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메모리-파운드리 시너지 강점 살려야 승기”
메모리와 파운드리 융합 ‘삼성 만의 강점’
차세대 먹거리 CXL-PIM 승기 잡아야
초격차 투자 실행, 이재용 회장 재판 변수
“삼성전자가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하는 것은, 적어도 AI반도체에 대해서는 ‘갑’의 위치를 다 잊어버리고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장단점을 냉철하게 정리해 쳐낼 것은 쳐내야 한다.”(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삼성전자가 지난해 인텔에 연간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내줬다. 이때문에 10년 이상 ‘메모리 1위’만 하던 삼성전자 안팎에서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근본적인 변화에 착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음달 5일 이재용 회장의 1심 선고 공판 결과에 따라, 운신의 폭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세계 1등 안주하다 위기...‘을’ 위치서 다시 시작해야”=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삼성전자 반도체를 향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권 교수는 “메모리도, AI반도체도 권불십년이다. 누가 승자가 돼도 이상하지 않은 시장이고, 10년 후에 지금 유명 회사들이 일본 반도체 회사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HBM분야에서 SK하이닉스가 앞서게 된 것을 D램에서 삼성 대비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삼성이 잘 안 하는 영역에 대한 탐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부터 불확실하던 HBM 시장을 겨냥해 기존 물량을 희생해 가며 HBM 개발에 매진했고, 지난해 시작된 AI 바람이 엔비디아 맞춤형 최적화와 맞물리며 수혜를 입었다는 분석이다.
권 교수는 삼성전자가 HBM영역에서 미국 마이크론에 우위를 빼앗길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그는 “3위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의 세컨드 벤더(보조 공급사) 자리를 물려받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그 이유로 대만에 있는 팹(반도체 생산시설)의 공정 기술을 꼽았다. 이어 “엔비디아도 미국 기업이므로 마이크론과 거래하게 되면 미국 정부로부터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품질만괜찮다면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마이크론 제품을 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삼성전자가 AI반도체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패키징에 대한 투자는 물론 필요하다면 더 많은 업체를 인수하고, ‘메모리 파운드리’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동탄 선언’이라도 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인텔에 뺏긴 매출 1위...“올해 달라진 모습 보여줘야” 압박감=인텔은 25일(현지시간) 지난해 4분기 매출이 154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작년 연간 매출은 542억달러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작년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은 399억 달러로, 인텔이 2년 만에 삼성을 제치고 다시 반도체 매출 1위에 올라섰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황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삼성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위기 의식이 팽배해지고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며 “올해 HBM을 포함한 차세대 제품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서인 DS부문 임원들은 최근 긴급임원회의를 열고 올해 연봉동결을 결정했다. 윗급부터 솔선수범해 ‘정신 재무장’을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올해 삼성전자가 꼭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격적으로 ‘AI 반도체 붐’이 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만이 가진 차별화 포인트를 내세워 앞서 나가야 한다는 조언이다.
권 교수는 “삼성전자의 가장 큰 장점은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모바일이든, 랩톱이든, 가전이든, 전장이든, 애플리케이션 다변화에 대한 다양한 소비자 요구 조건을 테스트할 수 있는 플랫폼 자체가 많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미주총괄(DSA) 부사장은 ‘CES2024’에서 기자들과 만나 “고성능 컴퓨팅 생성형 AI시대에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와 메모리의 융합을 통해 큰 강자가 되지 않을까 자신하고 있다”며 “올해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시너지의 파급력은 향후 삼성전자만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 드러날 것”이라며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융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곳은 삼성전자밖에 없다고 여러 기업 CEO들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PIM·CXL은 우리가 선도”...‘초격차’ 투자 위한 JY 재판도 초관심=‘제 2의 HBM’ 시장으로 꼽히는 차세대 먹거리에서 승기를 잡는 것도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이 반도체 ‘초격차’를 가를 승부처로 여겨진다. CXL은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하나로 통합해 ‘확장성’을 무기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서버 구조를 바꾸지 않고, HBM보다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메모리 용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지금까지는 CXL 2.0 규격에 맞는 CPU가 없었는데 올해 인텔이 이를 지원하는 CPU 5세대 ‘제온’ 프로세서를 선보일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세계최초 CXL 기반 D램 기술 개발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메모리 내에서 자체적으로 데이터 연산 기능을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도 주목받고 있다. 전력 효율성을 높이는 데 탁월해 온디바이스 AI에 활발히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HBM-PIM, LPDDR(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PIM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다음달 5일 열리는 이재용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1심 선고도 변수다. 이 회장은 햇수로만 9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최소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에서는 총수의 신속한 결단과 판단이 중요하다. 선고 결과에 따라 운신의 폭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로드맵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지 기자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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