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 강자 노보노디스크 차세대 투자 속도 높인다...비만·지방간 주목
‘GLP-1′과 다른 원리 비만 치료제 발굴
덴마크 제약기업 노보노디스크가 올 들어 한 달도 되지 않아 미국과 스위스의 3개 바이오텍과 총 2조원이 넘는 투자 계약을 맺었다. 노보노디스크는 비만 치료제 유행을 불러온 삭센다와 위고비를 잇따라 출시하며 비만 치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와 손을 맞잡은 세 곳 모두 기존과 다른 원리의 비만과 대사질환 치료제를 연구·개발 중인 회사다. ‘글로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방식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를 이을 차세대 비만 정복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스위스 바이오텍 ‘에라칼 테라퓨틱스’와 새로운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과 상업화에 대한 기술 이전(라이센싱)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을 통해 노보노디스크는 에라칼의 신약 후보물질을 2억3500만유로(약 3414억원)에 사들였다.
에라칼은 먹는 방식의 저분자화합물 비만치료제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다. 인간과 유전적 구조가 80% 이상 흡사한 열대어류 제브라피쉬를 활용한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가 에라칼로부터 인수한 후보물질 ‘ERA-379′는 저분자화합물질로, GLP-1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식욕을 억제한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앞서 2022년 에라칼의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먹는 비만약을 공동 개발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이번엔 아예 에라칼의 기술을 인수한 것이다.
앞서 이달 8일에는 미국 세포 유전자 치료제 스타트업인 오메가 테라퓨틱스, 인공지능(AI) 신약개발 스타트업인 셀라리티와 최대 16억4000만달러(2조1922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협력 계약을 맺었다. 노보노디스크는 두 회사의 R&D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오메가 테라퓨틱스는 후성 유전체를 조절해서 체중을 줄이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셀라리티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분자를 찾는 연구를 한다. 노보노디스크는 셀라리티의 플랫폼을 활용해 대사 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승인받은 MASH를 적응증으로 한 치료제는 없다.
글로벌 제약 업계는 노보노디스크가 GLP-1 치료제의 뒤를 이을 차세대 비만 치료 신약 개발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이 치열해진 데 따른 대응이기도 하다.
GLP-1 비만치료제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 ‘GLP-1′ 유사체를 몸에 주입해 위장의 소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원리의 의약품이다. GLP-1 치료제 시장 문을 연 게 노보노디스크다. 이 회사는 GLP-1 약물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비만치료제로 승인받으며 급성장했다. ‘위고비’의 작년 1~3분기 매출은 217억2900만크로네(약 2조7789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92% 증가했다.
하지만 그 뒤를 글로벌 제약사들이 바짝 쫓고 있다. 일라이릴리가 출시한 GLP-1 비만치료제 ‘잽바운드’가 대표적이다. 일라이릴리는 작년 11월 FDA 승인을 받고 한달 만에 미국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두 회사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건데 앞서 진행된 임상 연구에서 위고비의 체중 감량 효과가 잽바운드보다 5~6% 낮은 것으로 평가되면서 잽바운드 출시가 위고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커져 있다.
노보노디스크로선 사실상 독점해온 비만 치료 수요를 일라이릴리에 뺏길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인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라스 푸르에가드 예르겐센 노보노디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일라이릴리의 잽바운드 출시에 따른 노보노디스크의 전략에 대해 묻는 질문에 “위고비 다음 단계를 고려하고 있으며, 다른 용량과 유형, 다른 대체 전달 방법 등이 포함된 초기 단계 후보 포트폴리오를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당뇨, 비만, 심혈관질환, 희귀 혈액질환에 강력한 포트폴리오 구축하고 심혈관·심혈대사질환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당뇨·비만 GLP-1 수용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인수·기술 도입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GLP-1 계열 약물이 비만치료제 1세대라고 한다면,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를 뛰어 넘을 차세대 기술에 대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는 게 허 연구원의 진단이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회 상근이사는 “통상 시장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치료 원리로 개발된 신약,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가 반드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첫번째 신약을 바짝 쫓아 좀 더 우월한 치료 효과를 내는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약이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미국 등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마케팅 파워를 지닌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추격이 노보노디스크에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여 이사는 “이에 노보노디스크는 보다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내는 신약을 개발하고자 신약 개발 전략을 다양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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