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상한 화해, 이상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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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영하 10도 아래로 얼어붙은 지난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눈보라 속에 우산 없이 서 있던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손짓 하나하나가 '극적 화해'의 배경이 됐다.
총선 70여일 전 벌어진 '이상한 화해'와 '이상한 싸움'에 한국정치의 단상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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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영하 10도 아래로 얼어붙은 지난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한 위원장이 90도로 허리를 숙이자, 윤 대통령은 어깨를 다독이며 손을 내밀었다. 여권 1인자와 2인자의 짧은 악수에 ‘갈등 봉합’이란 보도가 쏟아졌다.
대통령이 입고 온 검정 점퍼에도 의미가 실렸다. 7년 전 한 위원장과 특별검사팀에서 함께 일할 때 즐겨 입던 옷이었다. 윤 대통령이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려 입고왔다는 말이 나왔다. 눈보라 속에 우산 없이 서 있던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손짓 하나하나가 ‘극적 화해’의 배경이 됐다.
이날은 서천특화시장에서 큰 불이 나 점포 292개 중 227개가 전소된 다음 날이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명절용 건어물 등을 쌓아 놓았던 수산물동과 식당동, 일반동 내 점포가 모조리 타버렸다. 설 대목을 앞두고 날벼락을 맞은 상인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이들이 한파 속 잿더미와 싸운 절망의 현장에서, 대통령 아내의 ‘명품 백’ 문제로 싸운 두 사람의 악수만 영화처럼 조명됐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당 비대위원장에 사퇴를 요구하고, 여당 수장은 공개 거부하며 초유의 충돌을 빚은 지 이틀 만이다. 1인자와 2인자의 ‘만남’에 모든 시선이 집중된 날, 여의도와 용산이 선택한 장소는 불에 탄 시장이었다. ‘화재 현장’이 순식간에 ‘화해 현장’이 됐다. 싸움도 화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상한 싸움’은 야당에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이수진 의원이 경기 성남중원에 출마하겠다며 전날 기자회견을 했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노조 활동을 했던 그는 지난 총선 때 민주당 노동 분야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1년 전부터 서대문갑을 점 찍고 선거를 준비해왔다. 이달 11일엔 출마 회견도 했다.
그랬던 이 의원의 지역구가 열흘 만에 바뀌었다. 서대문갑이 전락선거구로 지정, 공천을 받기 어렵게 되자 돌연 목표 지역을 옮겼다. 서대문갑 불출마 선언은 21일, 성남중원 출마 회견은 다음 날인 22일이었다. 이 의원은 성남중원에 전혀 연고가 없다. 출마 사유는 “배신자 윤영찬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간 성남중원에선 친명(親이재명)계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업고 출마를 준비해왔다. 비명계 윤 의원 축출을 명분으로 한 자객 출마였다. 그런데 현 부원장이 성희롱 논란으로 출마를 포기했다. 그때까지 ‘비명계 3인방’과 탈당이 기정사실화 됐던 윤 의원은 갑자기 “당에 남겠다”며 탈당 회견에서 빠졌다.
윤 의원이 요구했던 당대표 사퇴도, 통합 비상대책위원회 구성도 수용되지 않은 상황에서다. 갑자기 당과 화해라도 한 걸까. 잔류 명분을 잃은 윤 의원에 비판이 쏟아졌다. 더 이상 공천을 받기 어려울 거란 말도 나왔다. 혼란을 틈타 연고도 없는 이 의원이 ‘배신자 타도’를 명분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새로 시작된 이상한 싸움이다.
정치인의 투쟁은 명분이 전부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왜 맞붙었는지 납득이 가능해야 한다. 명품 백으로 깨진 브로맨스의 극적 봉합을 알리기에 화재 현장은 지극히 잔인하다. 정권 1·2인자가 잿더미로 변한 생업 앞에서 연출한 화해에 어떤 명분이 있나. 원칙도 염치도 없는 초라한 투쟁 중인 사람이 비단 윤영찬·현근택·이수진만일까. 총선 70여일 전 벌어진 ‘이상한 화해’와 ‘이상한 싸움’에 한국정치의 단상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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