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집에서 나온 선물, 文대통령이 받았던 풍산개 그리고 김건희 디올백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상 '관련 규정' 명확히 하지 않으면 논란 계속될 듯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 1
지난 2016년 12월 검찰이 최순실 자택을 압수수색했을 때 예상치 못한 물건이 나왔다. 자택 곳곳에 외교 사절들이 선물한 기념품이 전시돼 있었던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주한 외교 사절들이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한 선물이 최씨의 집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당선인 시절 건네줬을 가능성이 높은 외교 사절 선물이 나오면서 최씨와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부인해왔던 박 대통령 진술이 깨졌다.
문제는 더 있었다. 대통령 임기 중 받은 선물은 즉시 신고하고 국고에 귀속하도록 돼 있고,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보관 전시해야 하는데 이를 개인적으로 유용해 넘긴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외교 사절 선물은 그 자체로 외교 수단 대상이고 사료로 인정받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법상 국고 대상이 된다. 지금까지 공개된 대통령 선물 목록에 따르면 선물 품명과 규격, 수량, 증정인, 국적과 지위, 수령일 및 장소, 수령 경위 등을 구분해왔다.
#2
지난 2022년 11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개를 파양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경위는 이렇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풍산개 한쌍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018년 9월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풍산개는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받은 선물로 분류돼 '대통령기록물'이 됐다.
문 전 대통령은 대통령기록관이 반려동물을 관리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시스템이 보유돼 있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대통령이 퇴임 이후 반려동물을 양육하기 위해선 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관리를 위탁받을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풍산개를 보유하고 있으면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논란 소지가 생긴다며 “내게 입양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현 정부가 책임지고 반려동물답게 잘 양육관리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여권은 개를 키우던 비용이 아까워 파양했다고 공격했다.
두 사례는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위반 문제를 담고 있는데 첫번째 경우 명백한 법률 위반에 해당된다. 두번째 경우 법상 동물까지도 대통령기록물로 보지만 이후 관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두 사례 모두 국가적 보존가치가 높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가방을 받았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은 대통령 개인이 수취하는 게 아니라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관리, 보관된다”고 말했다. 관계자가 “국가에 귀속돼 관리, 보관된다”고 말한 대목에 따라 “관련 규정”을 유추해보면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을 뜯어서 보자.
제2조(정의)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다음 각 목의 기관이 생산·접수한 기록물 및 물품을 말한다.
다음 각 목에 해당하는 것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호에 따른 기록물과 대통령상징물,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받은 선물로서 국가적 보존가치가 있는 선물 및 공직자윤리법 제15조에 따른 선물을 말한다.
여기서 다시 공직자윤리법 제15조로 들어가면 공무원 또는 공직유관단체의 임직원은 외국으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그 직무와 관련해 외국인(외국단체 포함)에게 선물을 받으면 지체 없이 소속기관·단체의 장에게 신고하고 그 선물을 인도해야 한다고 돼 있다. 공무원이나 공직유관단체 임직원(가족 포함)이 외국(인)으로 부터 받은 선물은 모두 신고 대상이며 국유 재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건희 여사가 받은 선물은 대통령기록물법과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순실 자택에 있었던 외교 사절 선물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받은 풍산개는 논란의 여지 없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고, 공직자윤리법상 신고 대상이 된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백은 국가적 보존 가치는 전혀 없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이 명품백이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말한 규정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라고 한다면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미국 국적, 외국인)로부터 직무수행와 관련한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는 물건을 받았고, 이에 따라 보관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상식적으론 해명을 수용하기 어렵다. 김건희 여사가 선물을 받은 영상이 공개되자 관련법을 무리하게 적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로 간주된 대통령 선물의 경우 등록정보를 생산해 관리해야 하는데 이 같은 정보가 남아있는지도 의문이다. 앞서 전 정부 대통령이 받았던 선물 목록은 받았던 장소나 경위까지 나와 있다. 명품 가방이 등록돼 있다면 수령일과 장소, 경위까지 모두 기재돼 있어야 한다.
공직자가 선물을 받고 신고하면 등록 기관은 선물이 영구 보존할 문화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게 된다. 보존가치가 있다면 관할 영구 기록물 관리기관으로 이관하고 보존가치가 없다면 조달청에 매각을 의뢰하거나 자체 관리를 하게 된다. 김 여사가 받은 디올백이 등록기관에서 어떤 판단을 받았는지도 의문으로 떠오를 수 있다.
대통령실이 어떤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인지 밝히고, 언제 신고를 했고, 어떤 절차를 밟아 어디에 귀속 관리 보관되고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 이유다. 만약 대통령기록물법 규정에 따른 것이라면 디올백의 국가적 보존 가치를 설명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으면 대통령 배우자가 개인적 선물을 받아놓고 돌려주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 근거 없이 국가에 귀속 처리했다는 또다른 논란으로 확산될 수 있다.
특히 김 여사가 선물을 신고를 했다면 그 신고 시점도 중요하다. 지난해 11월27일 서울의소리는 김 여사가 최 목사로부터 명품 가방을 받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도했다. 실제 최 목사가 김 여사를 만난 것은 2022년 9월13일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5조에 따르면 공무원이 외국으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직무와 관련해 외국인에게 선물을 받으면 소속 기관·단체의 장에게 '지체없이' 신고하고 그 선물을 인도해야 한다. 만약 김 여사가 선물을 신고한 시점이 지난해 11월 27일 이후라면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신고 시점은 뇌물성인지 아닌지 선물의 성격을 가를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다.
사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명쾌한 답이 우선이다. “김건희 여사가 서초동 코바나 콘텐츠 사무실에서 재미교포 목사에게 받았던 디올백은 도대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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