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辭 못해 말 날뛰게하면 搜査 부른다[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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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말이 날뛰는 시절이다.
초원을 호쾌하게 내달리는 말(馬) 말고, 정치인이 하는 말(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승리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세로 총선에 '올인'하고 있고, 가짜 뉴스나 불공정 보도 등의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지라 말이 듬직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형국이다.
말이 듬직하다는 것은 말한 대로 행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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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미상 ‘역경(易經)’
말하기 전 행하고 행한 대로 말해야 정치인 자격 있어
다가오는 총선 가짜뉴스 등 횡행 말 ‘듬직함’ 중요
바야흐로 말이 날뛰는 시절이다. 초원을 호쾌하게 내달리는 말(馬) 말고, 정치인이 하는 말(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승리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세로 총선에 ‘올인’하고 있고, 가짜 뉴스나 불공정 보도 등의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지라 말이 듬직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형국이다.
말이 듬직하다는 것은 말한 대로 행한다는 얘기다. 그 결과 말에 담긴 바가 실질적으로 구현된다. 이를 한자권에서는 “언즉신(言則信)”, 그러니까 “말은 곧 듬직함”이라는 표현으로 가리켰다. 이는 2500여 년 전인 공자의 시대부터 대대로 학파 불문하고 널리 공유되어 왔던 관념이다. 여기서 듬직함이란 말한 그대로 실천함을 뜻한다. 살아오면서 익히 경험했듯이 이는 무척 어려운 경지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실천할 수 있는 것만 말한다고 고백하기도 했고, 말하기 전에 먼저 행하고 그렇게 행한 바를 토대로 말을 한다고도 실토했다.
이는 공자가 말로 일을 하게 만들었음을 일러준다. 말이 일을 해야 비로소 말은 고삐 풀린 말처럼 나대지 못하게 된다. 또한 한 말에 대하여 기필코 책임지게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래야 “아니면 말고” 식으로 치고 빠지지도, “누가 그렇다 카더라” 식의 유체 이탈 화법도 구사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위정자라면, 공직 진출을 지망한다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고 요구되었다. 말이 일하게 할 줄 아는 역량을 갖추어야 비로소 위정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여겼음이다. 공자 시대의 위정자는 오늘날로 치면 정치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이라면 한자권의 ‘수사(修辭)’ 관념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말을 닦는다”는 뜻의 수사가 바로 말을 일하도록 만드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수사라는 표현은 ‘역경’ 건괘(乾卦)의 의미를 해설한 ‘문언전(文言傳)’에 처음 나온다. 근대 이후 서양에서 유입된 레토리케의 번역어로 처음 등장한 표현이 아니라, 적어도 2천 수백여 년의 인문적 두께를 지닌 표현이다. 다만 수사는 “수사입기성(修辭立其誠)”의 형태로 쓰여 “입기성”, 그러니까 “말의 참됨을 실현하기”를 지향하는 활동으로 규정되었다. ‘문언전’의 관련 대목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으로 나아가며 공업을 이룬다. 충실함과 미더움은 덕으로 나아가는 근거요, 말을 닦고 그 참됨을 실현함은 공업을 이루는 근거이다.”
인용문의 군자는 관리 등의 위정자를 가리킨다. 공업(業)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문맥상 위정자가 응당 해야 하는 일을 가리키므로 사회적 차원에서의 공적, 업적을 지시한다. 따라서 공업을 이룬다고 함은 군자로서 해야 할 일을 실천하여 공적을 쌓는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위의 공자 말은 “말을 닦아서 말의 참됨을 실현함”은 위정자가 맡은 바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 공적인 업적을 이루는 데 기초이자 동력이 된다는 통찰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말이 일하게 한다고 함의 실상이다. 정치인의 말은 늘 공적인 업적 쌓음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사, 곧 말 닦음을 통하여 말을 일하게 함으로써 말의 고삐를 확실하게 쥘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말이 일하는 사회를 빚어가게 된다. 유권자는 날뛰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책임 있게 국사를 처리할 동량을 가려낼 수도 있게 된다.
국사를 맡은 이의 말이 날뛰면 수사(搜査)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그의 말이 일하게 되면 그의 수사(修辭), 그러니까 말을 기초로 이루어낸 공적이 한껏 빛나게 된다. 하여 그의 말은 늘 국민에게 듬직함이 되고 선물이 된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모습을 지향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은가?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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