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목표 없었는데… 과거엔 상상도 못한 연구하는 나를 발견”[M 인터뷰]

노성열 기자 2024. 1. 2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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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막스플랑크 연구소 첫 한국인 단장 차 미 영 카이스트 교수
빅데이터 속 통계법칙 등 찾는
신생 학문 ‘데이터 과학’ 선도
인문학·사회과학 접목이 특기
“심포지엄서 들었던 질문 의아
나중에 알고보니 단장 인터뷰”
“강가의 평범한 돌, 보석일수도
함께 연구할 인재들 모셔올 것”
“어린 소녀들이 내 스토리 듣고
‘나도 할수 있다’며 따라오길”
세계적인 ‘데이터 과학자’로 우뚝 선 차미영 카이스트 교수가 19일 문화일보 인터뷰룸에서 정보가 전파되는 경로를 전염병 모형으로 시각화해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차 교수가 인터뷰룸에 들고 온 여행용 가방.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인터뷰 직전에 이미 회의를 한 번 했고, 인터뷰 후 저녁 겸 두 번째 회의를 하러 또 가야 한다고 했다. 곽성호 기자

“저는 TV를 보지 않아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이름도 몰라요. 쉴 때는 책을 읽거나 음악만 듣죠. 영화도 피를 흘리거나 욕하는 장면을 보지 못해 어린이 영화만 봐요. 남편이 같이 볼 영화가 없다고 불평할 정도예요.” 차미영(44) 카이스트 전산학과 부교수는 지난 19일 문화일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회의가 잇따라 잡혀 대전에서 올라온 김에 2시간을 빼 대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데이터 과학자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는 그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데이터 과학자란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의문이 꼬리를 물며 솟아 올라왔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데이터사이언스랩 단장이 된 차 단장은 오는 6월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사한다. 그가 이끌 ‘인류를 위한 데이터 과학’ 연구그룹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총 85개 연구단 중 창설 5년 정도 돼가는 신생 연구집단이다. 랩의 새 이름은 그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데이터 사이언스는 인공지능(AI) 등의 도구로 빅데이터 속에 숨은 통계적 흐름과 법칙을 찾아내는 과학의 한 분야다. 고전 통계학과 컴퓨터 과학이 만나 탄생한 신생 학문으로 데이터 과학자가 되려면 수학·통계학적 소양은 기본이고, 데이터 마이닝과 프로그래밍·엔지니어링·시각화 능력에다 분석하려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까지 갖춰야 한다.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서 근무하는 데이터 과학자들의 연봉은 CEO를 능가하는 일도 있다. 현대 디지털 사회는 금융·의료·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 과학의 분석을 기초로 의사결정을 한다.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은 무엇을 보고 이 젊은 교수를 모셨을까. 차 교수는 데이터 과학을 활용한 사회과학 문제 해결의 세계적 선도자로 꼽힌다. 그가 해온 연구를 따라가 보자. 차 교수는 지난 2007년 ‘세계 최대의 사용자 생성 콘텐츠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탄생 2년 된 유튜브 등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 중 200만 개의 비디오와 시청 통계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다. 이 논문 전만 해도 인기 영상들의 비율은 ‘파레토 법칙’으로 불리는 80대 20의 분포를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 교수는 상위 10%의 인기 동영상이 전체 조회 수의 80%를 차지하는 현상을 처음 확인해 당시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이 논문은 발표 후 15년 동안 비디오 콘텐츠의 전송, 순위 알고리즘, 광고 노출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줬다. 이에 따라 2022년 ACM 인터넷측정학회에서 ‘테스트 오브 타임(Test of time, 최장수)’ 논문상을 받았다. 현재까지 2000번 이상 인용돼 학회 사상 3번째 많은 피인용 연구로 기록됐다. 2015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페이스북 데이터사이언스팀에 초청돼 1년 동안 가짜뉴스 탐지 알고리즘 제작을 이끌었다. 관세청과 세계관세기구 과학자로서 이상(異常) 거래 징후를 포착하는 세관 사기 탐지 기술을 개발했다. 제대로 된 경제 통계조차 없는 아프리카·아시아의 최빈국 경제지표를 근사치로 추정할 수 있는 인공위성 영상정보 바탕의 분석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차 교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재해재난 피해 탐지, 기후변화 영향 등 다양한 국제사회 문제에 영상 분석을 적용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특기는 인문학·사회과학 연구에 데이터 과학을 접목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다.

“저는 ‘10년 후에 뭘 할 거야’ 이렇게 정해놓고 연구를 하진 않아요. 이건 경험에서 나온 건데요, 시간이 흐르고 나면 과거에 상상도 못 했던 연구를 하고 있더라고요. ‘10년 후에도 쓸모 있게 읽힐 만한 논문을 쓰자’ 정도가 제 목표입니다. 논문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것인데, ‘과연 이게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가치를 갖는 연구인가’ 생각합니다. 유행을 좇아가지 않고, 정말 10년 후 사회에서 필요한 게 뭘까 하고 고민하니까 앞으로 무슨 연구를 하겠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긴 호흡을 선호하는 차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전산학과를 졸업한 다음 석·박사까지 10년을, 다시 카이스트 교수 겸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그룹장으로 14년을 보냈다(그는 유학 한 번 가지 않은 순수 국내파 학자다). 데이터만 내리 판 결과, 한국에서 세계적 학자로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모셔가는 데이터 과학자가 됐다. 그는 신앙인은 아니지만 자연의 섭리 같은 절대적 진리를 믿는 초긍정 마인드의 소유자다. 성장 과정 내내 강원과학고에서, 카이스트에서, IBS에서 과감한 도전 정신과 인류 봉사라는 큰 목적의식을 배웠다고 한다.

