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덫에 빠진 한국, '거꾸로 복지'에 갇혔다

류이근 기자 2024. 1. 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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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HERI 공동기획
윤홍식 인하대 교수 인터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수출 선적 부두 전경.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체제가 한국 경제의 성공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덫이 되어 많은 문제를 낳았다. 연합뉴스
불평등은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열쇳말이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난제, 고통, 불안의 기저에 불평등이 있다. 소득과 자산 등 전통적 의미의 불평등이 여전한 가운데 불평등 의제는 공정성 담론에 부딪혀 길을 잃기도 하고, 기후위기, 고령화와 돌봄, 인공지능 등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뒤엉키고 뒤틀리기도 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원장 이봉현∙HERI)은 상생과 연대를 위한 대안 공론장을 지향하는 소셜코리아(운영위원장 윤홍식)와 함께 ‘다시, 한국의 불평등을 논한다’ 기획을 시작한다. 한국의 불평등 논의는 왜 견고히 이어지지 못하고 부침을 거듭하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편집자주

마주 앉은 그의 등 뒤 거실 책장에 꽂힌 수백 권의 책은 온통 역사서다. 들여다볼 수 없는 다른 서재와 연구실에 또 어떤 책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아마 경제와 정치 관련 서적들도 적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복지 관련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그는 사회복지학자다. 복지와 불평등을 복지의 앵글만이 아니라 경제와 정치, 때론 역사를 넘나들면서 통섭한다. 오늘날 한국의 복지 문제를 짚으면서 조선 시대 이앙법을, 60년간 지속한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모델과 개발독재, 정치사의 궤적을 꿰어 설명한다.

시야를 확장해 다다른 그의 진단은 ‘역진적 선별 주의 복지체제’다. 어떻게 취약 계층이 아닌 안정적 소득과 일자리를 지닌 계층을 위한 복지국가의 모습을 띠게 되었는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가며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지난 19일 서울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를 1시간 반 남짓 인터뷰했다. 더 나은 복지국가에 이르기 위해 지금의 경제와 정치 체제를 그대로 놔둔 채로는 어렵다는 게 윤 교수의 처방이다. 그는 인터뷰 중 수시로 컴퓨터 모니터에 준비된 자료를 띄워 설명을 보충했다. 기사에도 일부 첨부한다.

―최근 펴낸 책에서 ‘성공’과 ‘덫’이 자주 짝이 되어 붙어 다닌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가?

“변화 안에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우리가 직면한 저출산, 세대 간 갈등, 부와 사회적 지위의 세습, (높은) 자살률과 주택 가격 등 문제가 있는 현실은 실패가 아닌 성공에서 비롯됐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패는 성공의 과정에 뿌리내리고 있다. 성공했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없다.”

지난 19일 윤홍식 인하대 교수가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 서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는 모습. 류이근 기자

―성공의 경로와 지금 겪고 있는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진다. 어느 지점에서 밀접한 상관성을 갖기 시작했나?

“1960년대 권위주의적 경제개발체제에 주목했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추진한 개발 방식이 성장 제일주의였다. 자본과 국가가 균형을 이루는 시민사회가 성장하지 못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적 통제가 사라지고 자본은 속박에서 벗어나 일방적 성장을 이뤘다. 그게 사회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데 제약으로 작용했다.

80년대 말 ‘삼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호황’ 뒤 90년대 들어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자 대기업들이 자동화를 본격화한다.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영업자까지 성과가 고루 배분되고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고 (산업의) 전후방 효과가 확산하는 ‘복선형 성장’이 아닌 대기업만의 성장으로 제한되기 시작한다.

노동자 1만 명당 로봇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로봇 밀도 그래프를 보면 1990년대를 지나면서 높아졌다. 2021년 기준 독일과 일본의 거의 3배에 이른다. (삼성을 필두로 한 대기업들이) 90년대 신경영 전략 도입 뒤 숙련노동을 자동화로 대체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노동 시장에서 좋은 일자리가 줄었다.

자동화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 핵심적인 부분을 빼고 다 외주화하게 된다. 그래서 불안정 고용이나 하청이 증가하는 현상이 1990년대에 나타난다.

이후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한국도 선진국에 진입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 문제가 집중적으로 누적된다. 성장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역진적 선별 주의 복지체제’란 틀로 한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설명해왔는데 그게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안겨줬다고 보나?

