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관리기관 12→4개로 통합” 주장한 박상욱 과기수석...출연연 통폐합 재점화되나

이종현 기자 2024. 1. 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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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 세미나서 연구관리기관 통폐합 방안 제시
출연연 NTC 체제 전환 맞물려 통폐합 가능성 커져
‘출연연 공공기관 해제’는 통폐합 전초 작업 주장도

“연구관리기관의 전문성은 어떻게 강화하느냐. 통합하면서 강화합니다.”

지난 2017년 1월 9일 박근혜 정부 후반부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택·진영 의원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함께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패널들의 토론 전에 전문가 주제 발표도 있었다.

당시 단상에 오른 인물은 박상욱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현재 서울대 교수)다. 이달 25일 윤석열 정부의 첫 과학기술수석비서관에 임명된 인물이다.

신설된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에 임명된 박상욱 서울대 교수가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소감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연합뉴스

박 수석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화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그는 영국 서섹스대에서 과학기술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기초 과학 전공자지만 과학기술계에서 익숙한 얼굴은 아니다. 본인 스스로는 “행정학과에서 월급받는 과학기술인”이라고 말하지만, 제도와 행정조직을 연구하는 행정학자에 가깝다. 7년 전 세미나에서 박 수석이 발표한 내용 역시 연구관리기관의 통폐합이 주제였다.

이날 세미나 영상을 보면 박 수석은 12개에 이르는 중앙부처 산하의 연구관리기관을 4개로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수석은 “분절화돼 있으면 정보가 다 막힌다”며 “어느 부처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통합해야 한다”고 말하며 통폐합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 수석이 제안한 연구관리기관 정비방안에 따르면 국가과학기술혁신위원회를 만들고 그 산하에 4개의 연구관리기관과 정책 연구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혁신전략기획원을 두는 것이다. 국가과학기술혁신위원회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 후반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비슷하다고 박 수석은 설명했다. 과학기술혁신전략기획원은 지금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을 합친 조직이다.

국가과학기술혁신위원회 산하에는 4개의 연구관리기관만 남긴다. 한국연구재단과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각각 기초연구를 담당한다. IBS는 연구단 체제를 유지하되 기획과 펀딩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가장 큰 변화를 가진다. 박 수석은 KIST를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본딴 ‘KARPA(카르파)’로 바꾸고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여러 연구관리기관을 통합해 도전적 혁신연구를 전담하는 기구로 재편하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EEF’는 에너지환경기획평가원으로 에너지, 환경, 국토, 해양 분야의 연구관리기관이다.

그래픽=정서희

박 수석의 이같은 제안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통폐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출연연 통폐합 없이 연구관리기관만 통합하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박 수석이 발표를 하며 제시한 정비방안 발표 자료의 한쪽에도 혁신통합부처 산하에 출연연 통합법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통폐합론자’인 박 수석의 등장에 과학기술계는 출연연 통폐합 논의가 윤석열 정부 후반부에 급부상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출연연을 국가기술연구센터(NTC) 체제로 중장기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NTC는 12개 국가전략기술처럼 국가적 임무 달성이 필요한 분야의 출연연 연구조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출연연의 벽을 허물고 예산과 인력, 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식인데, 정부는 앞으로 NTC를 위주로 출연금과 인건비, 인력 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세워뒀다. 과학기술계는 NTC 체제로의 전환이 사실상 출연연 통폐합이라고 보고 있다.

신명호 과기노조 정책위원장은 최근 과기계에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들이 많이 등용됐는데 당시 주요 정책이 출연연 구조조정과 통폐합이었다”며 “MB 정부 때인 2010년 교과부에서 국가연구개발원이라는 이름으로 통폐합을 추진했던 방안이 지금의 NTC와 같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연연 원장도 비슷한 입장을 냈다. 그는 “NTC가 전체 출연연 연구조직의 80%까지 확장될 것”이라며 “올해 시작되는 글로벌TOP(톱)전략연구단 사업을 시작으로 NTC가 출연연의 연구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작년 12월 작성한 ‘글로벌TOP 전략연구단 운영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자료’를 보면 “기관 간 연구조직 통폐합·기능조정 등 과감한 혁신을 추진한다”는 말이 나온다.

과학계 일각에선 최근 불거진 출연연 공공기관 지정 해제도 통폐합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31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는 과학기술계의 오랜 숙원이지만, 과기노조는 타이밍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과기노조는 “출연연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법률적 구속을 받게 돼있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에서 제외시켜 과기부 부처 차원의 지침으로 출연연을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마음대로 통폐합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며 “공공기관 해제가 아니라 출연연을 포함한 연구개발목적기관을 위한 별도의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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