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콘텐츠가 되네?[언어의 업데이트]

기자 2024. 1. 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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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단어가 있다. 많은 문제의 정답이 되는 단어다. 이를테면 ‘진정성’ 같은 단어가 그렇다. 성공한 브랜드의 비밀에서도, 정치 연설문에서도 핵심을 도맡는다. ‘진짜 같은’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진짜’를 찾기 어렵기에, 충실한 진심을 호소하는 ‘진정성’이 효과적 처방이긴 하다. 그런데 잦은 처방 탓에 그 효력이 전 같지 않다. ‘결국 답은 진정성에 있어요!’라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맥이 빠진다. 나는 되도록 그 말만큼은 피하려 한다. 진정성이란 단어 입장에서도 가끔은 버럭 화를 내고 싶지 않을까? ‘이제 나 좀 그만 데려다 써!’ 하고.

진정성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단어는 바로 ‘콘텐츠’다. 요즘 콘텐츠란 말을 안 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콘텐츠는 그릇이 큰 단어다. 산업과 개인을 두루 품는다. 산업 앞에 오는 단어가 이렇게 일상 언어로 바짝 들어오기 쉽지 않은데, 콘텐츠가 그걸 해낸다. 진정성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이 단어가 질리지 않는 이유는 ‘콘텐츠’의 맥락이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방향성을 가진 진정성과 달리 콘텐츠는 모범생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나날이 규범과 규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드함과 소프트함을 오가고 물성과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넓혀간다. 넷플릭스가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도, 친구와 나눈 카톡 대화 캡처도 모두 콘텐츠다.

최근 이 단어의 새로운 도약을 목격했다. 한 커뮤니티 핫 게시판의 ‘이제부터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인생에 콘텐츠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라는 글 덕분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서 수시로 듣는다. “야 이거 콘텐츠가 되네” “어우, 내 인생에 콘텐츠가 끊이질 않아”. 모두가 창작자인 그러니까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세계에서 우리가 세상을 ‘콘텐츠적 관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다.

‘콘텐츠적 관점’은 내가 느끼는 분노와 환희, 행복과 좌절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하나의 이야기로 승화할 수 있다는 태도이자, 내 일상의 화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는 주체적 관점이다. 콘텐츠적 관점에 정답은 없다. 작법의 틀을 깨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을수록 빛을 발한다. 억울한 일도, 황당한 일도 모두가 콘텐츠가 된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우리 안의 창조 본능을 깨우는 콘텐츠적 관점은, 내게 주어진 능력, 내가 맞닥뜨린 일상을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갈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그 고민이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가져온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이 새로이 태어난다. 주목받지 못한 순간과 시선이 콘텐츠로 발현되는 순간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지루한 일상이 ‘브이로그’라는 장르를 만들고, 노래의 한 구간에 맞춰 추는 춤이 챌린지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콘텐츠의 축적이 연결 가지를 힘차게 뻗으면 개인이 플랫폼적 역량을 갖추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콘텐츠가 더 이상 소수의 거대 자본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지금 우리는 새로운 플랫폼의 주체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과 연결하는 것은 그 자체로 꽤 이로운 일이니까. 이로운 세상을 위한 거창한 포부는 없어도, 조금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결국 답은 진정성에 있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정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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