“4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에서 2020년부터 2060년까지 추계한 국민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복지지출) 비중을 보면 2060년이 되면 그 비중이 25%(추계 당시 비중은 15% 미만)까지 늘어난다. 자세히 보면 사회보험 지출은 따라 느는데 일반재정(사회 보장성 기금이 아닌 예산에서 특정한 수입과 지출을 정한 특별회계를 뺀 일반 회계) 비중은 오히려 줄어든다. 그런데 보건이나 노령 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가입자들은 안정적으로 기여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고용보험의 경우 전체 취업자의 절반만 가입했다. 가입률이 비정규직은 절반이 조금 넘고 자영업자는 0.5%에 그친다. 이런 식(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없이)으로 사회보험 지출만 확장하면, 전체 사회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높아지더라도 사회보험에 가입한 상대적으로 안정적 지위와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주요한 대상이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40년 전이나 후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공적 소득이전의 소득 분위별(5분위) 비중 변화를 보면 하위 20%의 몫은 줄고 중산층의 비중은 늘었다. 공적 복지의 ‘탈빈곤 효과’ 즉 공적 복지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면 한국은 정규직에 훨씬 우호적인 안전망을 갖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비정규직에 훨씬 우호적이고 OECD 평균을 보면 양쪽에 효과가 비슷하게 나타난다. 한국은 거꾸로다.

민주화 이후 사회 보험의 확장과 가속화를 시도한 게 김대중 정부다. 복지국가의 원년이라고 얘기하지만 ‘공공부조’(생계와 주거 급여 등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제도)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회보험 중심으로 확대된다.

이런 상황은 1990년대 이후 불완전 고용을 확대하는 성장체제와 맞물리면서 노동시장에서의 격차가 복지에서도 격차로 나타나는 ‘이중 격차’ 문제를 낳게 되었다. 즉 취약계층을 선별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뒤집어서 위로부터 선별하게 되었다. 이를 ‘역진적 선별성’이라고 표현했다.”

―듣다 보니 현재 계획만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겠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에 기반을 둔(과거는 고용 지위 기반) 고용보험을 추진했다. 지금은 중단됐는데 그게 바로 사회보험료만이 아니라 일반 재정을 투입해 문제를 완화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정말 의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시도가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나 복지국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계속 추진되지 못한 게 아쉽다.”

―성장을 통한 복지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보나?

“1960년대부터 지니계수(0에서 1 사이 값을 지니며 클수록 소득 불평등도가 높음)를 연결한 표를 보면 민주화 이후 초기(90년대 초)까지는 지니계수가 (아래로) 꺾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지출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즉 공적 사회지출 없이 불평등이 낮아진 거다. 이는 결국 성장을 통한 분배 즉 낙수효과가 작동했다는 의미다. 빈곤에 이어 불평등까지 낙수효과가 나타난 시기가 바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다. 한국 복지체제의 황금기 또는 한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시기를 지나 성장을 이어가고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데도 불평등은 계속 증가한다.

시장소득(과세 전 기준) 지니계수와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의 차이가 복지가 확대된 양을 의미하는데 거의 변화 없이 같이 움직이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벌어지게 된다. 이유는 문 정부 들어서 사회보험 외에 일반재정 지출을 급격히 늘렸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 재정 투입을 늘렸다는 말인가?

“공공부조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실질적으로 폐지했다. 근로장려세제(EITC, 근로연계형 소득지원 제도)를 4조원 규모로 확대했고 실업 부조와 아동 수당 도입 등 사회보험이 아닌 일반 재정으로 충당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도입했다.”

―1990년대 수출 대기업들이 숙련노동을 자동화로 대체하는 신경영전략 노선을 채택한 배경에 한국이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1980년대 이후 3차 세계화(기준은 제각각이나 흔히 1차는 서구 제국주의 시대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 2차는 2차 세계대전 뒤 1970년대까지)에 잘 편승했다. 최대 수혜자는 재벌 대기업이었고 이들의 글로벌 기업화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건 맞다. 사실 1970~80년대 성장은 세계사적으로 그리 놀라운 성장은 아니다. 그 정도 중간소득까지의 성장은 많은 국가가 이뤄냈다. 문제는 고소득 국가로 가는 데 대부분 실패한다. 그 성장의 동력이 역설적이게도 신경영 전략을 바탕으로 한 자동화를 통한 대기업의 글로벌 기업화다.

