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 창업주 외손자 이승환 “취약계층 생필품 문제 5년 내 해결하고 싶다”
SK 퇴사 후 IT 기반 기부 플랫폼 ‘돌고’ 창업…“요즘 내가 《삼국지》 유비 같다는 느낌 들어”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SK그룹 창업자 고(故) 최종건 회장의 외손자인 이승환 돌고도네이션(이하 돌고) 이사장(35)이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돌고는 모금한 기부금으로 아동·청소년, 여성, 노인, 동물, 장애인 유관단체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지원하는 IT 기반 기부 플랫폼이다. 이 이사장은 최근 유명 유튜브 방송에 46분 동안 등장해 대중과 상견례를 했다. 한 달여 전에 93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휴먼스토리'가 'SK 대기업 재벌 3세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올린 이 이사장 관련 영상은 1월25일 현재 443만 조회 수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댓글도 9000개 가까이 달렸다. 재벌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증명하는 경이로운 수치다.
이 이사장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인 데는 그가 자택과 일상, 인간관계 등을 솔직담백하게 공개한 영향도 컸다. 2010년 박용만 당시 두산그룹 회장의 《SBS 스페셜》 출연 이후 굴지의 재벌가 일원이 사생활을 노출한 건 처음이다. 용기를 내 유튜브에 얼굴을 내비친 이 이사장은 시사저널과 1월19일 만나 못다 한 속 이야기를 남김없이 털어놨다. 돌고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공유오피스에 입주해 있다. 이 이사장은 수수한 차림으로 헐레벌떡 사무실에서 나와 인터뷰 장소인 회의실의 불을 켰다. 이어 익숙한 듯 기자에게 "물이나 커피 중 뭐 드릴까요?"라고 묻더니 주차 등록을 위해 차량 번호도 살뜰하게 적어갔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근황 질문부터 건넸다.
유튜브에 사생활 공개하자 조회 수 400만 돌파
유튜브 영상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겠다.
"두세 번 정도가 다다. 활동 반경이 (사무실이 있는) 방배동으로 한정돼 새로운 사람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재벌 3세로서 사생활을 노출하는 파격을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함께 만드는 기부문화'라는 돌고의 비전을 이루는 데 커뮤니티 형성이 선결 과제라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언급한 '삼촌'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지목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최 회장이 맞나.
"아니다(웃음). 최태원 회장님은 외당숙(오촌)이다. 안 그래도 영상이 나가고 (최 회장으로부터) '정정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최 회장과의 평소 관계는 어떤가.
"외할아버지(최종건 창업회장) 제사 등 가족 모임이 잦아 자주 뵙는다. 나를 비롯한 조카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들어보려 노력하시고 덕담도 해 주신다."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 고(故) 최종현 2대 회장(1998년 별세)은 1973년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이 47세의 나이로 별세한 후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최종현 회장은 그룹을 이끄는 내내 최종건 창업회장의 7남매 등 자손들을 직계 못지않게 아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승환 이사장은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2000년 별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등 최종건 창업회장의 아들들, 즉 외삼촌들처럼 가업에 참여했다. 이 이사장의 친할아버지는 최종건 창업회장과 막역한 사이였던 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2009년 85세를 일기로 별세)이다. 이 전 부장은 슬하에 4남1녀를 뒀는데, 막내아들 이동욱씨(62)를 최종건 SK 창업회장의 3남4녀 중 막내딸 최예정씨(62)와 결혼시켰다.
그러나 이 이사장이 SK에 머문 기간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제 발로 나왔다. 유튜브에서는 "삼촌이랑 싸워서, 아니 싸웠다기보다 혼나서" 퇴사했다고 했지만, 본질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이 이사장은 고백했다.
SK에서 5년여간 근무…최종 직급은 대리
SK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근무했고, 무슨 일을 했나.
