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자 기어코 해고한 남도학숙
남도학숙이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해고 처분을 내렸다. 장기간 무단결근이 해고 사유였다. 성희롱 피해자 측은 그러나 남도학숙이 명확한 내부 규정이 없는데도 질병휴직을 거부한 뒤 징계 조치했다고 반발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이번 해고를 두고 남도학숙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도학숙은 광주·전남 출신 학생들을 위한 재경 기숙시설로,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공동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질병휴직 거부 뒤 무단결근 처리
남도학숙은 2023년 12월 28일 A씨를 해임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해임일은 올 1월 29일이다. 해고 이유는 ‘업무복귀 명령에 반한 장기 무단결근 행위’다. 2023년 6월 30일자로 출근하라고 여러 차례 명령했지만, A씨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A씨는 2014년 남도학숙에 입사해 직장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 피해를 인정했고, 가해자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A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도 가해자는 물론 남도학숙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A씨는 2015년부터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업무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성희롱 피해에 더해 2차 피해가 원인이 됐다. A씨는 이를 근거로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했다. 2017년 3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요양을 승인받았다. 이어 1년 동안 질병휴직을 했다. 이후 2020년 복직했으나 직장내 괴롭힘과 2차 가해를 호소하며 업무상 질병이 악화했다. 이에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요양을 신청했고, 2022년 11월까지 요양 기간으로 인정받았다.
A씨는 2023년 들어서도 질병이 낫지 않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남도학숙 내부 규정에 따라 180일 동안 병가를 썼다. 2023년 6월 말 병가가 종료되기 전, A씨는 남도학숙에 질병휴직을 신청했다.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 2곳의 진단서도 첨부했다. 여기엔 “증상의 충분한 호전을 위해 향후 3개월 이상의 지속적인 치료와 안정이 필요한 상태”라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어떻게든 회사에 출근해 보려고 담당 주치의와 진료 및 상담, 검사까지 했으나 소송 등 직장내 스트레스 상황 및 안전하지 않은 회사의 근무환경으로 인해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정상 근무하기는 어려운 건강 상태라는 것을 확인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도학숙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A씨는 두 차례 더 질병휴직원을 제출했지만 남도학숙의 답변은 같았다. 남도학숙은 “동일 질병에 대해 최대 1년 이내로 휴직 기간이 한정된다”는 이유를 밝혔다. A씨가 이미 같은 질병으로 1년간의 휴직을 사용했기 때문에 추가 질병휴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23년 7~10월 4차례 걸쳐 출근명령과 경고가 담긴 공문을 A씨에게 보냈다. A씨가 응하지 않자 무단결근으로 처리, 징계위를 열어 해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남도학숙의 이번 해고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남도학숙은 ‘남도학숙 인사규정’ 제33조를 근거로 들었다. ‘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는 1년 이내’로 휴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동일 질병’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은 없다. 전체 재직 기간 동안 질병휴직은 무조건 1년 이내로 한정한다는 것인지, 질병휴직 1회당 최대 기간이 1년이라는 것인지 등 해석의 여지가 크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이다.
‘같은 질병은 1년 이내로 제한한다’고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A씨는 이번 질병휴직이 기존 휴직과는 별개의 상황 및 질병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번 질병휴직 신청의 경우 2020년 1월 말 회사 복직 후 추가로 발생한 직장내 괴롭힘과 2차 가해 등으로 악화한 질병이 원인이라는 얘기다. ‘재발성 우울병 장애, 현존 중증도’, ‘공황장애’ 등처럼 기존과 다른 질병의 명칭(코드)도 포함됐다. 법제처가 2023년 8월 내놓은 지방공무원법상 질병휴직 관련 해석에서도 ‘질병휴직 기간 동안 다른 종류의 질병휴직 사유가 새로 발생하는 경우에도 추가 질병휴직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밝히고 있다.
또 자신이 앞서 2019년에 사용한 질병휴직도 자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도학숙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남도학숙은 2017년 1월 복무지침을 개정해 ‘정신병으로 인한 병가는 사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A씨는 애초 병가를 신청했지만, 남도학숙은 해당 조항에 따라 임의로 질병휴직 처리했다. 이 조항은 2022년 광주시 국정감사에서 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광주시와 전남도 측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된 조항의 삭제를 권고했다. 남도학숙은 2022년 10월에야 삭제 조치했다.
A씨 측은 남도학숙이 노동자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성희롱 및 2차 가해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도학숙은 A씨의 성희롱 피해 사건 발생 이후인 2019~2021년 직원 119명(중복 포함)이 성희롱 피해 예방 등 직장내 법정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것으로 전남도의 감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전남도는 “119명의 소속 직원이 교육을 이수하지 않고 있는데도 (남도학숙이) 이를 독려하거나 이수 현황을 점검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라고 지적했다.
또 앞서 A씨가 산재 승인을 받자 남도학숙은 이에 불복해 2017년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제기했다. 감사원이 이를 기각하자 남도학숙은 2018년 법원에 A씨의 산재승인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일었고 행정소송은 결국 취하했다. 이어 성희롱 사건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자 피해자 A씨에게 소송비용을 달라며 남도학숙이 법원에 비용 확정 신청을 내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소송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A씨가 질병휴직을 신청하면서 함께 제출한 3차 의료기관 2곳의 진단서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도 담겨 있다. “지속되는 우울감과 수면 부전, 불안감, 신체증상, 삶에 대한 무망감과 자살사고 및 직장내 가해자와 분리조치가 되지 않는 등의 직장내 스트레스 상황, 지속되는 소송에 대한 스트레스 등에 대한 전문의 면담 시행하고 있다.”
A씨의 대리인인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직장내 성희롱뿐 아니라 이후에 남도학숙이 A씨를 상대로 보여준 여러 가해 행위가 A씨의 정신적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동일한 상황에서 발병한 같은 질병이라고 재단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오랜 기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완치되지 않고 고통을 받는 책임의 상당 부분은 남도학숙에 있다”고 했다. 정의당 전남도당·광주시당도 지난 1월 10일 A씨의 해고 등을 두고 “호남민의 민주인권 의식과 동떨어진 엄연한 반인권·반노동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예견된 해고
A씨는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는 “애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했던 성희롱 피해 노동자에 대한 남도학숙의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해임 처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적 구제 절차를 통해서라도 해고 처분의 부당함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씨의 이번 해고는 남도학숙이 그간 A씨를 바라본 시각에 비춰 예견된 수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상호 남도학숙 원장은 지난해 11월 전라남도의회의 행정감사에서 소송비용 문제와 관련해 A씨를 향해 “떼를 쓴다”고 말했다. 또 A씨가 법원에 제출한 항고장에 항고 이유와 구체적인 액수를 적었음에도 이 원장이 “(A씨가) 항고를 하면서 구체적인 사유나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해 위증 논란이 불거졌다. 앞서 2015년 11월 당시 김완기 남도학숙 원장도 행정사무감사에서 A씨를 두고 “인생이 불량한 여자가 잘못 들어온 케이스”라며 깎아내린 적이 있다.
광주여성민우회는 지난 1월 10일 낸 성명에서 “광주시와 전남도가 공공기관의 성희롱 사안이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도학숙 성희롱 사안을 긴 시간 동안 무책임하게 방기한 것에 대해서 큰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평등한 조직문화는 피해 당사자를 문제시하고 꼬리 자르기 식으로 잘라낸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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