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대통령께서 저를 물러나라고 하십니까?”…한동훈의 선제 공세
‘둘도 없는 사이’의 부메랑…‘사라진 완충지대’ 중재자 없는 1대1 소통의 역설
둘 다 먼저 안 굽히는 ‘특유의 캐릭터’도 영향…화약고 ‘김 여사 디올백’ 리스크 여전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왜요, 대통령께서 저를 물러나라고 하십니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 초유의 정면충돌 서막을 알린 한마디다. 발언의 주인공은 한 위원장. 한 위원장은 1월21일 이관섭 대통령실비서실장,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먼저 포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실장이나 윤 원내대표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한 위원장이 선제적으로 사퇴 관련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여권의 실세 3인은 일요일이었던 이날 서울의 한 식당에서 오찬 모임을 가졌다. 회동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한 위원장의 거취를 논의하기 위해 갑자기 잡힌 게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 의제와 민생 정책 등을 조율하기 위해 통상 열리던 고위 당정회의 차원에서 그 전주에 미리 잡혔던 회동이었다.
"특수부 검사가 하듯 언론 통해 '강대강' 정면충돌"
하지만 한 위원장의 선제적 한마디로 모임의 성격은 순식간에 뒤바뀌게 됐다. 물론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이 실장과 윤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받거나 확인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당초 예상됐던 메시지의 전달자와 피전달자의 발언 선후가 바뀌면서 3인 회동의 분위기는 냉랭했다는 것이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이후 여권 상황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1월21일 오후 늦게 '3인 회동에서 한 위원장이 사퇴 요구를 받았다'는 내용이 이관섭 실장의 실명과 함께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양측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졌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윤 대통령은 이날 밤 이 실장을 포함한 대통령실 핵심 참모진을 한남동 관저로 불러모아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다음 날인 22일 한 위원장은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언론에 자신이 사퇴 요구를 받은 점과 사퇴 요구의 주체가 대통령실임을 확인했다. 이에 갈등의 긴장도가 최고조로 올라갔고, 동시에 여권 내에서는 "이러다 공멸한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졌다. 23일 분위기는 극적으로 반전됐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충남 서천 화재 현장을 함께 찾았고, 같은 열차로 귀경함으로써 두 사람의 극한 갈등이 최악의 경로로 가는 일은 일단 피한 모양새가 됐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초현실적 상황"(박성민 컨설턴트), "상상도 못한 일"(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 등 어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최근 며칠간 수면 위로 드러난 상황만으로도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20년 넘게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으로서 벌써부터 권력 쟁탈전을 벌이는 걸까. 갈등의 본질은 '사천(私薦)' 논란일까, '김건희 여사 리스크'일까. 과연 초유의 충돌 상황은 이렇게 정리되는 걸까, 아니면 4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반복될까.
지금 정국을 제대로 읽는 방법은 '윤석열-한동훈 대충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의 승패는 물론 그 이후의 정치 판도를 뒤흔들고 결정지을 만한 중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이번 사태가 벌어진 전후 상황과 사정, 그 막전막후를 핵심 키워드와 함께 재구성한 이유다.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한동훈 대충돌'을 읽는 3대 열쇳말은 ①'둘도 없는 사이'의 역설 ②'윤석열-한동훈의 독특한 캐릭터' ③'미래 권력과 현재 권력의 예고된 충돌' 등이다.
먼저 '둘도 없는 사이'의 역설은 정치에서 너무도 중요한 '완충지대'를 사라지게 했다는 분석이다. 서로는 너무 편하고 잘 알아 직접 소통을 한다. 이는 뒤집어 보면 그래서 중재자 역할을 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서로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어 소위 '정치적 수'를 써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도 이 열쇳말에 녹아있다. 아울러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윤 대통령), "누구에게도 맹종하지 않는다"(한 위원장)는 각각의 발언에서 보듯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특수부 검사' 특유의 캐릭터도 이번 충돌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있다. 여기에 전국 순회 등으로 차기 대권주자를 연상시키며 '한동훈 효과'를 넘어 '한동훈 신드롬'이 불자 현재 권력인 윤 대통령의 권력누수 심리가 자극되지 않았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1월21일 3인 회동에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기 전에 갈등의 전조는 있었다. 서사의 구조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구성되듯 '윤석열-한동훈 대충돌'의 결정적 발단은 17일 불거졌다. 한동훈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깜짝 발표'하며 사실상 공천 방침을 밝히고, 같은 날 김 비대위원이 유튜브에 출연해 명품가방 수수 논란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면서 용산의 기류는 불편함을 넘어 "임계점을 넘었다"로 급격히 냉각됐다. 김 비대위원은 여당 지도부에서는 처음 공개적으로 '김건희 리스크'를 언급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조치를 강조한 인물이다. 한 위원장이 측근인 김 비대위원의 입을 빌려 자신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는 용산의 '의구심'이 '확신'으로 굳어진 순간이다.
