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절대 가벼이 여긴 적 없다"…'경성크리처' 박서준의 진심

강선애 2024. 1. 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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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 박서준에게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는 여러 면에서 도전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도, 크리처 장르도 처음인데, 두 개의 시즌을 한꺼번에 촬영하느라 2년이나 걸린 작품도 처음이었다. 오랜 시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의미 있는 도전인 만큼, '경성크리처'는 박서준에게 뿌듯한 기억으로 남았다.

박서준이 '경성크리처'의 합류를 결정한 건, 어떤 거창한 이유보다도 제작진의 준비성에서 엿보인 '진심' 때문이었다. '제빵왕 김탁구', '낭만닥터 김사부' 등을 집필한 강은경 작가,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은 스스로의 명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박서준과의 첫 만남부터 특별히 준비했다.

"처음에 작가님 사무실에서, 감독님까지 셋이 만났어요. 크리처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작품에 대해 이미 많은 것들을 고민하셔서 프레젠테이션처럼 만들어 놓으셨더라고요. 거기에 감동했어요. 그걸 보며, (작품에 들어가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시겠구나 싶었죠. 강 작가님과 작업을 꼭 해보고 싶었고, 정 감독님은 '이태원 클라쓰'와 '스토브리그'가 비슷한 시기에 방영돼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두 분과 함께라면, 좋은 순간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컸어요. 대본을 보니, 시대극과 크리처의 조합도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였죠. 책임감과 무게감도 느껴졌고요. 배우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대본이었어요."

'경성크리처'는 1945년 어두웠던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경성 최고의 자산가인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 장태상(박서준 분)과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는 토두꾼 윤채옥(한소희 분)이 일본군이 운영하는 옹성병원 지하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탄생한 '괴물'을 마주한 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슬픈 사투를 그린 드라마다.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고 그 시대를 버텨낸 다양한 인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박서준이 느꼈을 '책임감과 무게감' 부분에서 남다른 고민이 느껴졌다.

"학교를 다니며 역사 공부를 했으니, 당연히 저도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알고는 있었죠. 그런 것들을 (촬영장에서) 비주얼적으로 구현한 모습을 보니, 충격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더 경각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보는 것들에 대해 많이 찾아봤어요. 저도 이해를 해야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죠. '내가 이 드라마를 하며 중요한 부분들에 있어서 절대 가볍게 표현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갖게 됐고요."

'경성크리처'의 옹성병원 지하에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생체실험은 역사 속 실존 했던 '731부대'를 모티브로 한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조선인 등을 강제로 끌고 가 인체실험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부대다. '경성크리처'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그 파급력은 바다 건너 일본에도 전해졌다. '경성크리처'는 일본 넷플릭스 순위 2위까지 올랐고, 731부대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일본 젊은이들이 관련 자료를 찾아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박서준은 이런 긍정적인 반응들이 "한국 콘텐츠의 힘과 영향력"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블 영화 '더 마블스' 촬영을 위해 영국 런던에 머물며 직접 체감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모두가 저한테 '오징어 게임'에 대해 물어봐서 너무 신기했어요. 정작 전 '오징어게임'을 보기 전이었는데, 저보다 먼저 알고 그렇게들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뭔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저도 하루 만에 다 봤어요.(웃음) 그때 처음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대단해졌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오징어 게임'이 좋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플랫폼의 도움도 당연히 있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나라에서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았어요. 알려주고, 감정을 느끼게 해 주고,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단 걸 보여줄 수도 있죠. 당연히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기고, 연기를 더 잘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박서준은 '경성크리처'도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성크리처'도 일본 뿐만 아니라 190개국에서 오픈되니까.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게 되고,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될 거 같아요. 그게 콘텐츠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크리처와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건 드라마적인 요소이고,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알려지는 것에 있어서 순기능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저로서는 그 시기를 살아간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서 무게감을 많이 느꼈죠. 감정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시기였을 거라는 추상적인 생각에, 내가 그 무게감을 어떤 호흡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절대 가벼이 여긴 적은 없어요."

