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한 임윤찬의 ‘황제’, 츠베덴의 몰아치는 ‘거인’…서울시향 화려한 ‘새출발’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이 특유의 더벅머리를 깎았다. 검정색 연미복을 입고 흰색 나비넥타이를 맨 단정한 모습이었다. 올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네덜란드 지휘자 얍 판 츠베덴(64)이 함께 인사했다. 임윤찬이 피아노 앞에 앉을 때까지 객석에선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임윤찬은 겉모습만큼이나 새롭게 변화한 연주를 관객에게 선물했다.
서울시향은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츠베덴 감독의 취임 기념 연주회를 열었다. 1부에선 한국의 스타 피아니스트인 임윤찬이 서울시향과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들려줬다. 임윤찬은 이 곡을 2022년 정명훈 지휘로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같은 해 광주시향과 녹음한 ‘베토벤·윤이상·바버’ 음반에도 실었다.
1악장 처음 관현악기들의 화음에 이어 바로 피아노가 당당한 ‘카덴차(Cadenza)’를 시작한다. 카덴차는 통상 1악장 마지막에 독주자가 즉흥 연주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과 달리 ‘황제’는 1악장 처음에 악보대로 카덴차를 연주해야 한다. 임윤찬의 장기인 자유로운 질주를 예상했지만 약관(弱冠)의 임윤찬은 변화했다. 확연하게 빠른 템포로 달리면서도 강약을 유려하게 조절하며 한층 차분한 해석을 보였다.
2악장에선 임윤찬의 변화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 서울시향과 찬찬히 소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배경이 되어줬다. 임윤찬이 빚은 투명한 피아노 선율이 냇물처럼 흐르며 심원한 아름다움을 전했다. 오른손으로 건반을 치며 왼손은 눈앞에 그림을 그리듯 잠시 휘젓기도 했다.
3악장으로 중단 없이 넘어간 뒤에는 임윤찬의 젊은 영감과 기세가 화려하게 피어났다. 연주에 깊이 몰입해 어깨를 좌우로 들썩이는 ‘어깨춤’이 이어졌다. 임윤찬이 젊은 황제처럼, 서울시향이 군대처럼 합심했다. 연주을 마치자 츠베덴은 활짝 웃으며 두 손으로 악수했고, 임윤찬도 츠베덴을 향해 짧은 박수를 보냈다. 임윤찬은 앙코르곡으로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를 쇼팽 편곡 버전으로 골랐다.
2부에선 서울시향이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연주했다. 츠베덴은 말러 교향곡을 매년 2곡 이상 연주해 임기 내에 전곡 녹음을 마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거인’은 츠베덴이 로열콘세트르헤바우(RCO)와 뉴욕 필하모닉을 처음 지휘할 때도 선택한 곡이다. 말러가 28살 청년이었던 1888년 작곡한 첫 교향곡으로 1893년 독일 함부르크 공연 당시 각 악장에 붙인 표제들을 보면 1~2악장은 청춘과 자연, 3~4악장은 인간의 좌절과 승리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츠베덴의 역동적인 해석은 ‘황제’보다 ‘거인’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차기 음악감독 자격으로 지휘를 맡은 지난해부터 서울시향의 소리에 점점 힘과 무게가 실렸다. 츠베덴은 이날 서울시향과 새출발하며 ‘거인의 발소리’를 울렸다. 서울시향은 이날 청춘의 방황과 자연에서의 모험을 거쳐 인간의 승리로 진격하면서 폭발적인 에너지와 풍부한 양감을 보여줬다. 다소 균형이 흔들린다고 느껴질 정도로 타악과 관악이 통쾌한 충격 속으로 관객을 몰아넣었다. 팀파니와 큰북 소리는 전쟁터에 떨어지는 포탄을, 호른 군단의 합창은 군대의 승전 나팔을 연상케 했다. 1악장 처음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에서 연주하다 문을 열고 나왔고, 4악장 마지막 호른 주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하는 등 말러의 지시문을 충실히 따랐다.
2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도 같은 공연이 이어졌다. 티켓은 예매 시작 1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거나 프로그램북을 사려는 관객으로 로비는 공연 시작 5분 전까지 북적거렸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관객들은 콘서트홀 복도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연주를 감상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도 25일 공연을 관람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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