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미끄럼틀 아파트 킹받네"… 문화재 보호 vs 도시개발
[편집자주]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문화재 규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오 시장은 지난해 6월 일본 도쿄에서 일왕의 궁전인 황거 일대에 자리잡은 고층빌딩을 보며 "(서울시는) 문화재 옆에 높은 건물을 짓는데 거부감이 있지만 이곳처럼 높은 건축물이 올라갈 수 있다"며 "무엇이 문화재를 돋보이게 하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엔 뉴욕에서 그랜드센트럴 옆에 93층 높이로 지어진 원 밴더필드 빌딩을 보고 "우리나라 같으면 100년이 넘은 그랜드센트럴 자체가 문화재이기 때문에 옆에 건물이 못 들어간다"며 "아무 것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좌절스럽게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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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각규제는 가장 핵심적인 문화재 규제 중 하나로, 문화재 경계 지점에서 앙각(올려다본 각) 27도 선을 그어 선 아래로만 건물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서울시의 경우 문화재로부터 100m까지가 규제지역에 포함된다. 문화재의 조망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인데 재개발을 어렵게 해 문화재 인근 지역 주민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종로구는 문화재 규제 때문에 주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말한다. 종로구 관계자는 "앙각규제로 20층짜리 건물을 9층짜리로 지어야 한다"며 "높이 제한으로 건물 가치가 떨어지니 시행사 투자도 소극적이고 개발도 지연된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얼마전 열린 세운지구 재개발 관련 공청회에선 높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속출했다. 한 종로구 주민은 "다른 지역은 고도를 높게 해주면서 (세운) 2구역은 특별히 종묘가 있고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높이 제한이 아주 낮다"며 "일본의 경우 왕릉 옆에서 200m이상 고층 건물을 짓는 등 세계적으로 높이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인데 종로 지역에서만 심한 규제를 하고 있어 주민들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민은 "서울시는 종로변 경관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세운재정비 촉진 지구가 글로벌 도시 중심 업무 지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재정비 촉진 계획을 수립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종로구 입장에선 과도한 문화재 규제가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닐 터. 종로구 관계자는 개발 규제지역 선정에도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묘의 경우 문화재 규제로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인근 동네가 매우 낙후됐다"며 "그런데 그 주변에 들어선 지상 33층짜리 롯데캐슬 아파트는 동묘 100m 밖에 있다며 건설을 허가해줬다"고 밝혔다.
이어 "도심이 낙후되는 걸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인데 좀 더 유동적으로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라며 "구 자체적으로 문화재를 보존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재개발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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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시작된 소송은 지난 11일 대법원이 건설사 측의 승소를 확정하며 3년여 만에 끝났다. 당시 재판부는 "건설사들이 지은 아파트 상단을 철거해도 바깥쪽 고층 아파트로 여전히 산이 가려지므로 조망이 회복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미 골조가 완성됐고 공사 중단으로 건설사들과 수분양자들이 입을 재산상 손해는 막대하지만 그에 비해 건물을 일부라도 철거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 않거나 미미하다"고 판시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현상변경 승인을 받은 공사에 별다른 법률적 근거 없이 중단을 요청해선 안 된다"며 "이는 법률유보의 원칙을 위반하는 일이다. 문화재청은 재량범위를 넘어 규제 밖 지역을 건드려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세운지구 개발도 마찬가지"라며 "종묘에서 100m 이상 떨어진 만큼 원칙적으로 앙각규제의 적용을 받아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보니 별도로 높이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규제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해석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앙각규제가 본래 목적에 반하는 방향으로 적용됐다"며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 교수는 "(파리에 있는) 에펠탑과 개선문의 경우 밖에서 문화재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건물 높이를 관리하지만 한국은 문화재에서 밖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규제한다"며 "조망권 관리를 거꾸로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규제는 각종 개발행위로부터 국가유산의 역사적·예술적·학문적·경관적 가치와 그 주변 환경 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세운지구는 종묘 주변에 있어 재정비촉진계획 등이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이에 서울시와 지속적으로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유산 보존을 위한 공익과 주민재산권 보호를 위한 사익 간 조화의 필요성엔 공감한다"며 "종로지역뿐 아니라 국가지정유산 주변 보존지역의 규제범위와 강도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고 있다. 유산별 특성과 주변 여건을 반영해 규제 내용에 대한 적정성 등을 검토한 후 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재혁 기자 choijaehye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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