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찬성하면 손 드세요” 공개 거수로 직원 해고한 EY한영에…법원 제동
1심 법원서 해임 결의 취소 판단, 쌍방 항소
해묵은 이슈인 회계 감사 독립성…추가 갈등 가능성 상존
EY한영이 내부 문제를 제기한 회계사 A씨를 해임했는데, 법원이 이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A씨의 면직은 사원총회에서 공개 거수로 결정됐다. 재판부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결정이 공개되는 거수 방식의 표결은 투표자들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방해하고 왜곡된 투표 결과를 도출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26일 회계업계와 법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는 A씨가 해임된 과정이 현저히 불공정했다며 EY한영의 A씨 해임 결의를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사건의 시작은 2022년이다. 그해 6월 8일 A씨는 비회계사인 B씨가 금융사업본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건 공인회계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회사의 준법관리인 겸 리스크관리본부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공인회계사법에 따르면 공인회계사 또는 회계법인이 아닌 사람은 다른 법률에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회계사의 업무를 할 수 없다.
같은 날 A씨는 80여명의 EY한영 직원들에게 ‘사내 중대한 위법사항에 대한 이슈를 제기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에 EY한영은 같은 달 29일 사원총회를 열고 신의성실 위반을 들어 A씨를 해임했다.
이에 A씨는 EY한영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1심 법원은 A씨의 해임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EY한영이 사원총회를 공고하면서 A씨의 해임과 관련한 의결사항을 ‘사원 겸 이사 해임의 건’이라고만 기재한 것을 지적했다. 해임의 대상과 해임의 사유를 적지 않아 사원들이 해당 사안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이 탓에 사원들이 공고를 통해 결의사항에 대한 찬반을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토론 기회가 없었다고 봤다.
법원은 “형식적인 공고 절차로 인해 사전에 사원들의 의사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로 회의가 진행됐음에도 회의 당일 A씨에게 3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고 꼬집었다. A씨는 해임 찬반 투표를 무기명 방식으로 결의할 것을 회사에 요청했으나, EY한영은 참석한 사원들에게 결의 방식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고 거수 방식의 표결을 진행했다.
다른 참가자의 표결 내용이 공개되는 거수 방식 표결에 대해 재판부는 회의 주최 측과 다른 사람의 의사에 영향을 받기 쉬운 상태라고 봤다. 법원은 “(이는)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방해하고 왜곡된 투표 결과를 도출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의 해임 건의 결의를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법원은 해임 건이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A씨의 또 다른 주장에 대해선 기각했다. 거수 표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총회 의장은 사원들의 표결 후 집계하는 과정에서 성원하고 맞지 않아 2차 거수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A씨는 회사가 첫 거수에서 부결된 안건을 다시 의결해 가결시켰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같은 회사의 행위가 손으로 세는 방식의 부정확성 등으로 집계 결과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기존의 표결 결과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A씨와 EY한영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회계 부문의 독립성은 언스트앤드영(EY) 차원에서도 제기됐던 문제다. EY는 EY한영의 글로벌 본사다. 2022년 9월 글로벌 4대 회계법인 EY는 이해 충돌 요소를 없애기 위해 회계 감사와 컨설팅 부문의 분할을 추진했다. EY의 흐름에 맞춰 EY한영 역시 분사 흐름에 맞춰 파트너를 대상으로 분리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좋은 인력을 끌어가기 위한 감사와 컨설팅 간 경쟁이 벌어지는 등 내홍을 겪었다.
하지만 미국 법인들이 반발하면서 7개월 만에 분리 작업을 중단하면서 모든 작업이 무위가 됐다. EY가 사업부를 나누겠다는 방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면서 EY한영의 감사·컨설팅 분리 이슈는 꺼지지 않은 불씨다. 회사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EY한영) 직원 입장에선 나가려고 짐을 다 쌌는데 다시 푼 것과 똑같은 것”이라며 “지분과 보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어느 정도 준비를 했는데 다 틀어져서 어수선했고, 그로 인한 여파가 아직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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