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계단까지 줄 서 듣더니 "이제 9급 안 한대요"…노량진 거리 썰렁

정세진 기자, 박상혁 기자 2024. 1. 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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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에서 9급 공무원 수험 과목에 대한 강의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19(COVID019)유행 전까지만 해도 수강생이 넘쳐 강의실 복도까지 꽉 찼다고 한다./사진=독자제공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만양로의 서울 강남교회 식당에서 공무원 수험생 등 70여명이 아침식사를 마쳤다. 강남교회는 24년째 무료로 공무원 수험생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수험생 200명 이상이 아침마다 교회를 찾았지만 요즘은 70~90명만이 교회를 찾는다.

인사혁신처는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평균 경쟁률이 21.8대 1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32년 만에 최저치다. 2017년 이후엔 매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시촌'(공무원수험촌)으로 불리는 노량진에서 만난 수험생과 학원 관계자, 자영업자들은 하나 같이 공무원 지망생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 상권 축소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남교회에서 '새벽밥' 봉사를 담당하는 구귀현 목사(36) "새벽밥을 먹으러 오는 부류가 수험생이 아닌 일반 직장인이 늘면서 다양해지는 걸 봤을 땐 공무원 수험생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전까지만 해도 교회 식당 200석이 새벽밥 제공을 위한 공간으로 꽉 찼지만 요즘은 100석만 준비해도 남는 공간이 생긴다.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 앞. /사진=박상혁 기자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무원학원 앞. /사진=박상혁 기자


소규모 서점들은 매출 급감을 체감한다고 말한다. 20년째 노량진에서 ㅎ서점을 운영하는 A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책을 많이 사러 왔다"며 "요즘은 20~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ㅇ서점을 운영하는 B씨도 "예전에는 9급 준비하는 사람들 엄청 많았는데 연봉이 좀 박하고 하다 보니까 많이 줄었다"며 "지금 남들 안 할 때가 기회"라고 했다.

이어 "25년간 이곳에서 서점 운영했지만 요즘은 공무원수험 서적보다는 온라인에서 자격증 관력 책을 위주로 판다"며 "공무원 책 장사만 해서는 힘들다. 매출도 절반 이상 줄어서 겨우 현상유지를 한다"고 밝혔다.

대형 공무원 입시 학원들도 수험생 감소가 몇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노량진 M공무원학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뽑는 인원이 줄면서 준비하는 사람수가 줄어든 것도 있고 공무원 월급과 업무량 등 많은 요소가 작용했다"며 "월급 등을 고려해 사기업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면서 공무원 준비생이 줄었다"고 했다.

해당 학원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9급 '공시생'만 최대 2000여명이 나왔다고 한다. 현재는 90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 앞. /사진=박상혁 기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컵밥거리. 상인들은 유동인구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말한다./사진=박상혁 기자


인근 B공무원학원 관계자는 "2014~2015년도에는 9급 공무원 준비생들이 강의실 계단까지 줄 서서 강의를 들었다. 9급 공무원 수험생이 최대 1500명 학원에 다녔다"며 "요즘은 어느 학원을 가도 실수강생이 500명을 넘기기 정말 힘들다"고 했다.

이어 "사실 코로나19 이후로 공무원의 '워라밸'이 많이 없어졌다고 소문이 났다"며 "그때 공무원들 다 비상시니까"라고 덧붙였다. 이달 이 학원에 등록한 9급 공무원 지망자는 100여명 수준이다. 2014년엔 1월 개강할 때 500여명이 몰렸다.

인근 H공무원 학원에서 9급 공무원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박모씨(25·남)은 "주변에도 9급 시험 준비하겠다는 사람들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며 "아무래도 문화가 좀 계급적이고 수직적이고 월급도 적어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김모씨(25·여)도 "9급 일반행정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학원에서 사귄 친구 말고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중에는 9급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다"며 "월급도 적고 연금 개혁도 한다고 하니까 지원자가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7급 공무원 시험에 2차례 낙방한 후 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는 이모씨(32·남)는 "주변에 9급 준비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며 "뉴스로도 보지만 블라인드(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에도 공무원들의 불만 섞인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본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는 올랐지만 월급은 박봉이고 연금도 줄이겠다고 하니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갈 만한 매력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노량진 공무원학원 관계자들은 줄어든 경쟁률이 새로운 공무원수험생 유입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9급 경쟁률이 2017년 46.5대 1을 기록한 후로 올해까지 꾸준히 감소세를 이어온 만큼 향후 합격률과 경쟁률을 예측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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