장태상은 본정거리의 돈과 정보를 모두 손에 쥔 인물로, 일본 수뇌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선의 독립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장태상은 살아남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본정거리 사람들의 일상과 평화를 위해, 내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모든 걸 내걸 수 있는 사람이다. '쌈 마이웨이', '이태원 클라쓰' 등에서 성장형 캐릭터를 그려내는데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 박서준은 이번에도 장태상의 성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독립군이었던 태상의 어머니가 죽기 전에 '태상아 살아라'고 유언을 남긴 후, 태상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노력했을 거 같아요. 어머니의 피가 있으니 독립에 대한 마음이 있어도 애써 부정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독립운동도 중요하지만, 태상이한텐 본정의 사람들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초반에 했어요.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려운 일들도 가볍게 받아치면서 능글맞게 살았을 거 같기도 하고, 반대로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자기 사람들을 만들어 중요한 순간에 그걸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런 인물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옹성병원에 들어가며 인물의 성장이 그려지는데, 그 변화에 방점을 뒀어요. 마지막에 이 인물이 변화했을 때 포인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초반에는 조금 더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그 폭이 클수록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크게 와닿지 않을까 싶었죠."

1945년이 배경인 시대극인 만큼, 의상이나 말투 등에서도 그동안 해본 적 없는 다양한 시도를 해야 했다. 의상팀, 미술팀과 함께 다 같이 회의를 많이 하며 그 시대에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 연구했고, '~했소', '~하오' 같은 말투가 어색하게 들리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시대극이라 전문적인 의상팀, 미술팀이랑 회의를 많이 했어요. 태상이는 조금 더 볼드한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의상들을 다 제작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멋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때의 멋이 뭐가 있을까 하며 사진을 찾아봤는데, 타이를 좀 빼서 핀을 꽂았더라고요. 그건 저만 아는 디테일인데, 그런 나름의 멋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어요.(웃음) 말투는, 대본을 보면 '사극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걸 뱉어 보면서 최대한 중간지점을 찾는 거 같아요. 배우는 표현하는 직업인데, 제가 표현하는 게 방식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어떤 것에 얽매이기보단, 주어진 대사를 가지고 계속 뱉으면서, 사극 말투는 아닌데 이때 말투인 것 같은 게 뭐가 있을까, 계속 찾는 과정이 있었어요."

장태상은 '경성크리처'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와 교류하며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다. 그러면서 일본에 당하고 흔들리는 조선인들의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아픔을 이야기한다. 특히 '경성크리처' 9부에서 장태상과 마에다(수현 분)의 대화는 이 드라마의 전체를 관통한다.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을 일"이라며,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우리가 살아남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가 당한 일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박서준은 이 장면을 연기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대본을 몇 달 전에 봤는데, 촬영이 임박할수록 너무 무겁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걱정도 되고 긴장도 많이 됐어요.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대사가,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오'인데. 그걸 어떻게 뱉어야 할지가 걱정되고, 너무 어렵고. 그 긴 독백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굉장히 무거웠어요. 9부 그 장면이 뇌리에 많이 남아요.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완성된 걸 보니 제가 굉장히 씁쓸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그때의 제 마음 상태가 그랬나 봐요. 그걸 보면서 장태상을 연기한 박서준이 아니라, 장태상이 되게 외로워 보이고 씁쓸해 보였어요."

