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무너진 한국 축구...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목표 '흔들'
자존심은 무너졌고 목표는 불안해졌다. 역대급 전력의 '우승 후보'로 꼽히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며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최약체 팀을 상대로 최악의 경기를 선보인 클린스만호는 16강에 오르고도 고개를 떨궜다. 우려했던 옐로카드 관리, 줄부상으로 인한 선수 보호 등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채 너무 많은 문제점만 드러냈다. 오는 31일 오전 1시(한국시간) 펼쳐질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도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5일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말레이시아와 경기를 3-3 무승부로 마쳐 충격을 안겼다. 다득점 승리로 '조 1위 16강 진출'을 자신하던 클린스만 감독은 결국 조 2위(승점 5·1승 2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은 이번 대회 최약체 팀인 말레이시아(FIFA 랭킹 130위)를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는커녕 90분 내내 끌려다녔다. 전반 정우영(슈투트가르트)의 선제골로 앞서 갔지만 후반 말레이시아에 2골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해 하마터면 질 뻔했다. 후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프리킥과 손흥민(토트넘)의 페널티킥으로 골을 만들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한국의 졸전은 심각했다. 볼을 80% 점유하고도 이렇다 할 공격력은 보이지 않았고, 코너킥을 20회나 찼어도 골로 연결된 건 하나뿐이었다. 이재성(마인츠)이 옐로카드를 1장 더 추가해 총 8장의 카드가 쌓였다. 심지어 클린스만 감독은 그간 지적됐던 문제점들을 그대로 답습했다. 전술 부재에 따른 '중원 삭제' '세밀한 공격 전무' '잦은 롱볼 패스' 등이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고, 말레이시아전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출격한 게 여실히 드러났다. 입이 아프도록 비판받던 선수의 개인 능력에만 의존했다.
반면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출신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은 클린스만호의 약점을 빈틈없이 공략했다. 사실상 5-4-1 포메이션으로 촘촘한 수비를 내세워 한국의 중원은 물론 측면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탄탄한 수비 조직력은 한국에 오프사이드 5회나 만들었다.
선수들조차 승리에 대한 의지가 실종된 듯 보였다. 상대의 전방 압박에 맥없이 무너졌고, 중원에서의 몸싸움은 아예 피하는 수준이었다. 전술적으로 약속된 플레이가 없다 보니 공격이 막히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우승 후보라고 하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말레이시아전 패배는 불과 5년여 만에 재현됐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조별리그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0-1로 패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된 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울버햄프턴)이 모두 출전했다. 손흥민은 "2018년 아시안게임 때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이겨내면서 팀이 단단해졌다"며 "이제는 모든 경기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국내 축구팬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특히 한국 축구 사상 역대급 전력을 가지고 점점 퇴보하는 경기를 보이는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잦은 외유와 재택근무 논란이 다시 회자되며 "재택 축구" "내일이 없는 오늘만 하는 축구" "쓰는 선수만 쓰는 축구"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론은 선수들의 로테이션을 강하게 어필했다. 조별리그 1, 2 차전에서 받은 무더기 경고 누적 탓에 옐로카드 관리가 필요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박용우(알 아인) 대신 정우영만 바꿨을 뿐 정예 멤버 그대로 선발 출전시켰다. '카드 부담'으로 인한 수비 조직력의 불안이 따라왔다. 결국 전력 상 우위에 있음에도 선수 활용법을 고민하지 않았고, 아울러 주축 선수들의 체력 안배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토너먼트=체력전'으로 빡빡한 일정인데, 감독이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황희찬과 김진수(전북)의 복귀다. 특히 후반 교체 투입된 김진수는 상대 진영 골라인까지 파고들어 공격 변화를 주도했다. 또한 16강에서 일본을 피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만난 것은 나쁘지 않다. 한국은 지난해 9월 유럽원정 A매치에서 사우디를 1-0으로 이겼다. 그러나 사우디는 한국보다 좋은 성적(2승 1무)으로 16강에 올랐고, 빠른 역습과 압박 수비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무르익고 있다. 무엇보다 태국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주전 9명을 빼 체력 비축에 성공했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우리는 한국전이 매우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선 일본·한국·호주와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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