"2012년 SK건설에서 잠깐 인턴을 하고 2013년부터 2016년까지 SK케미칼에서 수지(樹脂) 사업을 담당했다. 2017년부터는 SK가스에서 경영 지원 업무를 하다가 그해 10월 퇴사했다. 최종 직급은 대리였다."
SK 재직 시절을 떠올린다면.
"즐거웠다. 특히 선배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유튜브 방송 후 여러 선배로부터 연락이 오기도 했다. '찰스(SK 재직 당시 닉네임) 있을 때가 좋았다'거나 '응원한다'는 메시지 등을 전해줘서 힘이 됐다."
퇴사할 때 상황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CEO인 삼촌에게 혼났다고.
"싸우거나 혼났다는 표현보다는 토론이라고 하고 싶다. 삼촌과 '방향성'에 관한 토론을 했다. 견해 차이가 있었다. 서로 비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가족 회사를 박차고 나와 곧바로 돌고를 창업한 건가.
"퇴사하고 카페를 검색하는 앱을 론칭했다. 동시에 돌고도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카페 폐업률이 높아 애써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못 쓰게 되는 경우가 빈발했다.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될 때까지 투자하는 셈 치고 진득하게 기다리기엔 기회비용이 무지막지했다."
"기부 사업은 삶의 원천이자 행복"
이승환 이사장은 결국 첫 사업을 접고 업종을 전환해 2019년 8월 IT 기반 기부 플랫폼 돌고 앱을 출시했다. 카페 검색 앱이 '하고 싶은 일'에 머물렀다면 돌고 앱은 '하고 싶으면서 잘할 자신도 있는 일'이었다. 이 이사장은 "금전적인 욕심이 적은 데다 (자산가이기 때문에) 돈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희박한 내가 하기에 유리한 사업이라 판단했다"며 "기부 사업은 경쟁자가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글로벌 톱10에 오르기도 쉬울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 이사장이 SK에서 나와 스타트업 업계에 뛰어든 지 어느덧 6년 넘게 지났다. 꽃길 따위는 없었다. 그는 처절했던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창업 3~5년 차 스타트업들이 겪는 경영난)를 벗어나 이제 겨우 방향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좁은 공유오피스 한 귀퉁이에서 홀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지난 시간은 그야말로 '사서 고생'이었다. 한때 9명까지 뒀던 직원은 줄이고 줄여 2명이 됐다. 그간의 소회를 물으니 이 이사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뗐다.
잘할 자신이 있는 기부 플랫폼으로 업종을 바꾸고도 한동안 어려웠다고.
"(한숨을 쉬며) 너무 힘들었다. 돌고를 창업하고 1년간은 기부금이 모이는 것을 보며 적잖은 보람을 느꼈다. 그러다 2년째에 성장 정체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3년째엔 적자 구조 속에서 돈을 전혀 못 벌고 있다는 사실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기부 플랫폼이 돈을 못 번다는 건 알겠는데, 적자는 왜 발생하는가.
"돌고의 특징은 기부자가 신용카드로 1000원부터 기부금을 결제하면 카드수수료나 인건비 등을 위한 운영 수수료를 일절 떼지 않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적자는 뭐로 메우나.
"사재(私財)로 적자를 보전해 왔다."
외부로부터 투자받지 않은 이유는.
"투자를 유치하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불려줘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투명하고 지속 가능한 기부문화를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일에 에너지를 분산하고 싶지 않았다."
최근 찾아낸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해 달라.
"우선 앱 유저와 기부금 액수가 크게 증가하면 기부 물품을 제조사로부터 더 많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그때 돌고가 기부자들과 물품이 필요한 단체들을 한데 모아 공동구매를 하는 거다. 구매가와 소매가의 격차가 바로 돌고의 매출이 된다."
비즈니스 모델이 실현돼도 적자 구조는 지속될 듯한데.
"수익은 여전히 없을 예정이다. 그래도 '계획적 적자'를 계속 볼 생각이다. 쿠팡이 창업 초기에 적자를 감내하며 인프라 구축에 매진한 걸 선례로 들 수 있다. 내 관심은 오직 건강한 기부문화 구축과 확산이다."