박서준은 장태상으로서 다양한 인물들, 다양한 상황과 맞닥뜨리며 '안타까움'의 정서를 크게 느꼈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올 거란 기대도 없고, 행복을 꿈꿀 수 없는 그 시대를 온전히 버텨낸 인물을 연기하며,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깨달았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권리인데, 쉽게 행복할 수 없는 상황들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전 그래서 이 시기에 태어난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생각하는 대로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걸 온전히 내가 노력만 한다면 할 수 있고, 내 선택에 의해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땐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경성크리처'에서는 목숨을 건 사투 속에서 장태상과 윤채옥 사이에 로맨스가 피어난다. 박서준은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 한소희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서로 응원을 많이 했어요. 초반에는 같이 찍는 장면이 많이 없어서 한 달씩 못 볼 때도 있어서 만날 때 기대가 됐어요. 중간부터 같이 만나게 됐는데, 에너지도 너무 좋았고 연기적으로 욕심이 많은 친구라고 느꼈어요. 전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도 스태프들과 선배님들한테 너무 살갑게 잘하고. 그런 지점들이 한소희란 배우를 만든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좋은 에너지를 잘 받았어요. 덕분에 어려운 장면을 함께 할 땐 서로 응원하고 다독이며 잘 완성시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경성크리처'는 공개 후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다. 시대가 주는 독보적인 분위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배우들, 가슴 뜨거워지는 전개가 충분히 볼 만하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전개가 느려 긴장감이 떨어진다거나 크리처물의 장점을 못 살렸다는 지적, 캐릭터 설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혹평도 나왔다. 박서준은 작품의 성공 기준을 그런 '평가'로 보지 않았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전 일단 이 드라마가 2년 동안 스태프가 바뀌지 않고 다 함께 한마음으로 잘 완성시켰다는 게 성공인 거 같아요. 다양한 평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여태까지 했던 작품들이 호불호가 없었던 적이 없어요. 늘 좋다는 사람이 있으면, 아쉽다는 사람도 있고. 그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내가 어떻게 기준을 잡고 이 사람들과의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했느냐가 성공의 기준일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는 다 같이 같은 마음으로 잘 끝냈다고 생각해서, 그런 의미에서는 성공이지 않을까. 또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도 충분히 성공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캐릭터에 모든 걸 맞추는 배우가 있는 반면, 캐릭터를 자신에게 끌고 와 나의 색깔을 덧입혀 표현하는 배우가 있다. 박서준은 후자 쪽이다.

"전 항상 저로서 출발해요. '나였다면 어땠을까'로 시작하죠. 대본에 나와있지 않은 서사를 상상하며, 대본의 빈 공간을 채워 나가요. 나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어떤 습관이나 버릇이 있을까, 이런 상상으로 채워나가고 표현하는 편이에요. 내가 그 캐릭터가 된다는 건, 아직 저한테 좀 어려워요. 전 메소드 연기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단점이 '어디서 본 거 같은데'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나름 그 폭에 대해선 항상 고민을 하고, 주제가 같아도 인물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같고 생김새가 같으니 크게 다르게 다가가진 않는 거 같아요. 저 나름대로는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 쓰는데... 예전에 지진희 선배님이 '너무 극단적으로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것도 네가 앞으로 연기자 생활을 할 때 힘들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보여주면, 다음에 뭘 해야 하지? 막막할 수도 있다'고 조언해 주셨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조금씩 변주를 주다 보면, 제가 나이를 먹고 어떤 상황이 됐을 때 또 다른 캐릭터를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현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선택해 왔던 거 같아요. 저도 앞으로 제가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떤 제의가 올지 궁금해요."

총 10부의 시즌1을 공개한 '경성크리처'는 올해 안에 시즌2로 돌아온다. 시즌2는 시간을 뛰어넘어 2024년 서울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2024년 서울, 장태상과 모든 것이 닮은 호재(박서준 분)와 경성의 봄을 살아낸 윤채옥이 만나 끝나지 않은 경성의 인연과 운명, 악연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시즌2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요. 시즌1과 색다른 느낌일 거예요. 시즌1과 어떻게 연결될지도 포인트고, 관계성에 있어서도 재밌게 다가오는 면이 있을 거예요. 지금은 저도 말씀드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데, 조금만 더 유추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경성크리처'만 2년을 촬영했다. 오래 고생하며 찍었으니 장기 휴식기를 가져도 될 텐데, '직업이 취미가 되어버린' 박서준은 바로 차기작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 작품을 검토하고 있어요. '경성크리처' 촬영이 다 끝나고 1년 정도 쉬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직업이 취미가 되어버린 사람이라서요. 연기할 때가 제일 재밌어요. 또 좋은 제안을 많이 주시니까, 이때의 감사함을 잊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하는 거 같아요. 다음 작품을 결정짓고, 올해 안에 또 인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제공=넷플릭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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