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15구 수습…강북구, 오는 30일 발굴조사 최종보고회

김보미 기자 2024. 1. 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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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17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338 번지 현장에서 수습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미수습 유해 모습. 강북구 제공

강북구가 서울 우이동 338번지 일대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미수습 유해 15구를 수습하고 44점의 유류품을 발견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지역에 남아있던 유해들은 지난 2017년 11월 인수천의 노후화된 옹벽을 정비하는 공사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민간인 유해로 판단해 유해·유품 등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로 이관했다. 이후 강북구가 추가 발굴을 위해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거쳐 2018년 1월 발굴 현장을 보존 조치(복토)했던 곳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유해 발굴 자치단체 보조사업으로 이뤄진 추가 발굴에는 삼한문화재연구원과 신석원 동아대 석당학술원 특별연구원이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개토제를 치른 후 발굴이 이뤄졌고, 11~12월 건식세척과 감식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성인 유해 2구를 제외한 13구 유해의 사망 당시 나이가 확인됐다. 유아(1~5세) 3구, 소아(6~11세) 2구, 성년 전반(20~29세) 4구, 성년 후반(30~39세) 3구, 숙년(40~59세) 1구 등이다.

성별을 판별할 수 없는 어린이 유해 5구를 제외한 나머지 10구에 대해 남성 6구, 여성 4구로 확인됐다. 이밖에 총탄류와 단추류, 신발류를 비롯해 틀니, 비녀, 라이터 등도 함께 수습됐다.

우이동 일대에서 민간인이 학살됐다는 공식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10월쯤 학살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9·28 서울 수복 후 부역 혐의자들을 색출해 학살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북구의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용역을 맡은 삼한문화재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수습된 유해들에서 뼈에 직접적인 총상흔이 발견된 유해는 없었지만 조사 구역 내 다수의 탄약류(M1·카빈소총 탄피와 탄두 등)가 출토된 점, 유해 세척과정에서 흙을 털어내는 중 뼈에 접해 탄두가 확인된 점 등에서 희생자들은 총격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강북구는 오는 30일 강북구청에서 최종보고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지문위원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또 유족회와의 협의를 거쳐 발굴한 유해를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과거사 정리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7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희생자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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