거기서 성공의 역설이 빚어진다. 1990년대부터 수출 중 국내 부가가치 창출 비율을 보면 주요 국가와 비교해 봐도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1990년대 들어서 ‘복선 성장 방식’(수출과 내수의 병행)이 깨지면서 대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 상당수가 국내 머물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가게 된다.”

―한국 복지체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개인과 가족이 직면한 사회적 위험을 공적 복지 확대가 아닌 사적 자산 축적을 통해 대응하는 거라고 짚어줬는데 그 대표적 현상은 뭔가?

“공적복지의 확대 없이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했던 역사는 국가가 뭘 어떻게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서로가 손잡고서 사회적 연대를 통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개발국가 복지(체제)’라고 명명한 시기에 빈곤과 불평등을 벗어난 건 사람들이 시장에서 각자도생을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런 성공의 경험이 복지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이앙법(논에 볍씨를 뿌리는 게 아니라 모를 심는 것)의 전면적인 도입과도 관련 있다. 자발적인 노동력이 집중적으로 필요하게 되면서 노비를 통한 생산 체계가 해체되고 소농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 핵심은 자신과 가족 노동력을 이용해 안위를 확보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1960년대 경제개발을 하면서도 이어진다. 지독하게 일해서 자기 가족들의 안위를 지키는 소농의 특성이 각자도생의 사회와 연결된다.

2016 기준 공적연금 및 사적연금 가계 부담 구조를 보면 가계의 국민연금 부담액은 약 22조원인데 개인연금은 약 35조원이다. 기업이 분담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개인연금은 온전히 개인이 다 부담하고 민감 보험사가 개인이 낸 수익(일부)을 가져가는 구조다. 또 건강보험을 보면 평균적으로 자신이 낸 것의 거의 120%를 돌려받지만 실손 등 민간 보험은 60% 정도만 돌려받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은 신뢰하지 않고 개인연금과 실손보험 등 자신이 든 보험을 더 신뢰하지 않나.”

―사적 연금과 의료보험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현실이 문제라는 데 많은 분들이 동의하긴 할 거 같다.

“사회(복지) 정책 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농담이 있다. ‘개인연금이나 민간 실손보험 등을 다 없애고 전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집어넣으면 감기부터 암까지 전액 무료에다가 모든 노인의 노후를 기본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17세기 직파에서 이앙법으로 생산방식의 전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경험의 궤적을 살펴본 것이다.”

―더 나은 복지 국가의 건설을 위해 수출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까지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보나?

“경제와 정치, 분배와 재분배는 하나다. 19~20세기 근대화하면서 이를 세분화시켜 분리해서 사고하게 됐다. 이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2012년부터 준비해 2019년 펴낸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1~3권)에서도 그런 통합적 사고가 들어가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복지(지출)를 확대하는데 불평등이 커지는 이유가 뭔지 설명하고 싶었다. 미국과 스웨덴의 GDP 대비 사회지출 변화를 보면 2020년을 지나면서 미국이 스웨덴을 거의 따라잡는다. 그런데 불평등이나 빈곤, 사회적 문제에서 두 나라가 유사해졌나?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은 더 악화했다. 브라질, 코스타리카, 칠레, 멕시코, 아르헨티나는 소득 불평등이 매우 큰 나라다. 이 나라들의 사회지출이 OECD 평균을 넘었다. 그런데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보다도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 반대로 한국보다 불평등 지수가 낮은 네덜란드가 복지 지출을 많이 할 것 같은데 GDP 대비 17%밖에 안 한다. 아일랜드는 12%다. 하지만 사회지출을 통해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는 한국보다 훨씬 크다.

복지지출은 필요하다. 아니면 기본적 생활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복지지출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왜 서구는 동일한 복지지출을 통해서 우리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해왔다. 서구는 전쟁(세계대전)이 끝나고 제조업이 활성화하자 제조업 중심 정규직이 전면적으로 확대된다. 이때 사회보험이 보편적으로 확대됐다. 다시 말해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 확대와 맞물려서 사회보험 확대가 이뤄졌기 때문에 불평등 등 여러 사회문제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1990년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대부분의 학자는 우리도 사회보험을 보편적으로 확대하면 서구처럼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에 주목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이 90년대 후반부터 복지국가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때 한국적 맥락과 한국의 노동시장과 산업구조를 천착하지 않고서 서구의 것들을 그대로 도입했다. 그것이 지금 복지국가 한국의 모습이다. 물론 그 당시 우리 학계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한계가 지금까지 지속하면 안 된다.”

