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자 장기기증’만 기다리다 죽는 환자들···‘DCD’ 제도를 아시나요[복만개]

민서영 기자 2024. 1. 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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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만개]는 ‘보건복지 분야를 둘러싼 만개의 이슈’의 줄임말입니다. 보건복지 담당 기자들이 주요 현안을 자세히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16일 장기기증 후 세상을 떠난 김인태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지난달 16일 성탄절을 열흘 남짓 앞두고 김인태씨(72)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택시기사로 일하며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평범한’ 삶을 산 김씨의 부고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 이유는 김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많은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기 때문인데요.

자택에서 목욕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진 김씨의 곁을 지키던 가족들은 평소 김씨의 뜻을 존중해 장기기증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특히 어릴 적부터 말을 못하는 친오빠를 보며 자란 김씨의 아내 최순남씨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기에 사랑하는 남편의 장기기증으로 그 사람들을 돕는 마음을 전했다고 하네요.

최씨는 남편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한 몸으로 아프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지내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함께 했던 시간 고마웠고, 감사했어요.”

지난달 16일 장기기증 후 세상을 떠난 김인태씨(왼쪽)와 그의 아내 최순남씨(오른쪽).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매년 400명 이상이 김씨와 같이 장기기증으로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2022년 405건, 2021년 442건, 2020년 478건 등이었습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 김씨와 같은 분들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김씨와 같은 분들의 희생 덕분일까요. 국내에서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 16세 이상인 사람이 본인의 각막, 인대 같은 인체조직과 장기를 기증하기 원하면 언제든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홈페이지(www.konos.go.kr)를 통해 온라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데요. 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조직 기증 희망 등록자는 13만9090명(장기 8만3362명+조직 5만5만5728명, 조혈모세포 제외)이었습니다. 장기·조직 기증 희망 등록자는 2021년 16만명에 육박했다가 1년 뒤인 2022년엔 11만7584명으로 26% 급감했는데요. 하지만 코로나19가 주춤해진 지난해 들어 다시 회복세로 돌아선 겁니다.

희망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기증자가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장기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2000명을 웃돕니다. 2022년에는 사망한 환자가 2918명으로 3000명에 육박했습니다. 하루 평균 8명 꼴입니다.

장기이식 대기자·기증자 수 추이. 연합뉴스

한국의 장기 기증율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많이 낮은 편입니다. 한국에선 사실상 뇌사자만 장기기증이 가능한데, 2022년 뇌사에 따른 국내 장기 기증율은 인구 100만명당 7.88명에 그쳤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46.03명, 미국은 44.5명을 기록했습니다.

이같이 기증율이 차이나는 이유는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증 희망을 등록하는 제도 때문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장기이식 희망 여부를 묻는 절차가 이뤄지는 게 아니고, 본인이 생전에 희망했어도 유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기증이 가능합니다. 반면 미국은 운전면허증을 신청할 때 장기기증에 대한 서약을 체크하는 항목이 있다고 하네요. 스페인은 더 나아가 ‘장기기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질문에 답변을 요구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장기기증을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선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보편적인 의무로 보는 것이죠.

한국에서 하지 않는 제도를 해외에선 시행하고 있는 게 또 있습니다.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onation after Circulatory Death, DCD)’ 제도라는 건데요. DCD 제도는 심정지 환자에 대해 본인의 사전 동의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고 5분간 기다려 전신의 혈액 순환이 멈췄을 때 장기를 적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한국의 장기이식법은 뇌사자 위주의 장기기증 절차만 규정하고 있어요. 즉 본인과 가족이 장기기증을 희망했어도 불가피하게 뇌사에 빠진 상태가 아니라면 심정지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기증 절차는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과 스페인은 한국보다 뇌사자 기증도 훨씬 많을 뿐더러, 전체 장기기증 환자의 3분의 1 이상은 DCD를 통한 기증이에요.

한국에도 DCD 제도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장기기증자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도 발의됐어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중단’ 제도와 연결지어 연명의료중단자도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내용의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대표발의했습니다.

현행 장기이식법에서는 장기 적출이 가능한 범위를 살아있는 사람(신장 등 일부 장기만), 사망한 자, 뇌사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뇌사자 장기기증 절차만 자세히 규정하고 있어 연명의료중단 등 심정지로 사망한 환자의 기증은 사례가 매우 적습니다. 또 연명의료중단으로 사망한 자가 장기이식법상 적출이 가능한 ‘사망자’인지 여부를 두고 해석도 분분했습니다. 한 의원은 개정안에 ‘연명의료중단으로 사망한 자’를 장기적출이 가능한 범위에 포함했어요. 연명의료중단으로 사망한 자의 사망시각은 연명의료 중단 후 혈액 순환과 호흡이 중단한 지 5분이 경과한 시각으로 정했습니다. 한국형 DCD 제도 도입을 담은 것이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최로 성탄절을 열흘 앞둔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명동에서 열린 생명을 구(9)하는 ‘나인(9) 퍼레이드’에서 상반신을 탈의하고 전 세계적으로 장기기증을 의미하는 ‘초록리본’과 ‘SAVE9’등의 스티커를 몸에 붙인 스포츠 트레이너들이 생명나눔 마스코트 리보니와 함께 장기 기증의 중요성을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도 마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인식 변화겠죠. 앞서 언급했듯 한국은 뇌사자 장기기증도 해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은 편입니다. 현재 장기기증 절차에서 중요한 건 ‘가족의 동의’인데 유교 문화의 영향 등으로 본인의 장기기증은 희망하면서도 가족의 기증은 꺼리는 인식이 깔려있죠. 장기기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기증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도 더 높아져야 합니다.

DCD 제도는 장기기증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인식이 높아졌을 때 또 하나의 선택지로 더 활발히 논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한국은 의학적 수준이 높지만 장기기증의 역사는 서양에 비해 매우 짧다”며 “장기기증이 당연히 좋고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란 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긴 하지만, 지금보다 더 기증 문화와 인식이 무르익어야 DCD 등 제도 도입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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