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리케, 욕망의 칼로 쓰면 나라 망쳐[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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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수사학회'가 창립된 지도 20년이 되었다.
플라톤은 레토리케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정치가들의 칼이 될 때, 많은 시민들이 고통받고 나라가 망가질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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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고르기아스’
의사가 칼 잡으면 사람 살리지만 강도가 잡으면 해쳐
타락한 정치가들 얕은 말재주로 현혹 시민, 잘 판별해야
한국에 ‘수사학회’가 창립된 지도 20년이 되었다. 창립 학술대회가 열렸을 때, 뜻밖에도 경찰관과 형사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수사(搜査)’를 위한 학회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수사에도 ‘수사(修辭)’가 필요하긴 하니,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 테다. 그런데 ‘수사학(修辭學)’이란 뭔가? 이것은 서양말 ‘레토릭(Rhetoric)’의 번역인데, 어원은 고대 그리스로 올라간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 처음 나온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고르기아스가 민주정의 고향 아테네에 왔다. 그를 찾아가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고르기아스 선생, 당신은 무엇을 가르치나요?” “레토리케요.” ‘레토르(연설가)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배우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얻는다고 장담한다. 그게 뭘까?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자기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게 하는 능력이지요. 나는 레토리케를 ‘말로 청중을 설득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주장합니다. 법정에서는 판정관들을, 평의회장에서는 의원들을, 민회에서는 시민들을, 그리고 다른 모든 정치 집회에서 말로 청중을 설득하는 능력이지요.” 레토리케를 잘 구사하면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거나 막강한 권력자, 오늘날로 말하자면 판검사, 변호사가 되거나 국회의원이나 정치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레토리케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통하곤 한다. 특히 표를 얻기 위해 대중을 현혹하는 궤변과 포퓰리즘을 구사하는 기술처럼 보이는 것이다.
플라톤은 레토리케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정치가들의 칼이 될 때, 많은 시민들이 고통받고 나라가 망가질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레토리케에 정통한 연설가가 정의와 불의에 관해 법정에서나 의회에서 대중들을 가르칠 수 있는 참된 지식을 갖지 못한 상태로, 오직 이기심에 따라 군중들을 교묘한 말재주로 설득하여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만을 능사로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고르기아스는 이런 말도 한다. “레토리케는 최강의 힘을 가지고 있소. 예를 들어 볼까요. 한 나라에서 의사를 선발할 때, 민회나 다른 어떤 집회에서 말로 경쟁합시다. 레토리케에 능한 자와 의사 중에 누가 의사로 뽑히겠소?” 그에 따르면, 레토리케를 이용하여 의사보다 더 의사처럼 말하는 연설가가 어수룩한 청중들을 말솜씨로 휘어잡으면서 진짜 의사를 제쳐 두고 의사로 뽑힌다는 것이다. 그러니 레토리케의 위력은 얼마나 위대한가! 하지만 잘 따져보면, 잘못은 레토리케가 아니다. 칼이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사람들을 해치지만, 의사의 손에 들어가면 사람을 살리듯, 누가 어떤 레토리케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잘잘못과 좋고 나쁨이 갈린다.
이제 곧 우리에게 말의 성찬의 시절이 찾아온다. 이미 막이 올랐다. 쟁쟁한 사람들이 대중을 앞에 두고 연설하며 레토리케를 구사한다. 그들 중에는 분명 의사도 아니면서 의사처럼 말하면서 진짜 의사를 제치고 의사로 뽑히듯, ‘정치’도 모르면서 최고 최선의 정치가인 양 말을 하며 군중을 현혹하는 레토리케의 칼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다. 반면 전문성과 올바른 지식, 정의로운 마음과 도덕적인 태도로 오직 국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사람도 있다. 그들의 레토리케에는 ‘말을 잘 갈고닦아 진심을 담아내는’ 수사(修辭)의 정신이 깃들 것이다. 그들을 잘 분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설가의 말을 듣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시민들의 양식과 지성, 도덕성이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능한 시민은 자기보다 못나고 못된 사람의 통치를 받는 벌을 받게 된다는 플라톤의 말은 그때 거기 아테네에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더욱더 절실하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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