―사회복지 지출이 같더라도 불평등 개선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가 복지 인프라가 덜 갖춰진 영향도 있지 않을까.

“가능한 얘기다.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복지 지출을 통해서 지니계수를 감소시킨 비율을 갖고서 한 번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선 뒤 2022년 GDP 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14.8%에 이를 때다. 아일랜드는 그 비중이 12.8%였는데 지니계수를 40% 가까이(시장소득 지니계수를 복지 지출을 통해 가처분소득 지니계수 기준으로 약 40% 낮췄다는 뜻, 2022년 한국의 감소 효과는 약 18%) 감소시킨다. 네덜란드는 17%의 지출로 지니계수를 29~30% 낮췄다.

역진적 선별 주의 복지가 한국만의 현상인지 검증하기 위해 최근 남유럽과 한국을 비교 연구하는데 남유럽도 한국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남미는 더 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나라는 불안정 고용 상태가 많은데 (정기적으로 기여금을 내야 하는)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복지를 확대해왔다. 그러니 복지 지출이 늘어도 불평등 완화 효과는 제한적이다.”

―시장을 규율할 정치의 힘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성장 방식을 바꿔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정치적 동력을 얻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스웨덴과 독일을 비교해보자. 제조업 강국이었던 두 나라는 1960~70년대를 지나면서 신흥 공업국의 위협에 처하게 된다. 독일은 부족한 노동력을 우리나라의 간호사를 받았던 것처럼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해결했고 스웨덴은 국내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스웨덴에서 여성 노동력이 사회 서비스 영역으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1960~90년대까지 스웨덴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일자리의 90%를 지방 정부가 만들게 된다. 공공 부문에 교육, 복지, 돌봄, 보건의료 등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만든 것이다. 제조업 노동조합과 더불어 사회 서비스의 공공 부문이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다. 스웨덴은 공공부문에 양질의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부분은 놔두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성장 방식을 다양화한다. 제조업만이 아니라 성장 축이 ICT(정보통신기술) 첨단산업, 다이내믹 서비스(물류, 가획, AS 등), 사회 서비스 등으로 다변화한다.

반면 독일은 고품질의 제조업을 지속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사회 서비스의 비용을 낮춰야 했다. 고숙련 노동자를 위한 임금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려면 생활비 부담을 낮춰야 했다. 그러면서 사회 서비스에 저임금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즉 노동시장이 ‘이중 구조’화 된다. 사회보험의 커버리지에 포함되지 않은(사각지대에 놓인) 저임금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공공부조를 확대하게 된다. 즉 고품질 제조업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경제가 노동시장을 이중구조로 만들면서 기존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한 단일 보편적 보장체계가 허물어지자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로 복지 체제가 이중 구조화했다.

두 나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두 나라의 제조업과 서비스 생산성을 보면 독일은 두 지표가 양극화(제조업 우상향, 서비스는 정체 및 하향)하지만 스웨덴은 같이 움직인다.

우리나라는 독일보다 더 심각한 구조다. 그래서 (한국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줄이려면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많은 분들이 윤석열 정부가 아무런 정책 방향이 없다고 평가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박근혜, 이명박 정부도 보편주의 복지에 ‘암묵적 합의’를 했다고 본다. 그걸 벗어나거나 깨는 발언을 하기 어려웠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를 확대한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과거) 성장 방식에 적응하는 식으로 사회정책을 재편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복지 서비스는 보편적인 게 아니라 중산층 이상은 시장에서 (알아서) 구매하라는 거다. 복지는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거란다. 이는 한국의 성장 방식과 굉장히 잘 맞아떨어지는 분배 방식이다. 그걸 어떻게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상황을 보면 정치적 기반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치, 권력 자원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 출발은 복지나 사회 서비스다. 서구의 모든 경제 개혁도 복지 개혁으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사회 서비스는 어느 부분보다 저임금 일자리다. 서비스의 질도 낮고 민간에 많이 넘어가 있다. 여기서 정치적 동인이 나오기 쉽지 않을 거 같다.

