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슬퍼할까 돌까지 버텨준 아이…아름다운 이별 결심했죠” [숭고한 나눔 장기기증]

권승현 기자 2024. 1. 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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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고한 나눔 장기기증 - (上) 살리고 떠난 사람들
2020년 불의의 사고로 심정지
기적 기다리며 눈물만 흘리다
병원서 아픈 아이들 보고 결정
심장·신장 등 4개의 장기 기증
병원서 돌잔치 한 정민이… 불의의 사고로 뇌사 추정 상태였던 고 서정민 군이 지난 2020년 9월 16일 분당차병원 중환자실에서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한 모습. 이나라 씨 제공

“처음엔 ‘우리 아이 장기 기증할게요’라는 말을 차마 못 하겠는 거예요. 아니 왜, 뉴스를 보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잖아요. 보호자 대기실에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는데, 병원에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게 보이는 거예요.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죽음학의 효시로 불리는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을 이 다섯 단계로 정리했다. 이나라(32) 씨도 이 다섯 단계의 과정을 너무도 아프게 겪어낸 뒤 2020년 10월 생후 1년을 갓 넘긴 소중한 아들 고 서정민 군의 장기 기증을 택했다. 지난 16일 경기 하남시 학암동 자택에서 만난 이 씨의 얼굴엔 온전히 털어낼 수 없는 슬픔과 함께 “제 선택엔 후회 한 점 없다”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2019년 9월 16일생인 정민 군은 코로나19 유행 직전에 태어나 바깥 활동을 자주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정민 군은 창밖을 보며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씨는 아들이 돌을 맞는 2020년 여름휴가엔 꼭 가족 여행을 가겠노라며 미리 계획을 세워뒀던 참이었다. 계획은 무너졌다. 그해 7월 정민 군은 불의의 사고로 분당차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땐 이미 심정지가 온 상태였다. 심폐소생술로 깨어나긴 했지만, 뇌파는 잡히지 않았다.

사실상 뇌사 추정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는 정민 군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 씨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씨는 “자고 일어나면 꿈이길 바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매일 보호자 대기실에서 버텼다”며 그 시기를 떠올렸다. 기적이 일어나길 빌고 빌던 간절함은 중환자실 2개월 차에 접어들자 분노로 번졌다. 이 씨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마음에 화가 났다”고 했다. 그때 이 씨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우리 아이는 존재 자체로 ‘행복’인데, 엄마가 ‘불행’으로 바꾸고 있다. 슬픔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던 남편의 ‘고통스러운’ 조언 때문이었다. 그제야 보호자 대기실 벽에 붙어 있던 장기 기증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장기 기증을 위한 상담을 받았다. 이 씨의 마음은 하루에 12번도 더 바뀌었다. 이 씨는 “장기를 기증하면 아이의 일부는 어딘가에서 숨 쉴 테지만, 당장 아이가 수술을 받는 게 싫었다”며 “어떻게 부모가 또다시 아이를 아프게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민 군은 2020년 9월 16일 병상에서 돌을 맞이했다. 이 씨는 “평소처럼 면회를 갔는데 의료진들이 정민이 침상 위에 선물이며 케이크까지 조그만 돌잔치를 해주셨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여한이 없어졌다. 정민이가 갑작스레 떠나면 엄마가 너무 슬퍼할까 봐 3개월 동안 버텨준 거란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 씨는 그날 오후 병원 측에 장기 기증 의사를 확고히 밝혔다.

정민 군의 심장, 폐, 간, 신장은 3명의 미성년자 아이들에게 이식됐다고 한다. 병원 측에선 수술 시간 동안 정민 군 가족들에게 1인실을 제공했다. 장기 기증 코디네이터는 수술 시간 내내 이 씨 가족과 함께했다. 이 씨는 “남편이 사망신고 등 행정 처리를 하느라 수술실 앞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장기 기증 코디네이터 선생님이 와서 담요를 덮어주고 정민이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어줬다”며 그 따뜻함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기 기증 코디네이터는 이식 수술을 마친 뒤에도 약 1년간 꾸준히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했다.

어머니 이나라 씨가 지난 16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생후 13개월에 장기 기증을 하고 떠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백동현 기자

이 씨는 말했다. “(가족의 연명치료 등으로) 병원에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잘 이별하는 방법’을 꼭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배가 항구를 떠나 점점 안 보이게 되는 과정을 반대 방향에서 지켜보면, 배가 점점 보이게 되는 거잖아요. 죽음은 그쪽에선 또 다른 시작이겠죠. 좋은 일을 하고 가면 그쪽에선 더 평온한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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