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걸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고?… 식이요법의 함정[북리뷰]

2024. 1. 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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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을 먹는 사람들
재닛 츠르잔·키마 카길 지음│강경이 옮김│루아크
간헐적 단식·글루텐 제거식단…
과학적 근거없이 간증 내세워
탄수화물·지방·설탕 ‘악마화’
불균형 식사로 되레 건강 해쳐
불안 시달리는 현대인 겨냥
특정 식품 상업적 판매 노려
‘불안을 먹는 사람들’은 현대 식이요법의 서사가 매우 주술적이라고 지적한다. 단순한 체중 감량, 건강 개선에 그치지 않고 자기 변신을 보장하는 궁극의 해결책으로 선전된다. 게티이미지 뱅크

약식동원(藥食同源). 예부터 우리는 음식과 약이 뿌리가 같다고 믿어 왔다. 먹는 일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므로, 세끼 음식을 잘 먹기만 해도 건강을 지키고 병을 고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세상에 수많은 식이요법이 넘쳐나는 이유다. 간헐적 단식, 저탄고지, 글루텐 제거 식단, 앳킨스(황제) 식이요법, 팔레오 식이요법, 해독 주스 등 가려 먹고, 골라 먹고, 빼고 먹는 방법이 언론에 흔히 소개되고, 수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 탓에 요즘엔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저런 식이요법에 도전하는 듯하다. 먹어서 기적을 체험했다는 간증이 주변에서 흔해지고, 소셜미디어엔 식이요법 소개와 상품 판매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확인 정보가 숱하게 퍼져 있다. 몸에 나쁜 특정 성분이나 음식을 피해 제대로 먹기만 하면 외모와 건강이 좋아지고, 난치병도 이겨낸다는데 안 해볼 이유가 어딨겠는가. 바야흐로 식이요법 전성시대이다.

‘불안을 먹는 사람들’에서 재닛 츠르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 키마 카길 워싱턴대 교수는 우리가 들여온 온갖 식이요법을 영양학적, 심리학적, 인류학적 방법을 동원해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들에 따르면, 음식의 풍요(육류, 지방, 탄수화물, 나트륨 함량이 높은 식단), 개인이 자신을 통제하고 책임질 수 있다고 믿는 문화, 모든 문제를 시장이 해결할 수 있다는 만연한 신뢰가 식이요법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현대 식이요법의 서사는 매우 주술적이다. 이들은 단순한 체중 감량, 건강 개선에 그치지 않고 모든 건강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마법의 탄환, 더 나아가 삶의 문제를 없애주고, 자기 변신을 보장하는 궁극의 해결책으로 선전된다. 식이요법은 흔히 외모와 건강, 삶의 활력, 부와 성공 등 인생 전체가 오직 먹는 데 달려 있다고 과장한다. 마치 종교 같다. 카리스마 있는 창시자에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퍼져 열광적인 집단행동을 일으킨다. 대중매체와 온라인 공동체가 건강 복음 전파를 돕는다. ‘내 말대로 먹으면, 몸은 건강해지고, 어떤 병이든 치료되며, 불안은 사라져 인생 전체가 달라지리라!’

그러나 너무 좋은 건 기적이 아니라 거짓이다. 유행 식이요법의 거창한 약속에 과학적 근거는 거의 없다. 유사 과학에 바탕을 두거나 오류로 이미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슬쩍 내세울 뿐이다. 그들은 실험과 검증을 기적의 간증으로 대체하고, 유명인을 내세워 사람들 마음을 홀린다. 저자들은 유행 식이요법을 음식 배제, 음식 중독, 클린 이팅, 팔레오 등 네 가지로 나누어 세세히 살핀다.

음식 배제 식이요법은 탄수화물, 지방, 설탕 등 비만을 일으키는 영양소를 먹지 말라고 권한다. 이 요법은 체중을 단기간 줄이는 효과 덕에 인기를 끈다. 그러나 불균형 식사를 지속하면 건강을 해치는 데다, 다른 이들과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즐거움을 크게 제한한다. 음식의 가치는 영양에만 있지 않다. 특정 물질을 악마화하면 음식을 영양소로 환원하는 잘못에 빠진다. 밥상 공동체 없는 인생이 행복할 리 없다.

음식 중독은 설탕, 밀가루, 알코올 등 특정 음식 성분이 어떤 사람에겐 과도한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 요법은 그 문제를 알레르기, 소화 불량, 비만 등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공황발작, 피로감, 편두통, 주의력 결핍 등으로 확장한다. 글루텐을 먹지 않으면 이 모든 문제가 한 번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탕이나 밀가루가 마음의 병까지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대부분 심리적이다. 민간요법에서 자주 나타나듯, 당을 끊으면 잠시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클린 이팅은 몸에 나쁜 식품 첨가물을 줄이고 유기농, 자연식품, 비가공 식품을 먹으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화학물질, 환경오염 등에 대한 우리의 이유 있는 두려움을 이용해 음식을 통한 신체 정화를 권한다. 그러나 실천이 쉽지 않다. 오염되거나 해로운 물질을 철저히 배제하는 게 가능한지도 미지수인 데다 신선한 재료를 넉넉하게 구할 수 있고, 그 재료를 음미하고 준비할 시간이 있는 중상류층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제품은 마술적 효과를 강조할 뿐 영양 균형은 어긋난 경우도 많다.

팔레오는 구석기 식이요법이라고 불린다. 우리 신체는 본래 구석기 환경에 맞춰 진화했으므로, 농업혁명 이후 등장한 곡물이나 유제품을 피하고, 야생 식품이나 사냥 육류 등 구석기 식단으로 돌아가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요법의 유행은 기술 발달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를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조상들이 실제 무얼 먹었는지 잘 알지 못하므로, 모델로 제시되는 구석기 식단은 아무 근거도 없다. 이들은 향수를 위안 삼아 과거를 이상화하고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원형을 불러낼 뿐이다.

인생엔 마법의 탄환이 없다. 아무도 먹는 것만으로 삶을 바꾸진 못한다. 대다수 식이요법은 문제를 실제 해결하기보다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심리적 효과만 발휘할 뿐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결국 돈, 즉 특정 식품에 대한 상업적 판매다. 장기적으로 영양 불균형 등 건강을 해칠 수 있는 특정 식이요법에 현혹되기보다 이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이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넘치지 않게, 골고루, 나누어 먹고, 꾸준히 운동할 것. 560쪽, 2만9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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