“익숙한 방식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진다. 지금 말씀드린 건 전환이다. 국민이 동의할 수 있도록 (전환의) 출발점을 어디로 삼을지 고려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자녀가 공무원이 되는 것은 좋아하지만 공무원 수를 늘리는 데에는 반대하는 게 우리 국민이다. 그런 역설적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전략이 뭘까. 국민의 수요와 필요가 있는 게 사회 서비스 부문이다. 저와 같은 나이가 되면 부모를 돌보는 게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요양원에 보내는 건 현대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다고 인식된다. 그런 부분에 양질의 서비스를 추구하는 잠재적 욕구가 있다. 다만 이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전환해내느냐가 정치적인 문제다. 거기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장하게 되면 결국 권력 자원으로서 우리 사회 전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국민 다수의 머릿속에 ‘선 성장, 후 복지’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내재화되어 있는 거 같다.

“그게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라고 생각한다. 그 합의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소위 말해서 성공했다. 그걸 전환해야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그걸 할 수 있는 게 정치다. 출발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부모의 돌봄이나 자녀의 교육과 같은 사회 서비스의 문제라고 본다.

혹시 선생님(맞은 편에 앉은 김효진 보조연구원을 향해)의 성공이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시나?”

지난 19일 윤홍식 인하대 교수가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 서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는 모습. 류이근 기자

-(김효진 연구원) 그렇지 않을까.

“제가 물어본 젊은이들의 100%가 그렇게 답한다. OECD 통계로 보면 우리나라 청년의 48%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6%다. 즉 94%는 자신의 성공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소득 수준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높은 응답률이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저는 그게 우리나라를 빠르게 선진국으로 만들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그걸 역전시켜야 할 때다. 개별적인 정책을 아무리 얘기해도 의미가 없다. 1700만 명이 광장이 나가 정권을 바꿨다. 그 결과가 윤석열 정부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맞닥뜨린 불평등 등 숱한 사회적 문제를) 정권교체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성장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

-당장 4월에 총선이 있다. 그나마 선거가 복지를 확대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불평등이나 복지가 제대로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선거동원 모델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선거가 양적 복지 확대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양적 복지 확대가 우리의 성장 방식과 어긋난다면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 얘기한 것들(최근 내놓은 저 출생 및 보육 관련 정책)을 진정성 있게 할 의도는 없다고 본다. 집권 뒤 대기업 중심 수출 주도 성장에 부합하도록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복지를 개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윤석열 정부에서 실질적인 복지 정책의 양적 확대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중장기적으로는 생산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윤 교수는 사회복지학자가 무슨 경제를 얘기하냐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경제학을 공부하던 그는 세계화가 되면서 거시경제 정책 수단을 국가가 통제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성장을 꾀할 것인지 고민하다 사회복지에 주목했단다. 그래도 우리 손에 온전하게 있는 게 바로 ‘사회정책’이라고. 자신의 주장은 정부의 개입이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효과가 있다는 포스트 케인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는 학문의 분파주의를 넘어서 통섭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독자들이 경제와 정치, 역사를 넘나드는 자신의 얘기를 너무 어렵게 느낄까 봐 걱정했다.

끝으로 그는 의자는 5개밖에 없는데 앉으려는 사람은 7명인 상황을 예로 들었다. 참가자 모두 동일한 지적, 신체적 능력을 갖췄다. 1년 동안 트레이너를 붙여 열심히 훈련하고 닭가슴살과 고구마, 샐러드만 먹게 한 뒤 다시 의자에 앉는 게임을 하면 몇 명이 앉겠냐고 묻는다. 5명 그대로다. 의자에 앉지 못한 2명은 자격이 없는가? 아니다. 의자 숫자를 늘리지 않은 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스펙을 쌓아도 2명은 의자에 앉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의자를 2개 더 늘려 모두 앉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의자를 7개로 늘리는 게 바로 성장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자 복지정책에 해당한다.

윤홍식 교수는 누구?

윤홍식 교수는 학부에서 잠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연구 횡단(학제간)의 폭과 종단(통시적)의 깊이를 키워 복지학 지평을 넓히고 있다. 단독 저서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총 3권), ’이상한 성공’과 공저 ‘성공의 덫에서 벗어나기’ 등 많은 책과 논문을 펴냈다.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누구보다 깊게 한국 복지사의 궤적을 추적해왔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정리 김효진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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