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허비했다 느끼나요? 춤추다 사라지는 눈송이를 봐요
동그란의 마음극장은?
어떤 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왜 저기 들어 있나 싶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드러낸 것 같은, 친구에게 꼭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그런 장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동그란’이 격주로 마음 속에서 재편집되는 대사, 기억의 영사기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때가 되면 계절은 돌아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겨울은 춥고, 유행성 독감이 몇 차례 돌고, 눈이 내립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처음 겪는 것처럼 매번 다르게 호들갑을 떨어요. 겨울인 건 알지만 왜 이렇게 추운 거냐고, 이번 감기는 어쩌면 이렇게 독하냐고, 눈 내리는 거 봤냐고, 너무 예쁘지 않았냐고. 크게 다른 게 없는 겨울날을 저마다 새롭게 느끼면서 그렇게 겨울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요. 인생의 여정은 엇비슷한 흐름을 따르게 되어 있는 듯하지만 자기만이 경험하고 간직하는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지극히 개별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다 아는 이야기가 새로운 옷을 입고 찾아오고, 흘러간 노래가 새로운 목소리로 다시 불리듯, 겨울마다 바람 부는 거리에서 붕어빵을 사 먹듯, 우리는 이미 아는 이야기를 다시 하는 영화를 또 봅니다.
며칠 전 극장에서 일본 영화 ‘이키루’(1952년)를 원작으로 한 ‘리빙: 어떤 인생’을 보았어요. 두 영화는 줄거리도 똑같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에 남은 그 한 장면만은 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누군가 또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 똑같은 느낌은 아닐 거예요. 그 순간의 감정이 너무도 벅차서, 내가 본 결정적인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본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은 어떤 장면인지 들려달라 말하고 싶었어요.
‘리빙: 어떤 인생’에서 배우 빌 나이가 연기한 인물 윌리엄스는 런던시청에 근무하는 전형적인 젠틀맨으로서 하루하루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하는 데 일생을 다 바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마치 오래된 가구처럼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던 그도 일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거지요.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더라고요. 가족들하고는 대화를 시작하기조차 어렵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막막합니다.
이런 문제는 암에 걸리지 않았을 때도 언제나 문제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무얼 어떻게 해야 즐거워지는지 그 오랜 삶에서도 알아내지 못했죠. 인생의 종점에 느닷없이 도착한 충격으로 거리를 헤매던 윌리엄스는 어느 순간 갑자기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에 몰두합니다. 폐허가 된 공터를 놀이터로 만들어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일에 혼신을 다해 매달리죠. 대체 무엇이 그를 새로 태어난 듯한 삶을 살도록 이끌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그를 둘러싼 공기가 묘하게 바뀌기 시작한 지점이 어디냐고 물으면 저는 그가 전 직장 동료 마거릿의 청을 들어주기 위해 펜을 들고 빈 종이를 바라보던 그 장면부터라고 말할 거예요.
변화는 그때 시작된 것 같았어요. 이직을 준비하고 있던 마거릿은 길거리를 배회하던 윌리엄스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와 말을 건네요. 새로 구한 일자리를 위해서 전 직장 상사인 윌리엄스의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했죠. 윌리엄스는 마거릿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마거릿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시켜주고, 그 앞에서 글 쓸 준비를 합니다.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멋진 장면이에요.)
시청에서 일할 때는 ‘유령’이라 불릴 만큼 생기 하나 없던 그였는데 마거릿의 추천서를 시작하는 모습은 너무 달랐어요. 마치 신이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 빚어내기라도 한 듯 생생하게 반짝이는 윌리엄스. 마거릿을 위한 말들을 고르는 그의 섬세한 옆모습은 경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집중하고 있는 윌리엄스 앞에서 마거릿은 쉴 새 없이 질문들을 쏟아냈어요. 하지만 윌리엄스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지요. 수시로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맞춰주고 답을 해주었지요. 삶이 그의 퇴장을 선고한 상황에서, 공포와 슬픔과 혼란으로 가득했던 노인의 얼굴이 저토록 섬세하고 다감하고 자유로운 예술가의 얼굴로 바뀔 수 있다니,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이래서 배우의 얼굴을 일컬어 천의 얼굴이라 하는가 봅니다.)
어디에다 마음을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어 하던 그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하고 초점이 잡히기 시작하던 순간. 마거릿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그의 미래를 위한 단어를 고르고 문장들을 구사할 때, 그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났던 거 같다고 생각하는 건,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내 마음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람이란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경험할 때-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살아 있음을 느끼는 존재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그런 순간들로 인생의 행복이 채워지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어떻게 허비했든, 어느 날 어느 순간, 아무 속박이 없는 자유로움 속에서 자기다운 모습을 한껏 드러낼 수 있었다면, 그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다면, 별로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을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이번 겨울은 특별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유난히 매서운 칼바람과 혹독한 감기도 잊을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하얀 눈발이 축복처럼 펑펑 쏟아지던 날들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아직도 몇 번의 고비를 더 넘어야 할 테지만, 이미 내 마음속 사진첩엔 이 겨울의 주요 장면이 갈무리되었습니다. 거기엔 ‘리빙: 어떤 인생’의 장면도 들어 있습니다. 영화의 끝에서 하얀 눈송이가 춤추듯 자유롭게 부유하다 이내 사라져버리던 그 짧고 아스라한 장면을 잊지 못할 거예요. 그 장면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선 윌리엄스의 마음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삶이 어느 겨울 한 철 내리는 눈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세상을 다 덮을 듯한 폭설일 필요도 없고, 이글루나 눈사람 같은 것의 재료조차 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어요. 윌리엄스의 삶을 축복하듯 따스하게 내려앉던 한 점의 눈송이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자유롭게 존재하던 순간들을 음미하기를 원해요. 그런 찰나의 우아함으로 포착되는 아름다운 인생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간직하고 싶어요.
영화 칼럼니스트 동그란 ha02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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