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인격이 지저분할수록 성공하는 정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024. 1. 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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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이타심, 관대함, 자기희생을 비롯해 세속적으로 성공할 확률을 낮추는 특성들을 묘사하는 데 인격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빈도가 줄어든다. 대신 극기, 투지, 탄력성, 끈기 등 세속적 성공 확률을 높이는 특성과 관련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아진다."

트럼프에 대한 뜨거운 지지는 트럼프가 지지자들이 공감하는 증오와 혐오를 선동하는 일에 능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데, 증오·혐오 선동이 인격적으로 이루어지긴 어렵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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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인격'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이타심, 관대함, 자기희생을 비롯해 세속적으로 성공할 확률을 낮추는 특성들을 묘사하는 데 인격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빈도가 줄어든다. 대신 극기, 투지, 탄력성, 끈기 등 세속적 성공 확률을 높이는 특성과 관련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아진다."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인간의 품격》이란 책에서 한 말이다. 잘 음미해 보면 사실 무서운 이야기다. 과거엔 성공하진 못했어도 인격의 우위를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젠 성공하지 못하면 인격마저 부실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말이다.

23일(현지 시각) 미 공화당의 대선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슈아에서 열린 '나이트 파티'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렇긴 하지만, 놀라기엔 좀 멋쩍다. 그간 인격이 무어 그리 대단한 대접을 받았다고 놀란단 말인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인을 보라. 그가 보수 유권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는 게 인격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오히려 인격이 없거나 형편없는 게 그의 장점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겠는가?

아니 말은 바로 하자. 트럼프에 대한 뜨거운 지지는 트럼프가 지지자들이 공감하는 증오와 혐오를 선동하는 일에 능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데, 증오·혐오 선동이 인격적으로 이루어지긴 어렵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즉, 지지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의에 비추어 인격은 하찮은 문제에 지나지 않거나 오히려 대의의 공격적 실천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도 다를 게 없다. 내로남불·후안무치·적반하장이라는 반(反)인격적 언행 3종 세트가 난무하는 한국 정치판을 향해 인격을 거론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인격이 지저분할수록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내로남불·후안무치·적반하장을 저지르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교육의 방향과 재정에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정치권에서 그 3종 세트가 성공을 낳는 행동강령으로 통용된다는 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전에는 사상과 이념으로 사람을 따졌는데, 그게 다가 아니고 이념과는 전혀 기준이 다른 사람됨이라는 게 있다. 좌파 중에도 절대로 상종하기 싫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생각은 보수적이지만 도저한 인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우파도 있다."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가 20년 전에 쓴 글에서 한 말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진영'이라는 방탄복이 과거에 비해 훨씬 튼튼해졌다. 정치인이나 정파적 지식인이 그걸 입으면 내로남불·후안무치·적반하장을 상습적으로 저질러도 오히려 진영을 위해 헌신했다며 진영의 작은 영웅으로 떠받드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악한이라면 이해가 가능해 차라리 속이나 편하련만, 그게 아니니 문제다. 정치가 아니라면 더할 나위 없이 착할 사람들인데도 정치판에 어떤 식으로건 발을 담그는 순간 괴물 비슷하게 변해버리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정치가 뭐길래, 인격을 이렇게 쓰레기로 만드는가!

이른바 '반(反)정치(anti-politics)'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게 부족주의 진영논리다.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부족주의 진영논리가 반정치를 키우고 있음에도 진영논리 중독자들이 반정치를 비난하는 건 난센스다. 종교적 열정으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건 보호할 가치가 없는 광신이다. 정의와 대의를 위한 일이라고? 왜 자기 진영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도 내버려두면서 오직 반대편 진영에서만 그것을 찾으려고 드는가?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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