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증시 가뜩이나 답답한데… 잇단 지정학 리스크 ‘난감하네’
새해 들어 한국 증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내외에서 지정학 리스크 이슈가 연거푸 터져 시장 참여자들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홍해 사태와 같은 지정학 리스크는 발생 시점을 예측하기 힘들 뿐 아니라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어 외풍에 취약한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전문가들은 충돌 지역의 불가항력 상태가 장기간 지속하면 간신히 잡혀가던 물가가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가 재상승은 주식시장에 하방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25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03%(0.65포인트) 상승한 2470.34로 장을 마쳤다. 결과는 빨간색(상승) 마감이지만 과정은 좋지 않았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종일 부진하다가 막판에 간신히 강보합권 진입에 성공했다. 최근 흔들리는 투자 심리를 다시 한 번 노출한 셈이다. 코스닥 지수는 연중 최저치까지 밀려났다.
갑진년(甲辰年) 시작부터 투자자를 실망하게 한 한국 증시의 약세 배경은 다양하다. 그 중 ‘지정학 리스크 고조’는 모든 전문가가 꼽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우선 한반도 밖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미·영 연합군과 예멘의 친이란 반군 세력 후티 사이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후티는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작년 11월부터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영 연합군은 예멘의 후티 근거지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하고 있다. 이 대리전의 여파로 유럽으로 향하는 수출 길목인 수에즈 운하 통과가 어려워졌다. 현재 선박 다수가 안전을 위해 지름길인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고 있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물가 자극을 우려한다. 충돌 지역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전 세계 석유 해상 물동량의 9.1%(유럽향 59%), 액화천연가스(LNG) 해상 물동량의 8.0%(유럽향 73%)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운송로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희망봉을 통해 전량 우회가 가능하지만, 조달 루트 변화는 명목금리 반등과 원자재 지수의 하방 변동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우려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발틱해운거래소에 따르면 일본을 향하는 중동산 에너지(나프타) 수송 하루 운임은 이달 23일(현지시각) 기준 8만3000달러로 집계됐다. 미·영 연합군이 후티를 공격한 지난 12일 2만9400달러에서 열흘 만에 3배가량 치솟은 것이다. 중동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에너지 운임도 같은 기간 4만4800달러에서 7만2800달러로 급등했다.
최 연구원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추이를 살펴보면 글로벌 컨테이너 화물지수는 미국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약 5개월 선행했다”며 “그간 3월 정책금리 인하를 선반영해 온 명목금리가 단기간에 되돌림 현상을 나타낼 수 있는 환경”이라고 했다. 그는 “재반등하게 될 명목금리는 달러인덱스를 자극해 원자재 지수에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高)금리는 주식시장이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최광혁 이베트스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 해운 운임 상승은 운송 속도 지연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이는 근원 생산자물가지수(Core PPI)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두 가지 문제를 예상할 수 있는데, 중간재·최종재의 운송 지연에 따른 공급망 압력과 운송비·생산자물가 상승에 따른 물가 하락세 둔화”라고 했다.
지정학 리스크는 한반도 내에도 도사리고 있다. 북한은 이달 5~7일 세 차례에 걸쳐 연평도와 백령도 북방에 사격을 가한 데 이어 14일에는 동해 상으로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15일에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나선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에서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고, 한국을 제1의 주적으로 헌법에 명기한다고 밝혔다.
다만 증권가는 북한의 이런 도발에 대해 “전쟁 리스크 고조와 이에 따른 금융시장 불확실성 증대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북한이 정말로 전쟁 준비 중이라면 대내적으로 무기와 군수물자를 비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대외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방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며 “하지만 북한 움직임은 정반대”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북한이 무기를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고, 한국에 대해서는 주적임을 천명해 경계감을 끌어올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이런 행동은 ‘러시아를 통한 국제 제재 회피’, ‘북한 내부 민심 이탈을 막기 위한 한국과 거리 두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역대급 모금에도 수백억 원 빚… 선거 후폭풍 직면한 해리스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머스크 시대’ 올 것 알았나… 스페이스X에 4000억 베팅한 박현주 선구안
- 4만전자 코 앞인데... “지금이라도 트럼프 리스크 있는 종목 피하라”
- 국산 배터리 심은 벤츠 전기차, 아파트 주차장서 불에 타
- [단독] 신세계, 95年 역사 본점 손본다... 식당가 대대적 리뉴얼
- [그린벨트 해제後]② 베드타운 넘어 자족기능 갖출 수 있을까... 기업유치·교통 등 난제 수두룩
- 홍콩 부동산 침체 가속화?… 호화 주택 내던지는 부자들
- 계열사가 “불매 운동하자”… 성과급에 분열된 현대차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