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설탕
2500여 년 동안 인류 대다수의 음식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보기 드문 재료가 있었으니, 바로 ‘설탕’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음식 칼로리의 주된 원천이다. 사탕수수 줄기에서 추출한 수크오로스는 설탕의 원료다. ‘단 맛’을 알아버린 유럽인들의 설탕 사랑은 흑인 노예들을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고가는 계기로 작용했고, 재배 면적이 늘어나며 환경 파괴를 초래했다. 소수만 맛 볼 수 있었던 설탕이 어떻게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질병 유발과 환경 오염을 일으키게 되었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 교수이자 국제사회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저자가 쓴 신간 ‘설탕’은 인간의 식생활을 바꿔놓은 설탕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설탕이 어떻게 우리의 식생활부터 정치, 건강, 환경을 바꿨는지 알려준다.
설탕은 모든 대륙에서 인간의 삶을 바꿔놓았다. 산업화, 이주, 식생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했다. 설탕은 부를 창출했고, 노동자에게 고통을 안겼으며, 인종주의와 결합했다. 또 정치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설탕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대변하는 바로미터다. 설탕의 역사를 추적하다보면, 현재 액상과당과 에탄올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 상품이 인간 사회와 생태 환경을 어떻게 위협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에 노예제로 고착되고 탈식민지 시대에도 예속된 노동력으로 움직인 플랜테이션 농장 경제, 수확기의 이주 노동자를 설명한 노동사이기도 하다. 중세시대에 상인들은 희귀품인 백설탕을 황제와 라자와 칼리파에게 가져갔다. 하지만 설탕이 지중해를 건너 사탕수수가 재배되지 않는 유럽으로 전래된 뒤 수요가 급증했고, 이는 폭발적인 공급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유럽인의 설탕에 대한 갈망은 노예 노동으로 충족됐다.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노예가 됐고, 설탕 재배에 동원됐다. 1250만명의 아프리카인 중 3분의 2가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갔다. 때로는 잔인한 고문이 이어졌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기 위해, 목을 매거나 농장주들에게 손해를 끼쳐 복수하려고 사탕수수 즙이 펄펄 끓는 솥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런 비극이 노예제 폐지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자본가들과 설탕 가문들과 대기업들의 각축전, 이들이 국가의 정책에 행사한 영향력도 서술한다.
책에서는 설탕 소비의 역사도 보여준다. 설탕 소비는 ‘광고 문화의 미국화’를 통해서도 촉진됐다. 설탕이 포함된 식품은 미국 영화 산업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됐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영화 산업이 ‘날씬함’이라는 새로운 신체적 규범을 세웠다. 마른 몸은 그전까지는 그 죽음의 질병이 안겨주는 고통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완전히 새로운 함의를 얻었다. 당시 담배 산업은 여성 담배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단 음식이 살을 찌운다는 여성의 인식을 이용했다.
책은 설탕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도 다룬다. 우선 질병 영역이다. 설탕은 충치뿐만 아니라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이다. 의학계에서는 설탕이 건강에 해롭다고 경고했는데, 설탕 산업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설탕의 부정적인 면을 감췄다. 설탕 생산자들은 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건강에 대한 경고를 흐리게 했다. 도널드 럼스펠드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후 제약사 최고경영자가 돼 감미료 아스파르테임의 금지를 취소시킨 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정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환경 오염이다. 농장의 확장을 위해 숲을 불태우고 연료 등의 목적으로 마구 나무를 베어낸 결과 토양이 유실되고 수질이 오염됐다. 오늘날에는 에탄올을 생산하기 위해 숲을 사탕수수 밭으로 만드는데, 이는 화석 연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설탕 자본주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과연 단맛을 찾는 강력한 욕구에 저항해 자본주의의 힘을 억제할 수 있을까.
윌버 보스마 지음ㅣ조행복 옮김ㅣ책과함께ㅣ624쪽ㅣ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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