한동훈 측의 이관섭 실명 공개에 대통령실 당혹·격앙
사태는 위기 양상으로 빠르게 악화됐다. 1월18일 한 위원장의 "국민이 걱정하실 부분이 있었다"는 발언이 나왔다. 긴장감이 고조되자 윤재옥 원내대표가 중재자로 나섰다. 19일 한 위원장과 윤 원내대표는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윤 원내대표는 '부드러운 대처'를 주문했지만, 회동 이후에도 한 위원장은 언론에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그러자 용산의 대응이 강경하게 전환됐다. 20일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수행실장을 한 친윤(親윤석열)계 이용 의원이 국민의힘 의원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 "사과하면 민주당은 들개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며 김 여사가 명품가방 문제로 사과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을 공유했다.
첫 번째 '당근(중재)과 채찍(경고)'이 효과를 못 내자 1월21일 이관섭 비서실장이 등판한다. 당 차원에선 설득되지 않아 대통령실이 직접 나선 것이다. 그렇게 3인 회동이 이뤄졌지만, 위기 수습은커녕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게 된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이 실장은 당의 김 여사 문제 대처에 대한 아쉬움, 윤 대통령의 총선 공천에 대한 사천 우려 등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한 위원장이 자신을 향한 사퇴 문제를 언급하면서 양측의 갈등 수위는 한층 더 가팔라졌다. 이 실장은 이 자리에서 '사퇴는 윤심(尹心)'임을 부인하지 않았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경율 비대위원의 조치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공천을 이끄는 것은 나"라고 했던 한 위원장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처럼 3인 회동에선 날 선 발언 속에 충돌이 벌어졌고, 두 번째 정치적 해결도 무산된다.
'공멸 위기' 극적 봉합 불구, 제거되지 않은 뇌관 '김건희 리스크'
1월21일 오후 늦게부터 일부 언론에 3인 회동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한 위원장 사퇴 요구가 있었다는 보도에 이관섭 실장의 실명이 공개되면서 대통령실에서는 당혹감 속에서도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한 위원장 측의 이른바 '언론 플레이'와 사퇴 요구 당사자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일 경우 당무 개입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 주목했지만, 정작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지점은 한 위원장이 3인 회동에 앞서 이미 용산의 속내와 움직임을 파악하고 선수를 친 데 있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이 용산의 대응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권 내에 '친한(親한동훈)계 세력'이 그만큼 강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양측의 강대강 대치는 1월22일에도 계속됐다. 언론을 통해 각자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식으로 충돌했다. 한 위원장은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라고 못 박았다. 김경율 비대위원도 김 여사 문제에 대한 태도에 "변한 것은 없다"고 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에서는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등 윤심을 언론을 통해 그대로 전했다. 이런 강대강 충돌 속에 "이대로라면 공멸"이라는 우려가 여권 전체에 퍼졌고, 정치적 퇴로가 절실하다는 의견이 양측 모두에 여권 원로를 중심으로 전달됐다. 사태의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한 여권 관계자는 "정치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특수부 검사가 하듯 언론에 자신의 입장을 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키웠다"며 "서초동(법조)과 여의도(정치)는 문법이 아예 다른데, 아직 둘 다 서초동 문법을 못 벗어났다"고 했다.
쉽게 열릴 것 같지 않던 퇴로는 바로 다음 날인 1월23일 열린다. 22일 밤 충남 서천시장에 화재가 나자 한 위원장은 23일 당초 일정을 바꿔 현장 방문을 하기로 했고,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런 사실을 대통령실에 전한다. 이관섭 실장이 윤 대통령에게 한 위원장과 함께 시장 방문을 하자는 건의를 했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함께 서천시장의 화재 현장을 점검하는 사진은 24일 주요 언론사의 1면에 모두 실렸다. 그만큼 충돌 사태는 심각했고, 정국은 중대 기로였고, 봉합 과정도 극적이었다.
정면충돌 이틀 만에 양쪽이 함께 화재 현장을 찾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여권 내홍은 일단 봉합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갈등의 핵심 원인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김경율 비대위원 '사천 논란' 등에 대한 이견 조율 없이 수습 수순으로 돌입해, 양측의 갈등은 언제든 다시 비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공천 작업이 본격화되면 양측의 힘겨루기는 재차 발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사람들'과 '한 위원장의 사람들' 사이에 누굴 공천할 것인가를 두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양측이 '김건희 리스크'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전망이 많다. '둘도 없는 사이'의 역설은 중재자가 없어 완충지대가 사라진다는 의미만 갖고 있지 않다. 여권에서는 한 위원장만큼 김 여사의 리스크를 속속들이 아는 인물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윤·한 두 사람 모두 특수부 검사 특유의 '마이웨이' 기질을 강하게 갖고 있다. 먼저 굽히는 캐릭터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 한순간에 별의 순간을 잡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한국 정치사에서 미래 권력과 현재 권력은 결코 한집에서 동거하지 못했다. 그 예고된 충돌의 주전장은 '김건희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현재 권력' 윤석열과 '미래 권력' 한동훈은 김건희 디올백이라는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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