이승환 이사장은 "잘할 수 있는 것(기부 사업)을 하기로 한 후 할 수 없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도 구체적으로 추려가다 보니 방향성이 선명해졌다"며 "이 과정에서 비즈니스 모델도 발견하게 돼 한시름 덜었다"고 전했다.
도약을 꾀하고 있는 돌고에 이 이사장의 휴먼스토리 출연은 '신의 한 수'가 됐다. 해당 영상에 달린 8700여 개 댓글은 선플 일색이었다. 네티즌들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니 자신을 노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기 드물게 존경스러운 재벌 3세다' '재벌이 운영하는 기부 플랫폼이라 횡령 같은 비위 행위가 일어날 일은 없겠다'는 등 호평을 보내며 속속 돌고를 통한 기부 참여 의사를 내비쳤다.
실제로 이 이사장의 휴먼스토리 출연분이 인기를 끈 후 돌고 서비스 유저는 3만 명 정도 급증했다. 기부금도 밀려들었다. 1월1일부터 인터뷰 당일인 19일까지 모인 기부금만 5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모금액과 같았다.
성과가 급격히 좋아지고 있어 고무적이겠다.
"사실 수치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많은 사람이 기부가 돈이 아닌 문화 차원의 문제라는 걸 이해해줘 감사할 따름이다."
재벌 3세의 탄탄대로를 버리고 기부문화 확산에 매진하는 삶이 그렇게 좋은가.
"돌고 때문에 하루하루를 산다. 삶의 원천이며 행복 그 자체다. 이제 많은 사람이 관심까지 가져주기 시작했다. 요즘 《삼국지》를 읽고 있는데, 내가 유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우, 장비와 함께 방황하다가 호기를 잡아 처음 자기 지역을 갖게 된 유비에 내 모습이 투영된다."
평소 책을 많이 읽나.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럼 어디서 정보를 얻어 내공을 쌓는 건가. 언행이 굉장히 성숙한데.
"13세 때부터 대전의 외국인학교 기숙사 생활, 미국 유학 생활 등을 거치며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당시 주변 사람들 혹은 각종 사회적 현상을 놓고 정말 많이 고찰한 기억이 난다. 직접 관찰하거나 인터넷으로 자료를 뒤져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어떻게든 답을 구해 보고자 했다. 이런 삶의 태도가 몸에 배어 지금 기부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나타난다. 멘토나 선배 등으로부터 의미 있는 가르침과 영감을 받을 수 있으나, 자기 필드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학창 시절부터 고찰하며 답 찾는 습관 들여
이승환 이사장은 '금수저, 그것도 재벌이라서 돈 걱정이 없고 비빌 언덕도 있으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다'는 일각의 냉소 역시 똑 부러지게 받아치고 있다. 그는 "나를 딱히 재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면서 "내가 내리는 재벌의 정의는 가업을 물려받고 이해관계자들과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SK와) 떨어져 혼자 사업을 꾸려가고 있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사재로 돌고에 투자하고 적자를 메우긴 했지만, 최대한 공사 구분을 하려고 노력했다. 오너가 부유하다고 회사도 자동으로 여유로울 순 없기 때문"이라며 "먼저 돌고가 자생력을 바탕으로 성장해 가야 내 자본과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고 퀀텀 점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는 SK가(家)에서 체득한 '따로 또 같이' 경영(계열사별로 독립 경영을 펼치면서 기업 문화를 공유하고 그룹 차원의 시너지 창출을 꾀하는 경영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고 이 이사장은 말했다.
총 구성원 3명에 연간 기부금 모금액이 5억원에 불과한 작은 기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이사장의 꿈은 원대하다. 그는 "올해 30억원, 내년 300억원 등으로 기부금 모금액이 수직 상승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돌고의 활동을 통해 5년 안에 대한민국 내 취약계층이 생필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완전히 해소하는 게 미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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