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헌법위원회 “이민법 37% 위헌”···보수진영 요구 반영된 조항 무더기 퇴짜
개정 범위 밖 부수조항 상당수
입법 취지 맞지 않다고 판단
프랑스 의회가 지난달 통과시킨 이민법 개정 조항의 37%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프랑스 헌법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르몽드에 따르면 헌법위원회는 25일(현지시간) 이민법 개정안 총 86개 조항 중 37.2%에 해당하는 32개 조항에 대해 전체 또는 부분 위헌 결정을 내렸다.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헌법위원회는 이들 조항 상당수가 이민법 개정 취지와 범위를 벗어난 부수조항으로, 헌법이 규정한 입법 절차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헌법위원회는 가족 이민 시 프랑스 필수 거주 기간을 18개월에서 24개월로 늘린 조항, 외국 학생들에게 보증금을 징수하는 조항, 프랑스에서 태어난 외국인 자녀에 대한 자동 국적 취득권 폐지 조항, 성년 불법 체류자에게 형사 벌금을 부과하는 조항, 외국인에 대한 수당 수급 자격 강화 조항 등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또 국경 검문 과정에서 외국인이 신원 확인에 불응할 경우 지문 채취나 사진촬영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의회가 매년 망명을 제외한 이민자 한도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 조항은 부분 위헌이라고 봤다.
반면 헌법위원회는 인력 부족 직종에 종사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특별 체류를 허가하는 조항과 범죄를 저지른 불법 체류자의 추방 기준을 낮춘 조항에 대해서는 합언이라고 판단했다.
르몽드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위헌 판결을 받은 조항은 대부분 의회 통과 과정에서 우파 의원들의 요구로 추가된 것들이다. 이에 따라 우파의 요구는 대거 탈락하고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애초 제출한 이민법 조항들이 살아남는 모양새가 됐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헌법위원회가 정부 초안 전체를 승인했다”고 환영했다. 로이터통신은 “위헌판결은 받은 32개 조항들은 순전히 절차적 이유에서 위헌판단을 받은 것으로 헌법위원회는 해당 조항들의 내용이 위헌이라고 밝히지는 않았다”면서 “이는 해당 조항들이 추후 법률을 통해 재도입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의회 논의 과정에서 이민법 개정안이 정부 초안보다 강화된 것을 정치적 승리로 받아들였던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판사들의 권력 장악과 대통령의 지원으로 헌법위원회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지지하는 강경 조치인 이민법을 사산시켰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해 마크롱 정부가 제출한 이민법 개정안은 우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을 거치면서 강경해졌으나 하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마크롱 정부는 양원 합동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합의안 도출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상원의 강경안과 유사한 조항들이 반영되면서 의회를 통과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부안보다 강경해진 이민법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조항이 있다”며 헌법위원회에 법안 심사를 요청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위원회 승인을 받은 조항들에 대해 조만간 공포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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