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마 그만 내오소, 배 터지삐겠네”
마산 해산물 요리 전문점 서호통술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최형! 새해도 밝았는데 통술 한잔합시다. 얼굴 잊어먹겠어.”
퇴근하려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데, 창원시 ㄱ과장이 문자를 보내왔다. 술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ㄱ과장은 10여년 전 취재원으로 만났지만, 동갑내기인 데다 뜻이 잘 맞아 친구가 됐다. 문자가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일단 한번 튕겼다.
“요즘 통술이 어디 통술인가? 연초니 일찍 일찍 들어가시게”라고 답을 보냈다.
“기막힌 데가 있다니까. 나는 못 믿어도 내 미각은 믿잖나. 오늘 가보고 아니다 싶으면, 내가 열번 술 사리다.”
1시간쯤 뒤 ㄱ과장을 만난 곳은 옛 마산 지역인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마산통술거리에 있는 서호통술이었다. 10평 될까 말까 한 공간에 4인용 탁자 8개가 다닥다닥 놓여 있었다. 주방은 밖에서 훤히 볼 수 있도록 뻥 뚫려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음식 이름이 적힌 메뉴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2인 4만원’ ‘3~4인 5만원’ ‘5인 6만원’ ‘6인 이상(2테이블) 10만원’이라고 적힌 가격표가 벽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5분쯤 지났을까? 탁자에 둘러 앉은 손님 수에 맞춰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통술집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할 필요가 없다. 업주가 그날그날 알아서 준비한 음식을 내놓으면, 손님은 그저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일본에서 시작돼 국내에서도 유행하는 이른바 ‘오마카세’ 방식이다. 서호통술도 그랬다.
“사장님, 마 그만 내오소. 배 터지삐겠네.”
먼저 온 옆 탁자 손님 한명이 주방에 있는 사장에게 소리친다. 그러자 다른 탁자의 손님도 “여기도 그만 주소” 한다.
처음엔 ‘뭘 얼마나 주길래 저리 배부른 소리 하나’ 싶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우리 자리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니 이해가 간다. 굴무침, 참소라구이, 해삼, 키조개구이, 꽃게찜, 가오리찜, 참조기구이, 참돔찜, 광어찜, 문어숙회, 붉은메기구이, 톳나물, 봄동나물, 달래나물, 미역무침, 브로콜리, 달걀찜. 앞접시 하나 놓을 공간 없이 테이블을 채운 음식이 17가지다. 대부분 싱싱한 제철 해산물을 조리한 것들이었다.
“와 그리 못 먹습니까? 깨작깨작 드시지 말고 팍팍 좀 들어 보소.”
젓가락으로 이것저것 한 번씩 맛을 보는데, 주방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갈말숙(68) 사장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음식 접시를 하나씩 비울 때마다 그 자리에 새로운 음식이 놓이는 시스템이었다. 코끼리조개숙회, 황가오리무침, 화살오징어회, 생굴회, 미역, 홍합수제비국에 이어 맨마지막에 나오는 후식까지. 모두 24가지가 나오고서야 음식 행렬은 끝이 났다. 서호통술에 없는 음식은 딱 하나, 밥이었다. 손님 누구도 밥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준다고 해도 뱃속에 밥알 한톨 넣을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갈말숙 사장이 서호통술을 시작한 건 34살 때인 1990년이다.
“손맛 좋다는 소릴 젊어서부터 들었다 아임니까. 그래서 친구랑 둘이서 가게를 차렸어예. 참 겁도 없었지. ‘서호’라는 이름도 친구랑 옥편 찾아가며 지었다 아임니까. 특별한 뜻은 없어예. 그란데 개업하고 석달 만에 친구가 부모님 일 돕겠다며 가버린 겁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 혼자 하고 있습니다.”
옛 마산에는 경남에서 가장 큰 수산시장인 마산어시장이 있어, 이곳에서 매일 공급받는 신선한 해산물로 조리하는 복요리·장어구이·아귀찜 등이 유명하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내놓는 통술집이 발달했다.