독일에 단장으로 부임하면 단원들을 어떻게 선발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뽑다뇨? 모셔와야죠. 민간기업에 가면 훨씬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인재들인데, 인류 봉사의 큰 명분을 내세우며 설득해 봐야죠” 하고 정정해주었다. 차 교수는 “강가에서 노는 아이처럼 조약돌인 줄 알고 주워온 돌들이 나중에 보니 다 보석이더라”며 “랩 지도학생 중 논문도 안 쓰고 딴짓만 하던 이들이 나중에 스타트업 사장님이 됐다”고 기다리는 리더십, 낮은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차 교수는 박사 후 연구원을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했던 게 단장 선임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심포지엄에 갔더니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뭐지 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단장 인터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쟁쟁한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여교수님들도 후보군에 있었는데 제가 뽑혔다”며 “양성평등에다 요새 한류 덕도 본 것 같다”며 “독일 측에서 여성, 아시아 등 다양성 강화를 추구해 유리하게 작용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2022년 소수자와 약자를 돌보자는 카이스트의 포용적 발전 취지에 동참해 다른 여성 리더들과 함께 1억여 원을 모아 기부했다. 그는 “원래 내 체크리스트에 할 일로 적어놓은 목표였는데, 기회가 빨리 와서 얼른 끼어들었다”고 수줍게 말했다. 학생들에게 멘토링을 해주면서도 나의 것을 아낌없이 줄 때 더 많이 배워간다는 차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인터뷰를 맺었다.

“저는 이런 거(인터뷰) 별로 안 해요.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린 소녀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며 ‘아, 나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뒤를 따라와 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이에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가면 한국이 특허로 세계 4위입니다. 많은 저개발국가를 지원하고 있지요. 그들을 도울 때 더 보람을 느껴요. 가성비가 좋다고 해야 하나? 노력한 것보다 더 보람이 크죠.”

1948년 설립 이래 노벨상 25명 배출… 세계최고 수준 기초과학·공학 연구기관

■ 獨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MPG·Max-Planck-Gesellschaft), 정확하게는 막스플랑크 과학진흥협회는 과학 진흥을 목적으로 여러 연구소를 관리·경영하는 독일 내 독립 비영리 연구기관의 연합회다.

1948년 설립 이래 지난해까지 총 2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및 공학 연구기관이다.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학회)의 수상자까지 포함하면 40명으로, 단일 기관으로는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한 곳이다. ‘노벨상 사관학교’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2022년 연방정부와 주정부로부터 받은 자금 지원액은 19억8000만 유로(약 2조8537억 원)에 달한다. 막스 플랑크는 1918년 노벨상을 받은 독일 물리학자로, 양자론의 개척자이며 과학사에서 ‘플랑크상수’ 등 다수의 업적을 남겼다. 원래 명칭인 독일어 ‘게젤샤프트(공동체)’에서 알 수 있듯, 단일 연구소가 아니라 85개의 연구단이 합쳐진 우산형 조직이다. 독일 내 79개 연구단이 있지만 해외에도 6개의 연구단을 운영 중이다. 연구소에는 약 1만3000명의 영구 고용 직원과 4700명의 과학자, 1만1000명의 박사 후 연구원 및 박사과정 학생, 방문 연구원들이 상주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연구의 독립성’으로 풀이되는 ‘하르나크 원칙(Harnack Principle)’으로 유명하다. 이는 1800년대 카이저 빌헬름 황제를 설득해 과학 협회를 처음 만든 신학자 하르나크가 세운 운영 원칙이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한 스타 과학자에게 프로젝트 단장(Scientific Director)을 맡기고 인사권과 예산을 일임해 스스로 연구를 이끌어가게 하면서 연구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모든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독립적인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새로운 주제로 연구할 연구소가 필요하게 되면 외부 전문가와 내부 교수들이 모여서 연구단장을 선정하고 단장이 뽑은 연구자들이 원하는 연구소를 만들어 준다.

각 연구소는 2년에 한 번씩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지난 2년간 어떤 연구를 했으며, 앞으로 2년간 어떤 계획을 갖고 연구할 것인지를 지도교수의 발표와 학생들의 포스터 발표 등을 통해서 평가받게 된다. 이 평가에 따라서 다음 2년간의 예산이 결정된다. 연구소를 이끄는 305명의 단장 중 한국인이 뽑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강사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가 한국계로는 최초로 막스플랑크 연구단장에 선임된 적이 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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