러 관련자가 구속됐지만 외부에 공개된 정보가 별로 없다. 2015년에도 한 차례 더 조사가 이뤄졌지만, 조지아 현지 매체를 보면 (아이들을 팔아넘긴) 산부인과 책임자가 구속됐다가 풀려나 업무에 복귀했다”고 전했다.

에이미 크비샤와 아노 사타니아의 생모 아자가 영국 비비시와 인터뷰하고 있다. 비비시 유튜브 갈무리

에이미 자매가 생모를 찾은 페이스북 그룹 ‘나는 찾고 있다’에는 현재 23만명 이상이 가입해 있다. 그룹 운영자인 조지아의 기자 타무나 무세리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자신이 불법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 그룹을 만들었다. 수백 쌍의 가족이 다시 만나는 데 도움을 줬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가족은 찾지 못했다. 무세리제는 비비시에 “(1950년대 초부터 2005년까지) 최대 10만명의 아기가 조직적으로 팔려나간 거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비비시는 조지아가 2005년 입양법을 개정하고, 2006년 인신매매 방지법을 강화해 불법 입양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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