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없는 SOC 발주···"공사 맡으면 30% 손해보고 시작"
건설사 "이익은커녕 적자" 외면
발주도 특정시기 몰려 수급 난항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등
올 발주 5건 모두 시공사 못찾아
"가용예산 맞춰 발주금액 등 조정을"
건설사들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기업이 발주한 공공공사를 외면하는 것은 공사를 수주해도 이익이 남기는커녕 오히려 적자를 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원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 등 공사 원가가 급등했지만 예산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전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다. 정부가 올해 SOC 예산을 지난해보다 5.3% 늘어난 20조 7776억 원으로 편성했지만 공사비에 물가 상승분 등이 포함되지 않으면 건설 업계의 SOC 사업 외면으로 인해 경기 부양 효과도 미미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건설 업계는 지자체 등 공공공사 발주 기관이 사업 계획 수립 시점부터 적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공사의 유찰 현상은 올 들어 더욱 악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17일까지 발주된 공공공사(기술형 입찰 중 지자체·교육행정기관·지방공기업 등 지방계약법 대상) 5건은 모두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유찰된 상태다. 이 중에는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 개발 2공구 건설 공사와 서울 광화문·강남역·도림천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건설 공사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사업 모두 제때 준공하지 못하면 GTX-A와 C 노선 개통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인명·재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비가 실제 사업을 하기 위한 금액보다 30%가량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건설 업계는 사업비 책정부터 공사 발주까지 2년 가까이 소요되지만 그 사이 공사비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는 점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원자재·인건비가 급등하고 경기 침체에 따른 미분양 증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등 유동성 문제로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수년 뒤 실제 시공에 들어갔을 때 수지가 맞지 않을 위험이 커 ‘공공공사 시공은 곧 적자’라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발주 기간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 점도 입찰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발주된 15건 중 5건이 12월에 몰려 있고 이 가운데 4건이 12월 14~19일(7일)에 발주됐다. 올해 발주된 5건의 공사 중 4건이 15~17일(4일)에 공고된 상황이다. 이들 공사는 모두 시공사를 찾지 못해 재공고를 진행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예산 운영의 편리성과 안전성만 고려해 공공공사가 발주되다 보니 특정 기간에 사업이 몰리는 것 같다”며 “공사가 몰리면 자재와 장비 수급이 어려워지고 공사가 지연될 위험도 커지다 보니 입찰을 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방계약법(지자체·교육행정기관·지방공기업 등)이 아닌 국가계약법(국가기관·공공기관·공기업 등)을 적용받는 공공공사도 유찰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발주한 ‘배곧서울대학교병원 건립 공사’는 지난해 3차례 공고를 냈으나 유찰을 피하지 못했다. 3782억 원으로 책정된 사업비를 4343억 원으로 높이고 시설 요구 수준을 낮추고 나서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신청서를 접수했다. 해양수산부가 발주한 추정 금액 3516억 원 규모의 ‘부산항 진해신항 남측 방파호안(1단계 2공구) 축조 공사’도 시공사를 찾지 못해 수의계약으로 전환한 상태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 전체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심성·전시성 사업 발주가 남발되다 보니 정부로서도 제때 시공사를 찾지 못해 공사가 지연되고 건설사도 공기가 짧아져 안전 및 품질 확보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 유찰 문제가 심화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지적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건설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SOC 예산을 지난해보다 5.3% 증가한 20조 8000억 원으로 편성하고 이 중 신속 집행 관리 대상(19조 1000억 원)의 65.0%(12조 4000억 원)를 선집행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부문 투자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 건설 부문의 투자를 먼저 상반기에 집중해 경제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작 공공공사가 발주되더라도 건설사 수주로 이어지지 못하면 경기 부양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지자체 등 공공공사 발주 기관이 중기 지방 계획과 투자 심사를 기초로 예산을 편성하고 사업 계획 수립 시점부터 적정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며 “활용 예산에 맞춰 발주 금액 및 공사 규모를 조정하는 등 공공공사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무 도시공학과 교수도 “금리에 대한 이자 비용은 물론 건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비용이 크게 오른 상황”이라며 “최근 벌어진 시장 여건에 대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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