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의 형사 연기에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인터뷰]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2024. 1. 2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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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사진=넷플릭스

배우 박희순은 자신의 얼굴을 널리 알린 영화 '세븐데이즈'를 비롯해 '1987', '머니백' '경관의 피' 등 다양한 작품에서 형사 역할로 모습을 비췄다. 최근 공개된 '선산'에서도 또다시 형사로 나섰다. 박희순은 '선산' 속 형사 최성준에게 남다른 디테일을 부여하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성해 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선산'(연출 민홍남)은 존재조차 잊고 지내던 작은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일들이 연속되고 이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박희순은 예리한 수사 감각을 가진 형사 최성준 역을 맡았다. 최성준은 마을에 연이어 발생한 불길한 사건이 선산의 상속과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파헤치며 진실을 발견한다. 작품 공개 이후 라운드 인터뷰에 나선 박희순은 작품과 배역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선산' 공개 직후 가장 많은 호불호가 갈린 지점은 오컬트 장르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산'이 개봉하기 전에는 오컬트물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정작 작품은 오컬트물과 동떨어져 있었다. 박희순은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포스터나 예고편 등에서 스산한 분위기가 있어서 그렇게 짐작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작발표회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오컬트 장르를 약간 가미한 가족 드라마'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보시는 분에 따라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오컬트를 무서워하시는 분들은 더 재미있게 봤다고도 하시기도 하더라고요."

또한 결말 부분 근친상간적 요소를 넣은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박희순은 "그 결과와 단어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현상보다 과정에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가족애를 말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비극적이지만, 절절한 사연이 있는 상황이잖아요. 세속적으로 '동생과 눈이 맞아서'라고 표현하기에는 아픈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만 해석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가족애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때문에 현상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넷플릭스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형사 역할을 맡았던 박희순은 '선산'에서 또 한번의 형사를 맡게 됐다. 박희순은 "최성준은 담담하지만, 감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인물"이라며 그전 배역과의 차이점을 소개했다. 

"기존에 했던 형사는 열혈 형사도 있고 비리 형사도 있고 액션이 많은 형사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장 담담한 형사였던 것 같아요. 추리나 감도 있지만, 수사를 할 때도 탐문 수사가 많고 자료를 수집하는 가장 FM적인 형사였던 것 같아요. 또 최성준만의 서사가 있다는 점도 차이였어요. 그 전의 형사들이 직관적이고 액티브했다면 최성준은 담담하지만 감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인물이었어요."

많은 형사를 해봤던 경험 때문일까. 박희순은 최성준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시골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최성준의 모습은 모두 박희순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시골 형사지만 다른 형사들과 다른 지점이 필요했어요. 일단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탐문수사를 하는 쪽에 무게를 뒀어요. 예전에는 수첩에 적는 형사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휴대폰을 이용하고 싶었어요. 사건 기록을 제출할 때 꼼꼼하게 작성하거나 휴대폰으로 필기하는 부분 등을 생각했어요. 시골 형사지만, 감으로만 하는 형사가 아니라 계획적이고 꼼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감독님께도 이런 부분을 담아주시면 활용하는 데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사람을 대하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성준은 기존의 형사들과 달리 탐문 과정에서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자신과 얽힌 박 반장(박병은)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박 반장 불같이 화를 내도 허허실실 웃으며 상황을 수습하는 모습은 최성준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박 반장이 뭐라고 하면 쓱 빠지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그렇게만 하면 감정이 쌓이지 않을 것 같아서 애드리브를 넣었어요. '우리 관계 나쁘지 않아'라는 모습을 보여주다 나중에 압박이 거세지고 감정이 쌓여서 폭발하는 거죠. 감독님이 아닌 것은 편집하면 되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셔서 할 수 있었어요. 탐문할 때도 친근하게 대해야 할 것 같아서 날카롭게 말하기보다는 '저희 드라이브나 가실까요?'라며 부드럽게 이야기해 보려고 시도했어요."

/사진=넷플릭스

이렇게 최성준의 입체적인 모습이 중요했던 이유는 최성준은 선산의 비밀을 수사하는 관찰자인 동시에 스스로도 나름의 서사를 가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일적인 부분에서는 디테일하고 능청스러운 최성준의 모습은 홀로 있을 때 고독을 즐기는 모습과 대비됐다.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지 않던 최성준은 윤서하(김현주)와 맞부딪히며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일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봤어요. 탐문하고 수사할 때는 평소보다 친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사건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거죠. 그런데 윤서하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자기 감정을 이입하게 돼요. 일적인 부분에서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냐'고 물었는데 '당신은 어떤 아버지냐'고 개인적인 질문이 돌아오거든요.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적인 면을 되돌아보게 되는 거죠."

최성준과 아들, 박 반장 사이에 얽힌 서사 역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선산의 큰 줄기로 인해 최성준 개인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단편적으로 등장하지만, 박희순은 이러한 감정 역시 모두 고려해 캐릭터를 연기했다.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아들에 대한 기억 내지는 죄책감이 있고, 집 안에 혼자 멍하니 있는 것 자체가 그 심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평소에는 유머러스하고 친근하게 다가가지만, 일적인 면을 배제하면 공허한 모습이 많이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내면에는 계속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형사로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 바람에 가정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을 것 같아요. 아들에게 '넌 뭘 하고 있었냐'고 말하는 것도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말이 튀어나와서 상처를 입히고, 이를 풀지 못해 박 반장과 같은 관계가 되는 잘못이 연속되어 버리는 게 가장 가슴 아팠어요."

/사진=넷플릭스

'선산'을 비롯해 '무빙', '트롤리' 등 쉬지 않고 시청자들과 만난 박희순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박희순은 "이제는 고려할 게 많아진 것 같다"면서도 "다음 작품은 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음에는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너무 인상을 쓰다 보니 힘들어서 보는 사람도 힐링이 되고 저도 힐링이 되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코미디도 좋고 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작품을 선택하는게 가장 어려워요. 내가 어떤 작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의 길이 바뀌잖아요. 그래서 상의할 사람도 필요하고 고려할 것도 많아요. 어릴 때는 내가 좋아서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고려할 게 많아진 것 같아요."

작품을 선택하는 게 운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박희순의 선택은 지금까지 적중했다.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박희순은 "잘 늙어가며 연기도 늘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멈춤 없는 발전을 예고했다. 

"나이를 제대로 먹었으면 좋겠어요. 잘 늙어가면서 연기도 늘었으면 좋겠어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그걸 극복하고 나를 이겨가는 게 가장 어렵고 큰 숙제이고, 평생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평생 한계를 뚫어내기 위해 싸웠듯이 앞으로도 싸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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