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설탕이 아냐, 비 맞는다고 녹지 않는다”…외국선 군인 향한 존경, 한국선 포퓰리즘만 한가득 [필동정담]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1. 2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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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쏟아지는 폭우를 그대로 맞으며 크렘린궁 옆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2차 대전 중 군인들이 숱하게 희생됐는데 이 정도 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국가 정상이 군인들을 기리는 의식을 할 때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은 푸틴이 처음은 아니다.

조국을 지킨 군인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비를 맞으며 그들 노고에 동참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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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2일, 푸틴 대통령이 폭우를 맞으며 ‘무명용사 묘’에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2017년 6월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쏟아지는 폭우를 그대로 맞으며 크렘린궁 옆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이 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된 날이다. 지금은 우리 현충일과 비슷한 ‘추모와 애도의 날’로 지켜진다. 가늘던 빗방울은 푸틴이 헌화 할 무렵 폭우로 변했고, 옆에서 우산을 받쳐주려는 손길을 푸틴은 뿌리쳤다. 이후 그는 ‘당시 비를 맞았던 이유’에 대해 “난 설탕이 아니다, 비 좀 맞는다고 녹지 않는다”고 답했다. 2차 대전 중 군인들이 숱하게 희생됐는데 이 정도 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일부 언론은 장엄함이 담긴 말과 행동에 ‘푸틴의 위엄(dignity)’이라고 표현했다.

국가 정상이 군인들을 기리는 의식을 할 때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은 푸틴이 처음은 아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1년 5월 31일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파리 개선문에 있는 무명용사 묘를 참배할 때도 비가 왔지만 둘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2009년 11월 11일 ‘퇴역장병 기념일(Veterans’ Day)’에 워싱턴DC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비를 맞으며 참배한 바 있다.

조국을 지킨 군인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비를 맞으며 그들 노고에 동참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국민 마음을 움직여 국가 통합을 이루는데도 군인 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엔 선거 전략 중 하나로 군을 활용하기도 한다. 푸틴이 당시 맞은 장대비는 이듬해 2018년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을 향한 구애였다. 장기 집권 반대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푸틴은 군과 애국심을 활용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미국 공화당 경선 후보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도 최근 군인 남편을 부각하는 일이 많다. 그녀 남편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방위군 소령으로 작년 6월 아프리카에 파병됐다. 지난달 경선 후보 토론에서 헤일리는 “대선 출마는 남편, 그리고 함께 복무하는 남녀 동료를 위해 결심한 것”이라며 “군인들 희생의 큰 의미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각별한 미국에서 군인 남편의 해외 근무는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설맞이 군장병 격려를 위해 24일 경기 김포시 통진읍 해병2사단 1여단을 찾은 이재명(오른쪽)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대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식판에 음식을 덜고 있다 24.01.24 국회사진기자단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명절과 연말 연시에 군부대를 즐겨찾는다. 가족과 떨어져있는 군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제격이다. 최근엔 선거 시즌이 되자 득표를 위한 군부대 방문이 의심되는 일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4일 김포 해병부대를 방문해 현장에서 군인 복지 공약을 여럿 내놨다. 군인·군무원의 당직비 인상과 종합건강검진비 신설, 영내 온라인 강좌 수강 확대, 병사 휴대전화 요금 50% 할인 등 다양하다. 예비군 동원 훈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초급간부의 영외 거주 지원 확대도 제시했다. “부대 화장실에 비데를 늘려달라”는 장병의 요청에도 이 대표는 “공감한다”고 수긍했다.

집권 여당이나 정부 당국자도 아닌 야당에서 이처럼 과한 복지 공약을 남발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감당할 재정 부담도 크지만 이렇게 안락함만 추구해서 나라가 제대로 지켜질지도 걱정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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