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향은 어디있나요...꿈꾸던 세상을 그려내다
한국 미술계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 해외 화랑들이 새해를 맞아 첫 전시로 한국 신진 작가들의 기획전을 잇달아 연다. 한국의 대형 화랑이 중견 작가·대가들의 무게감 있는 전시로 새해를 여는 것과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해외 화랑들이 찜한 차기 작가들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전시라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일찍부터 한국의 MZ세대 아티스트에 주목해온 두 화랑이 나란히 기획전을 준비했다.
리만머핀 서울에서는 작가 4인의 기획전 '원더랜드'를 2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를 기획한 엄태근 큐레이터는 "원더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착안해 동화 속 공간처럼 우리가 꿈꿔왔던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업을 한자리에 모았다. 엄 큐레이터는 "그림들은 원색적인 색채의 미래 지향적인 공간들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이게도 과거 속 잊혔던 사람 이야기들이 작품들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전반은 화려하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이 혼재돼 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4명의 작가는 디아스포라적 경험을 작품에 담아냈다. 10년째 해외에서 생활한 유귀미 작가(39)는 이민자로 경험한 고립과 단절을 환상적인 화풍으로 표현해온 작가다. 'Green Lake'는 지칠 때 우연히 찾았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호수에 개인적 추억이 깃든 한국의 정자와 동물 등을 그려넣은 '상상의 풍경화'다. 'Night River'는 한강의 밤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유 작가는 "청담대교를 그렸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추억의 한강을 그리려 찾았더니 강보다 산책하거나 돗자리를 깔고 데이트하는 연인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인물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을 특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설명했다. 파스텔톤의 색채와 윤곽선이 보이지 않는 그의 그림도 몽환적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활동하는 켄건민(48)은 '1922 Western Avenue'를 통해 1992년 LA 흑인 폭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당시 폭동에서도 한인을 배제하고 백인만 보호했던 불합리함을 두 폭으로 나뉜 캔버스의 위아래에 각각 평화와 폭력을 상징하는 묘사로 담아냈다. 유화를 한국 전통 안료와 자수, 보석 등 장신구까지 섞어 표현하는 환상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켄건민은 "소수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자수를 통해 씨실과 날실로 짜서 전달하는 작업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현남(34)은 스티로폼, 에폭시 등 가벼운 건축 재료로 현대 도시와 가상 공간을 시각화했다. '채굴'이라 일컫는 작업 방식은 폴리스티렌 덩어리에 굴을 파고 구멍에 다른 재료를 넣어 굳힌 뒤 열을 가해 폴리스티렌을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재료의 화학 반응으로 형성된 결과물은 거친 표면과 선명한 색상, 수직성이 강조된 비정형의 조각으로, 종말론적 미래의 도시 풍경과 폐허를 은유한다.
임미애(61)는 이민 1세대 작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의인화된 생명체나 증식하는 유기체 돌연변이를 연상시키는 도상은 작가의 유년기 기억과 환상을 형상화한 것. 팬데믹 기간에 구상과 추상의 결합을 시도한 작가의 신작들은 감미로움과 그 속에 내재한 공포감을 나란히 병치시켜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6인 단체전 '노스탤직스 온 리얼리티(Nostalgics on realities)'를 3월 9일까지 개최한다. 갤러리의 두 번째 한국 작가 단체전으로, 프리즈 필름 2023을 맡았던 김성우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뒤섞인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조금 다른 미래상을 펼쳐보이는 전시다. 제시 천(40)의 흑연과 한지를 사용한 기하학적 추상 '콘크리트 시'와 '악보' 등은 한국의 무속적 기법을 차용했다. 정유진(29)은 폐허적 풍경을 담아낸 조각과 설치를 통해 동시대의 재앙에 감응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환경을 구현했다.
권용주(47)는 야생초나 난 등 식물을 돌에 부착해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는 일종의 취미 행위인 '석부작'을 재해석해 선보인다. 남화연(45)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자연적 질감을 띠고 지형학적 특질을 띠게 되는 변형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부식한 동판 작업과 신작 영상을 함께 전시한다. 이해민선(47)은 나무의 몸통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질러 그려내는 인물 초상 작업을 선보인다. 오늘날을 '불안의 시대'라 묘사하는 양유연(39)은 사물이나 인물을 확대해 담아내는데, 장지에 먹먹하게 스며들어 흐릿하고도 모호한 질감으로 자리하는 이들은 묵직한 노스탤지어의 감정을 자아낸다.
[김슬기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한국인 많이 채용합니다”…시급 1만5000원 준다는 ‘이곳’ - 매일경제
- “주3일 야근에 월급 235만원, 엄마랑 저녁도 못먹어요”…중소기업 직원, 결국 퇴사한 사연 - 매
- 한국선 ‘무조건 벤츠’라더니…‘아내의 유혹’에 신형도 대박 조짐? [최기성의 허브車] - 매일
- “가족오락관 몇대 몇!” 외치던 그녀, 국힘 간판 달고 총선 나간다 - 매일경제
- “北, 조만간 ‘제2의 연평도 포격’ 도발 가능성…전면전은 아닐 듯” - 매일경제
- "헤어지자, 새 출발할래"… 클릭 몇 번에 年이자 300만원 뚝 - 매일경제
- ‘돈 많이 주는 직장’ 가서 좋았는데…올해만 벌써 2만명 해고 - 매일경제
- “대기업에 합쳐져서 좋아했는데”…1900명 ‘기습 해고’ 나선 미국 회사 - 매일경제
- 22분간 질소가스로 사형…세계 첫 집행에 ‘시끌’ - 매일경제
- 대한민국이 왜 우승 후보? 형편없었던 클린스만호, ‘김판곤 매직’ 말레이와 졸전 끝 3-3 무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