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복구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이 정부의 목적"
TBS 출연금 지원 중단, KBS 수신료 분리징수, 연합뉴스 정부구독료 82% 삭감에 YTN 공기업 지분 매각까지. 윤석열 정부 들어 시행된 각종 언론 관련 대책들, 특히 공영 언론에 행해진 여러 일들은 익숙하면서도 아주 낯선 방식으로 이뤄졌다. 일각에선 그런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을 두고 ‘전근대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초현실적인 것에 가깝다”고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진단했다. 정 교수는 25일 한국언론정보학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가 공동 주최한 ‘TBS, 이대로 멈춰서야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방식을 “신유형의 언론탄압”으로 규정하며, 그 서막에 TBS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정 압박으로 ‘내부 분열’ 유도…“불행히도 효과적”
윤석열 정부가 ‘신유형’이라면 기존 유형의 ‘창시자’는 이명박 정부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 정부에서 선임된 공영방송 이사를 해임하고 새로운 이사를 선임해 다수결 구조에서 우위를 확보한 뒤 먼저 사장을 바꾸고 이하 임원 및 프로그램 제작진을 교체하는 게 “이명박 정부가 만든 모델”이라는 것이다.
이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재정 압박을 무기로” 내세웠다. TBS는 서울시가 출연금 지원을 중단키로 했고, KBS에 대해선 “어떤 정부도 시도하지 않았던” 수신료 분리징수란 카드를 사용했다. 이는 “불행히도 효과적”이었다. 정 교수는 “내부 분열과 붕괴가 유도됐다”며 “그리고 나서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층부부터 ‘제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초현실성’이 “‘오늘을 살뿐 내일이 없다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YTN의 매각 과정이라든가 방통위원장 교체 과정,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교체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반역을 정면으로 봉쇄하는 KBS에서의 제작진 교체 과정 등이 다 하나하나 상당한 위법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위법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며 “정권이 유지되는 기간에는 수사·기소를 통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혹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이미 저질러진 것을 되돌릴 수 없고, 몇몇 개인이 단죄되더라도 정권이 바뀐 후에 ‘복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경험칙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도구화’ 하는 대신 ‘무력화’
실제로 ‘설마’ 하던 일들이 일어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언론탄압의 책임자로 비판받았던 인물들이던 공영방송 이사와 감사로, 집권 여당의 언론대응책으로, 심지어 방통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정 교수는 “‘사법적이건 정치적이건 단죄를 받았던 이들이 설마 돌아올까, 새로운 어떤 욕망을 가진 자들이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돌아왔다는 게 윤리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남기고 있고, 이게 바로 현 정부의 태도라는 걸 명확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 하나 특이한 건 “이 정부는 공영방송을 자신의 도구로 쓰는 데도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조만간 KBS를 대상으로 대담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도구를 만들고 난 다음에 쓸모가 있으니까 일부 쓰는 것일 뿐이지, 그걸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장을) 교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면 수신료를 건드리지 않고, 출연금을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TBS에 대한 지원 폐지 조례안을 추진하면서 나중에 지방선거에서 의회 권력 구도가 바뀌어 ‘뉴스공장’의 김어준이 돌아올 상황을 우려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경영진이 교체된 경험들을 저들도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서 복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그래서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를 만드는 게 목적이고, 너덜너덜해진 채로 그래도 쓸모가 있을 때 그냥 조금 쓰고 마는, 그리고 나중에는 시장으로 넘겨버리겠다는 태도가 현 정부의 새로운 유형의 탄압이 가지고 있는 상당히 중요한 특이점”이라고 밝혔다.
“언론자유 담론 통하지 않아…‘공공미디어 정책 패키지’ 만들어야”
그렇다면 이에 대한 언론, 시민사회, 학계 등의 대응은 어땠나. 정 교수는 한 마디로 “무력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입법적, 정책적으로 선제 대응이 미비했다”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꼽았다. 쉽게 말해 문재인 정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해 재정적 문제 등을 포함한 공영방송 제도를 손볼 수 있는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갖고 있었으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끌어낼 만한 외적 압박도 미미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방송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과정이 주류 지상파 방송 종사자의 이해관계로 축소돼 버렸다”면서 “다시 말하면 ‘정권 바뀌어도 제작진이 자기 자리 보호하는 데 괜찮은 제도 하나 만들어 놓겠다는 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오해될만한 측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언론자유와 공정성, 독립성 담론이 “초현실적인 권력 행사에 맞서기엔 무력한 담론”이란 진단도 이어졌다. 정 교수는 “언론자유가 과거 독재 정부를 상대할 때는 효과적인 담론이었는지 몰라도 시민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언론인들이 언론 자유를 누릴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자유가 내 자유와 연결된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언론자유 담론으로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 저항한들 실제로 저항을 뒷받침할 만한 시민사회 조직이 안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 교수는 관습적인 형태의 언론자유, 공정성, 독립성 담론 대신 “정부와 기득권에 종속된 방송이 아닌 시민과 약자의 편이 되는 방송”으로 가치지향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적어도 상당수의 시민이 어느 정도 도덕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독립의 결과가 약자의 편이 되고, 기득권에 반대한다는 것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언론자유가 언론인이 마음대로 할 자유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를 지지하기 위한, 그리고 약자의 자립을 지지하기 위한 양심 있는 언론인의 자유를 지지해달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넷플릭스 시대에 공영방송이 정말 필요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사유화되거나 민영화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며 “‘공영방송을 지키자’가 아니라 ‘민영화는 막자’로, 적어도 사유화 되는 걸 막자는 건 어느 정도 성립될 수 있는 담론”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리 꽂아주기, 건설사에게 넘겨주는 민영화가 아니라 우리의 공공 자산을 지키자는 태도로 여러 가지 미디어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따라서 “총선 시기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공공기관을 민영화하는 것에 반대하거나 공공 자산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 권력자들이 자신의 충견들에게 자리를 꽂아주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로) 정치적 연대 고리를 세우고, 약탈적 사유화를 저지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서 그래도 생각이 좀 괜찮은 사람들을 원내로 밀어 넣어주자는 것에 시민사회에서 일부라도 반응이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게 지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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