갈말숙 사장도 매일 새벽 5시에 열리는 마산어시장 경매에서 하루 치 음식 재료를 산다. 경매에 어떤 해산물이 나오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음식 종류와 가짓수가 바뀌지만, 그 덕에 항상 신선하고 다양한 제철 해산물 요리를 싼값에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다.
‘통술’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대체로 두 가지 설이 경합한다. 1970년대 마산에서 번성했던 요정문화에서 파생했다는 게 첫번째 가설이다(요정 기원설). 1972년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구)이 열리면서 일본 기업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씀씀이 큰 일본인들을 상대로 접대부를 두고 고급요리를 내놓는 ‘요정’이란 술집이 마산 곳곳에 생겨났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요정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후 요정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독립해서 요정식 요리를 싼값에 내놓는 술집을 열기 시작했는데, 요정의 고급요리가 통째로 나온다고 해서 ‘통술집’이라고 불렀다는 게 ‘요정 기원설’의 줄기다.
두번째 가설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시원한 술을 내놓기 위해 얼음물을 가득 채운 통에 소주·맥주를 담가 제공하면서 ‘통술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얼음통 기원설). 이 지역엔 냉장고가 보편화된 지금도 차가운 얼음통에 술병을 담가 내는 집들이 있다. 서호통술 입구 도로 안내판에도 얼음물통에 술병이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갈말숙 사장은 “왜 통술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른다. 내가 장사하기 훨씬 전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는데, 아무래도 두번째 설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얼음물통에 술병을 담가서 내주는 건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걸 전부 ‘통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는 이유였다.
서호통술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는 40~60대가 대부분이다. 낡고 좁고 불편해서 젊은층이나 관광객의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변변한 주차장도 없다. 갈말숙 사장은 “서호통술이란 이름 하나로 수십 년 장사를 하다 보니, 대를 이어서 오는 단골손님이 많다”고 했다. 간혹 ‘아버지가 마산 가면 서호통술이란 옛날 단골집이 있으니 꼭 가보라고 했다’며 물어물어 찾아오는 외지 손님도 있다고 한다. 갈말숙 사장의 바람은 가까운 곳에 공영주차장 하나 생기는 것이다. “첨 오는 손님 열에 아홉은 주차장 어디냐부터 묻는데, 그때마다 참말로 미안하고 부끄러워예. 솔직히 요즘 세상에 주차장 없는 식당을 누가 찾는답니까.”
이날 우리 일행은 배가 너무 불러 후식은 젓가락도 대지 못한 채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갈말숙 사장이 문앞까지 배웅하며 한마디 한다.
“근데예, 어데 가서 우리 집 소문은 내지 마이소. 너무 소문나모 내가 힘들다 아임니까.”
서호통술은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 하는데, 음식 재료가 떨어지면 더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일요일은 쉰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미국발 ‘한반도 전쟁설’ 확산…윤 정부만 모르는 ‘억제력 신화’
- “한국 경제성장률, 일본에 25년 만에 밀릴 듯”
- 15살 중학생 배현진 공격 왜? “연예인 보러 갔다 범행” 진술
- [단독] 경찰 위법 수사 논란 ‘대학로 특수협박범’ 1심서 무죄
- 오픈AI 샘 올트먼 20시간 깜짝방한…삼성·SK 경영진 릴레이 회동
- 미국 정부 쪽 “북한, 몇달 내 한국에 치명적 공격 가능성”
- 윤석열 정부 중대재해법 ‘공포 마케팅’ 2가지 구멍
- [Q&A] 내일부터 쓸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다인 결제도 되나요?
- ‘탄핵 반대’ 외치던 습격범…경찰이 숨긴 정체, 재판서 드러난다
- 윤 대통령 부정 평가 63%…“김건희 리스크 급부상” [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