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개정 골대 옮긴 野…전면 시행 직전 ‘산업안전청’ 새 조건 걸어

세종=손덕호 기자 2024. 1. 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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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때 중대재해법 도입되자 추진
2023년 1월 산업안전보건청 신설한다는 계획
1년 지나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해주는 조건으로 나와
정부는 중대재해 수사·처벌보다 예방에 중점 입장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고용노동부의 '산재감소 추진 방향과 조직 개편안'과 '산업재해예방 조직개편 추진상황' 자료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50인 미만(5~49인)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개정안이 지난 25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여당과 경제계는 지난해 말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려 민주당이 내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했는데, 민주당이 그 뒤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신설’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이 공전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논의를 하면서 골대를 옮긴 셈이다.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7일 발의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전날(25일) 국회 처리가 불발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후 상임위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83만7000개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이 전면 시행된다.

민주당은 당초 국민의힘과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논의하면서 ▲준비 소홀에 대한 정부의 공개 사과 ▲유예기간(2년) 동안 실시할 구체적인 계획 및 재정지원안 ▲유예기간 종료 뒤 시행을 약속하는 정부·경제단체 합의서 등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사과했고, 정부·여당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제단체들도 2년 뒤 다시 유예해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7일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처리를 국회에 요청한 다음날, 홍익표 원내대표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산업안전보건청 연내 설치와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오면 이 법(적용)을 유예할지 말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 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무산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산안청 신설 주장은 현재 고용노동부에 속해 있는 산업안전본부를 확대해 독립된 외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첫 구상은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영주 민주당 의원(국회 부의장)이 2020년 7월 산안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제기됐다.

고용부는 2021년 2월 국회에 제출한 ‘산재 사망사고 감축 방안’ 자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 후속 조치로 산업안전보건 담당 조직을 확대해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우선 설치하고, 이후 기능과 조직을 확충해 외청인 산안청을 2023년 1월 독립 출범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 계획에 따라 고용부는 같은 해 7월 기존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산업안전보건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계획했던 시기보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조건으로 ‘산안청 설치’를 들고 나온 셈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민주당이) 약속대로 하려고 했으면 논의를 열심히 해서 작년 1월에 산안청이 출범했어야 된다. 그냥 손 놓고 있었다”며 “(중대재해법 개정을 놓고) 세 가지 요건을 말씀하다가 17일에 ‘아니, 산안청 하라니까?’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 회장은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 관련해 국회를 찾았다. /뉴스1

산안청 신설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없다고도 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사건 처리율은 34.3%인데, 50인 미만 영세·중소기업에 적용되면 대상 사업장이 2.4배 늘어난다. 이 장관은 “산안청을 만들어도 (사건이 늘어) 중대재해 예방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전부 수사로 쏠린다.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라며 “(반대로) 예방을 잘하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수사를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을 코앞에 두고 산안청 신설을 조건으로 내걸자 중소기업계는 조건부 찬성 입장을 보였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홍익표 원내대표를 만난 후 민주당이 요구한 산안청 신설과 관련해 “수사·감독이 아니라 산재 예방 지원에 중점을 둔다면 중소기업계는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국민의힘과 정부가 산안청 신설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길 바라며 민주당도 더 이상 요구 조건을 덧붙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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