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시설은 강점·거리는 최악…국내 ‘첫 아레나’ 가보니 [공연장 실종 사건]
국내 최초 최신 설비 탑재
관계자들이 본 아레나 장단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관객들의 머리 위로 가로 6m, 세로 6m의 거대한 구조물이 자리했다. 360도로 회전하는 ‘마법의 양탄자’ 같은 구조물 위에 선 샤이니 태민. 와이어를 매단 그는 발 아래 관객들을 향해 낙하할듯 몸을 기울인다. 180도로 거꾸로 매달린 아찔한 퍼포먼스에 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 달16~17일 양일간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K-팝 가수 최초로 열린 태민의 단독 콘서트다.
장현기 모히건 인스파이어 아레나 상무(제너럴 매니저, GM)는 “국내 공연장 최초로 천장이 견딜 수 있는 하중이 100톤에 달한다. 태민이 공중에 거꾸로 매달리는 퍼포먼스가 가능했던 것은 천장엔 총 180개의 지점에 무대 장치를 매달 수 있고, 이를 최대 102t까지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 공연장 천장에서 최대 수용 가능한 하중은 케이스포돔의 40t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전문 공연 시설로서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무대 장치 및 구조물 등 연출적인 측면에서 조금 더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를 하기 좋은 컨디션이었다”고 돌아봤다.
서울 강남에서 자차로 1시간 20분. 공항철도와 셔틀버스로 약 1시간 30~40분. 인천 영종도에 ‘국내 최초’ 타이틀을 단 다목적 실내 공연장 ‘인스파이어 아레나’가 문을 열었다. 지난해 연말 샤이니 태민의 단독 콘서트를 시작으로 동방신기, 2023 멜론 뮤직 어워드, SBS 가요대전을 진행했고, 오는 27~28일엔 악뮤 공연이 예정돼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장장 7년의 공사 기간, 총 2조원(리조트 포함)의 비용을 들여 태어났다. 총 면적은 1만5000㎡. 등장할 때 부터 지속가능한 K-팝의 발전과 공연문화 혁신을 위한 ‘게임 체인저’를 선언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의 장점은 아티스트와 스태프가 원하는 대로 다양한 무대를 연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가로 136m, 세로 125m, 높이 40m의 무대는 ‘가변형’으로 공연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무대를 만들 수 있다. 바닥 역시 콘크리트로 마감해 엄청난 무게의 장비를 견딜 수 있다. “탱크가 들어와도 문제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무대 형태에 따라 수용 인원도 달라진다. 360도 공연을 할 때 최대 좌석이 1만5000석, T자형 무대를 만들면 1만2000석 정도 수용할 수 있다.
좌석은 관객 수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장 상무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1만 석 이상을 채우는 가수는 30팀 정도이고, 공연이 가장 많은 것은 4000~5000석을 채울 수 있는 가수들의 콘서트”라며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선 천을 덮는 방식이 아니라 딥 커튼을 활용해 좌석을 잘라낸 것처럼 공연장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선 오는 4월까지 3000~5000석의 콘서트가 다수 예정돼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케이스포돔에서도 할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인스파이어 아레나의 ‘강점’은 편안한 의자와 시야다. 기존 체육관 시설과 달리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선 플라스틱이 아닌 쿠션형 의자를 설치해 편안한 관람 환경을 마련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앙코르 축제’를 즐기거나, 어르신 관객이 많은 콘서트에 특히 안성맞춤이다.
어느 좌석에서도 방해 없이 아티스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케이스포돔의 경우 마지막 좌석에서 스테이지까지 거리가 약 85m나 되지만,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약 75m로 10m 가량 짧다. 좌석 단차 역시 25~45㎝로, 다른 공연장과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김강희 인스파이어 아레나 기술 운영 담당은 “어느 좌석에 앉아도 앞 사람의 머리가 시선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SM엔터 관계자는 “전 좌석에서 무대 시야가 잘 확보돼 공연 몰입도 및 현장 반응이 더 좋았다”며 “실제 공연 후기에서도 시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라이브 이벤트를 위해 설계된 시설인 만큼 음향 설비도 최첨단이다. 그간 국내에선 3000석 이하인 세종문화회관과 샤롯데씨어터 정도만 건축 음향을 설계했다. 1만5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건축 음향을 설계한 것은 인스파이어 아레나가 처음이다.
아레나는 PA(public-address system) 사운드 브랜드인 메이어 사운드(MEYER Sound) 시스템을 탑재했고, 음향을 굴절시키는 반사각을 고려해 설계했다. 벽면 역시 흡음제를 설치했다. 냉난방으로 인한 유속을 고려해 음향 왜곡도 최소화했다. 잔향 시간은 3~4초 가량이다.
