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야 한다” 불난 건물 연기 따라 6층까지 올라간 순경 [따만사]
외식과 술 약속이 많은 어느 금요일 밤, 대전 유성구의 대형 상가건물 1층 화장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건물은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로, 중앙에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위로 이어져 있는 구조다. 지난해 8월 25일 저녁, 이 건물에 있던 인원은 약 200명이었다. 시민들이 평화롭게 금요일 밤을 즐기고 있을 때 1층 화장실에서는 불이 시작됐다.
이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사람은 휴가차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대구에서 올라온 입직 2년 차 경찰관이었다. 대구경찰청 제5기동대 하승우 순경(28·남)이다. 하 순경은 1층 바깥쪽에 있는 음식점에서 친구들과 모임을 하던 중 소변을 보려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가 불이 난 상황을 목격했다.
초기진화 시도 했지만 ‘역부족’
불은 화장실 천장에서 시작돼 점점 번지고 있었다. 하 순경은 상가 관계자와 함께 소화기를 찾아와 진화에 나섰다. 119에 신고는 했지만 우선 초기진화를 해보려 했다. 소화기 한 대를 다 쓰면 또 다른 소화기를 가져와 뿌리며 여러 대를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때 문득 든 생각이 “지금 불을 끄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사람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한다”였다. 화재 인명 사고는 대피 과정에 계단과 복도에서 연기를 마셔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연기가 가득 퍼지기 전에 대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 순경은 같은 모임에 있던 경찰학교 동기(세종경찰청 강준규 경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이때 연기는 이미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 상황에 스스로 연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하 순경은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층층 돌아다니며 “대피 하세요”고함
하 순경은 층마다 돌아다니며 대피하라고 소리 질렀고, 위급상황을 인지한 시민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6층까지 올라가 모두 대피시키는 사이 건물에는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하 순경은 연기를 많이 마셨다. 건물에 있던 200여 명은 모두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갔고, 하 순경이 내려왔을 땐 119가 도착해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과 팔이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초반에 소화기로 진화를 벌이다가 천장에서 불붙은 구조물이 하 순경의 얼굴로 떨어졌는데 이때 화상을 입은 것이다.
하 순경은 119 구급대에 의해 즉각 병원으로 옮겨졌다.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가족에게는 차마 사실대로 알리지 못했다.
다음날 대구로 돌아온 하 순경은 화상 입은 이유를 어머니에게 설명했고, 어머니는 걱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더 안 다쳐 다행”이라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경찰이 된 순간부터 남을 돕는 사람이 된 걸 뿌듯해했다.
하 순경은 대구의 화상 전문병원에서 약 3주간 치료를 받았지만 이마에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다.
“주머니 속 사탕…경찰 지망생의 숙명?”
하 순경은 우연히 눈앞에 이런 일이 닥친 것을 자신의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 시험을 준비하던 5년 전쯤에도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에 바로 앞에서 한 승객이 돌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당뇨가 있던 50대 남성 승객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마침 하 순경의 주머니에는 평소 잘 가지고 있지도 않던 사탕이 들어 있었다. 하 순경은 재빨리 사탕을 먹여봤고 쓰러진 승객은 곧 정신을 되찾았다.
“정말 그때 우연스럽게도 주머니에 사탕이 있었어요.”
하 순경은 그 승객 앞에 자기가 서 있게 된 것도, 때마침 주머니에 사탕이 있던 것도 자신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대전 화재도 그날 거기에 하 순경이 있었기에 보다 빨리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었다.
“나보다 숨은 영웅 세상에 많아”
하 순경은 대형 화재 및 인명피해를 막은 공로로 지난해 경찰청장 표창을 받았다. 위험한 순간 소중한 생명을 구한 사회의 영웅을 발굴해 알리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생명존중대상’도 수상했다.
하 순경은 “제가 영웅이라는 얘기를 들어도 될지 모르겠다. 경찰에는 알려진 사람들보다는 숨겨진 영웅들이 더 많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조심스럽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119보다는 112를 누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휴가 중에도 책임을 다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공을 넘겼다.
그러면서 “앞으로 경찰 생활이 30년 더 남았다. 지금 제가 있는 곳 말고 다른 곳을 가게 되더라도 남아있는 30년 동안 항상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는 경찰관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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