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을 학습한 AI가 물었다…"인간이란 무엇인가?"
(10) AI와의 공존 시대
인간에게 인공지능(AI)의 등장은 두려운 일이다. 결점 없는 AI의 모습이, 결점투성이인 인간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AI 앞에서 느끼는 자괴감과 무력감은 공상과학(SF) 영화에 등장하는 AI 악당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다. ‘아이, 로봇’ ‘어벤져스’ 등에 나오는 AI 악당들은 “인간은 자정작용이 어려운 열등한 존재”라고 입을 모은다.
동시에 인간은 AI를 동경한다. 이유는 같다. 특유의 완전무결함이 AI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AI를 인간과 동일한 선상에 두고 있다. 영화 ‘그녀’에선 주인공이 AI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AI에 밀린 인간, 반려견의 지위로
AI의 미래를 둘러싼 철학자들의 논쟁도 영화와 비슷하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극명하게 나뉜다.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비관론자들은 AI가 이성과 감성 모든 면에서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는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감정을 읽고 교감하는 행위까지 AI가 인간을 추월하게 된다면, 인간의 지위는 반려견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도 안 하고 소통 능력도 부족하지만, 인간 곁을 지키며 생존하는 반려동물과 AI에 의존하는 인간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5년 전부터 이런 미래를 예견했다. 그는 책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을 통해 AI와 인간성에 대한 관계를 정립했다. 인간의 뇌를 본뜬 ‘일반인공지능(AGI)’ 개발이 완료되고 나면 인간의 지성이 AI를 앞지를 수 없다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인간이 AI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인간이 가장 우월한 지성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감정도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일종의 ‘패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심층 연구한 분야가 ‘인공 두뇌학(사이버네틱스)’이다. 전기적 신호와 통제 체계를 분석해서 인간의 의식과 감정을 해석한다.
비관론은 과장된 공포에 불과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성이 있다는 반론도 거세다. 인간성 연구에 천착한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AI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수 있어도 인간과 교감할 수 없다”며 “AI는 결국 도구에 불과하고, 이를 잘 활용하면 인류는 AI를 통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간 감정의 기저에는 인정욕구가 있다고 봤다.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의미를 찾는 과정의 결과물이란 해석이다. 이를 기준 삼아 인간을 짐승과 구분한다. 반면 AI는 인간과 달리 인정욕구가 없다. 불안과 공포도 초월한 존재다.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면 타인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AI가 인간 감정을 학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의 정서를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AI의 발전보다 인류의 퇴보를 걱정했다. 인간이 행복과 쾌락을 혼동하면서 감정에 대한 사유가 왜곡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감정을 수용하는 역량이 도태되면 인간이 AI와 다를 게 없어진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AI가 인간을 추월할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인간이 로봇처럼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욕망을 AI에 외주화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AI의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AI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 상태에선 미래에 대한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설명이다.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중원 서울시립대 교수는 “AI를 ‘비인간 인격체’로 규정해서 권한과 의무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철학은 과학과 관련한 윤리·사회적 문제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비인간 인격체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사회적 인격체로 정의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과 특정 재산을 인간처럼 대우하는 ‘법인격’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지금 AI를 사회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AI의 기초적인 동기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며 “설명할 수 없는 존재는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하지 못하는 대상은 연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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