동방신기 콘서트를 연출한 김경찬 SM엔터 수석은 “해외 아레나를 모델로 삼아 잘 지어진 공연장”이라며 “최신 장비를 쓸 수 있고, 막강한 리깅 시스템으로 장치물에 대한 연출자의 상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첨단 음향 설비는 대관료 인상으로 이어져 제작비의 부담이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아티스트마다 선호하는 사운드와 스피커가 달라 공연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설비가 대관료에 포함돼 있다”며 “리깅 시스템 등 아레나의 강점을 활용하기 위한 무대 연출을 위해선 공연 제작 비용이 상승할 우려도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 1호’ 아레나로 등장한 인스파이어는 잠실 주경기장, 고척 스카이돔이 공사에 들어간 상황에서 케이스포돔과 함께 1만 석 이상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음악 공연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좋은 공연장을 만드는 필수 요건은 명확하다. 가왕 조용필부터 싸이, 동방신기, NCT127 등 대형 가수들의 콘서트를 연출하며 주경기장부터 인스파이어 아레나까지 섭렵한 김경찬 감독(SM엔터 수석)은 “좋은 공연장은 관객, 아티스트, 스태프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요건에 가장 잘 맞는 공연장은 아직 없다. 다만 인스파이어 아레나가 가장 가까울 수 있다”고 말했다.
종합 리조트가 만든 아레나인 만큼 관객의 입장에서 즐길거리가 많다. 티켓 발행 창구 앞에 키네틱 샹들리에가 설치된 초대형 원형 홀 ‘로툰다’는 공연 시작 전 5000~6000명이 대기할 수 있을 만큼 넓다. 또 계절의 변화와 무관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이라는 장점도 있다. 로툰다의 샹들리에에선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이 다채로운 영상을 내보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150m에 달하는 LED 디스플레이에서 20k 화질로 보여주는 미디어아트는 인스파이어를 찾는 사람들의 ‘인증샷’ 성지로 떠오를 정도로 환상적이다. ‘K-팝 성지’로 불리는 케이스포돔과 K-팝 그룹의 ‘꿈의 공연장’인 주경기장은 인스파이어 아레나에 비하면 좌석, 화장실, 부대시설 등 모든 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
멜론 관계자는 “지금까지 공연장은 기본적으로 체육 시설이기에 사운드나 연출적인 면에 아쉬움이 많았지만,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현장 사운드가 훌륭하고 아티스트의 공간 및 동선적인 면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 확실히 진일보한 공연장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작은 무대 규모, ‘극악의 거리’가 최약점으로 꼽힌다.
화려한 무대 연출이 주를 이루는 K-팝 공연의 특성상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콘서트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기엔 무대의 규모가 아쉽다. 김경찬 감독은 “케이스포돔의 경우 어느 곳이든 무대를 만들 수 있어 연출자와 아티스트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다”며 “지난해 NCT127 공연의 입체적인 구조물, 2022년 연말 조용필 공연의 천장에서 내려오는 대형 LED 구조물이 대표적이다. 반면 인스파이어의 무대는 최대치로 활용해도 케이스포돔의 3분의 2 정도 크기라 연출의 한계가 있다”고 했다.
K-팝 공연은 무대 구성에 따라 관객 수용 숫자가 달라진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360도 객석 기준 최대 1만 5000석이라고 하지만, 무대 규모에 따라 최대 관객수는 7000~8000명 정도로 본다. 케이스포돔이 ‘K-팝 성지’로 불리는 것은, 단지 이곳에서 K-팝 가수들의 공연이 많이 열려서가 아니다. 1만 명 이상 수용하는 공연장은 1회 공연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2회 공연으로 수익을 낼 수 있어서다. 현재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케이스포돔에서 3회 공연을 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때문에 ‘케이스포돔’의 입성은 지속가능한 가수 반열에 올랐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현재 빅가수들이 인스파이어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선 아티스트로의 미학을 내려두고, 무대를 최소화해 관객을 최대치로 채워야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대관 일수가 늘며 당연히 제작비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또 1만5000명까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중앙식 무대 구성은 K-팝 가수들의 공연엔 적합하지 않다. 공연계 관계자는 “무대를 중심으로 360도로 관객을 앉히는 구성에선 일부 관객들의 경우 아티스트의 뒷모습만 보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환영할 팬들은 없다”며 “다만 각종 시상식 공연에는 이러한 방식이 적합해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다양한 시상식 공연으로 많이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단점은 접근성이다.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지난 몇 차례의 공연 결과 관객의 30%는 자가용을, 70%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항철도와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해도 약 1시간30분이 걸린다. 더 문제는 공연을 마친 이후다. 약 7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셔틀버스를 타고 영종도를 벗어나는 데에도 같은 시간이 걸린다. 교통 대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다만 공항에서 가깝다 보니 해외 팬들에겐 최적의 입지다.
장 상무는 “멜론뮤직어워드와 SBS 가요대전 관객의 통계를 보니 해외에서 40~50%가 들어왔다”며 “K-팝 콘서트를 보러 오는 해외 관광객에겐 더없이 좋은 입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2주 동안 100회 공연을 기준으로 인스파이어 아레나를 통해 연간 500억원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기대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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